창작에서 새로움

by 아욱

새로움이란 시간의 경계 설정을 통해 외부적인 연속성에 주체의 통제가능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서 창작 및 지적 추구의 대상을 주체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감각적으로 접근했을 때 기존의 연속적인 행위와 관습에 변화를 통한 새로움을 도입하는 것은 형식의 재설정을 통해 그것에 관해 감각적으로 몰입시킨다. 국가가 법과 제도를 기존의 다른 국가로 부터 들여오는 것과 새로운 법전을 편찬하는 것은 단순히 그 국가에 최적화된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 이상으로 (감각적인 차원에서) 윤리적인 가치가 피는 것과 같다. 스스로 세운 법은 목적을 스스로 지정함으로서 타율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무조건 창작이란 기준의 재창조를 동반해야만 윤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지? 단순히 감각적 재설정을 위해서 연속적인 새로움이 필요한지? 개인의 입장에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구를 당면하게 된다. 그러나 보편적 공동체에서 개별적인 새로움의 태동의 연속은 합의 불가능한 사유의 무의미한 반복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새로움은 기존에 전제된 전체적인 역사와 배경을 부정하고 오늘 지금으로서 역사를 다시 쓴다. 한편으로 이런 점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윤리의 재설정이지만 역사 안에서는 개별적이고 이기적인 돌출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구와 창작은 완전히 개별적인 것으로서 구별되어야하는 것인지? 예술, 큐레이팅 영역에서 처럼 개별적인 새로움의 추구가 전체 학의 역사 전개의 변증법으로 작동하는 분야에선 연구와 개별적 실천이 구별되지 않는데 여기서 새로운 것과 역사적인 것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 교육의 면에서 새로움이란, 지식과 행위의 주체화를 위해서 모든 교육은 얼마간 새로운 커리큘럼을 전제해야하고 교사고 학생도 처음 맞아보는 과제를 당면하고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동시대적으로 기존의 관습과 문제를 재설정하면서 현재를 다시 보게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은 교육을 단순한 지식의 전승을 넘어 몰입이라는 과정을 통해 직접 신체와 의식에 체화하는 과정을 추가한다. 여기에서 학은 더이상 외부적인 것이 아니고, 또 전승이 있는 것이 아닌 상태에서 학생에 의해서 지금 여기의 문제로 다시 발현된다. 낯선 숲에 놓여 익숙한 도구와 기술들을 활용하여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상황은 익숙한 지식과 나라는 주체를 직접적으로 연결짓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실천의 축적이 지금의 성과를 구축하길 기대할 수 있고, 개별적인 새로움이 반복되는 것은 계 전체를 인지하고 공동체를 가시화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차이짓기 욕망’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새로움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남기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기대하는 바를 넘어서서 구현하는 학술적 윤리의 달성이 아니라, 개별자의 명예충족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개개인의 새로움은 공동체의 새로움과 명확하게 얽힘으로서 공동체의 참여자들이 이 새로움의 주체로서 관성을 인식하면서도 다른 힘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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