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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라비행 Aug 03. 2019

요리를 좋아하긴 하는데

목요슬


1인 가구의 스몰토크 주제는 ‘밥은 잘 먹고 다녀요?’가 단연 압도적이다. ‘밥은 먹었어?’가 일상 인사로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지의 여부는 곧 그 사람의 삶의 질과도 연관된다. 그중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한 그 밥은 대개 하루 세 끼 중 저녁밥을 말하는 듯하다. 월급 노동자의 일주일에서 아침밥은 잠에 양보하고, 점심밥은 직장에서 일하라고 주니 먹고, 저녁밥이야말로 우리가 그나마 자유의지를 갖고 선택할 수 있는 끼니인 셈이다.


 그러니 거의 모든 에너지를 직장에다 쏟아버린 지난 3,4월의 내 저녁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야근하며 먹는 컵라면, 어플로 시키는 배달음식, 혹은 술안주가 대부분이었다. 빠른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배부름을 채울 수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단점도 있다. 돈도 많이 들뿐더러 쓰레기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의 면역력이 뚝 떨어졌다.


여유가 생기면서 스스로에게 한 다짐은 적어도 일주일에 네 번은 요리를 하자는 것이다. 내가 먹는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따져가며 냉장고가 허락하는 선에서 그럴듯한 한 끼를 차려내는 일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애정을 쏟는 일이다. 나는 내 힘으로 먹고 산다는 묘한 뿌듯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 수 있다는 묘한 위안이 된다.


반면에 또 생각해볼 지점은 우리 사회에서 요리하는 행위는 성별에 따라 다른 가치가 매겨진다는 것이다. 요리하는 남성은 ‘요섹남’, ‘셰프’라는 특별한 이름을 얻지만, 여성이 요리를 잘하면 그저 여성스러워진다. 유명 시인의 아내였던 한 여성은 무려 사십 년 동안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2-30명의 남편 손님들에게 밥상과 술상을 차려왔다고 했다. 중년 남성의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매일 나를 위해 차려진 이 식탁’이 ‘내겐 사치이자 행복’이라는 노래는 많은 남성들의 노래방 애창곡 중 하나이다.

 ‘밥 잘 먹고살아요?’ 앞에 (밥 해주는 엄마 없이도)가 생략되어 있음을 알기에 ‘저는 요리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요리를 잘하나 봐요?’라는 질문에는 ‘예 좋아하죠’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고 누군가의 밥상을 차려주고 싶지는 않아요)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일까.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자기 밥상은 본인이 차려(혹은 챙겨) 먹는 게 성인 인간의 충분조건이다.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자기 충전으로서의 요리의 기쁨이 내게 계속되기를 바란다.

#아오라x비행공간 #목요슬 #의식주글쓰기 #요리를좋아하기는하는데 #여기서살거야 #어떻게살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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