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난민 Jul 09. 2019

시민의 권리를 외치다 -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국가와 사회와 시민, 그 관계는 항상 유기적이고 완벽한가

* 사진 출처 : Twitter, https://twitter.com/kenloachsixteen/status/798819734154158080



2016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017 영국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에 빛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목수이다. 주연 데이브 존스는 고지식하고 무뚝뚝하지만 선량하고 자기 소임을 다하는 주인공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시종일관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이지만 필요한 장면마다 마치 실제 인물인듯 감정 연기를 해낸다. 보는 내내 무게감 있는 그의 연기가 인상깊었다.


그는 심장이 좋지 않아 진단을 받고 실업급여를 받으려 하지만 영국 복지시스템은 그에게 넘사벽이기만 하다. 모든 것이 전산으로 처리되지만 다니엘은 100% 컴맹이다. 관공서를 찾아 사정을 해도 주어진 시간 내에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 담당자들은 다니엘을 외면하기 일쑤다. 한 착한 직원이 다니엘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상관의 질책을 받고 다니엘을 더이상 도와줄 수 없게 된다. 이 장면들은 거대한 사회시스템에서 소외되가는 선량한 시민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이 서로를 돕지 못하는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다니엘은 자신의 질병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관공서를 찾아도 지정된 절차만 알려줄 뿐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질병을 입증하지 못해 다시 구직활동을 스스로 증명해야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만 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가능하면 구직사이트에 구직신청을 올리는데 넉넉잡고 10분이면 될 일이지만 다니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는 수기로 쓴 쪽지를 들고 구직활동을 하지만 관청에서 구직활동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 와중에 관공서 상담예정시간에 간발의 차로 늦어 상담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된 케이티 가족을 다니엘은 물심 양면으로 돕게 된다. 자신도 가난하지만 케이티 가족은 훨씬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전 남편들에게 속아 아이를 낳고 버림받은 케이티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목수였던 자신의 재능기부를 하며 집을 고쳐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밥을 굶고 있는 그들을 위해 음식지원센터를 안내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조치된 장면들이 지나면 케이티는 결국 몸을 파는 일을 하게 되고, 다니엘은 무너져가는 케이티와 그녀와 아이들을 돕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심한 절망감을 느낀다. 그는 무표정으로 실업수당만 받아도, 내가 일을 할 수만 있어도 그들을 도울 수 있을 텐데 하는 분노와 절망, 안타까움을 관객들이 느끼게 해준다.


결국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문전박대를 당하고 케이티마저 도와줄 수 없게 된 다니엘은 분노한다. 분노하지만 그가 한 일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관공서 담벼락에 준비해온 락커로 글을 쓴다. 


I, Daniel Blake demand my appeal date before I starve.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죽기 전에 항고 날짜를 잡아줄 것을 요청한다.


지나가던 많지 않은 수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지만, 관공서 벽에 낙서한 죄로 현장에서 경찰에 잡혀 송치된다. 경찰도, 공무원도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규정대로, 법대로 말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국가와 사회가 정한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점점 절망한다. 그가 원한 것은 정의구현이나 정치를 바로잡는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생존이었다.


결국 항고에서 승소할 발판을 마련한 다니엘은 케이티와 함께 법원을 방문하지만, 재판 직전 심장병이 도져 화장실에서 쓰러진다. 케이티는 다니엘의 죽음을 목격하고 울부짖지만 그는 결국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조촐한 동네 교회의 장례식에서 케이티가 다니엘이 항소 때 읽으려고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 끝난다. 장례식에는 다니엘의 몇 안되는 지인들이 참석해서 성실히 살았던 고인을 기린다. 케이티의 아이들도 슬픔에 빠진다. 다니엘이 미쳐 읽지 못한 편지의 내용이다.




I am not a client, a customer, nor a service user. I am not a shirker, a scrounger, a beggar, nor a thief. I'm not a National Insurance Number or blip on a screen. I paid my dues, never a penny short, and proud to do so. I don't tug the forelock, but look my neighbor in the eye and help him if I can. I don't accept or seek charity. My name is Daniel Blake. I am a man, not a dog. As such, I demand my rights. I demand you treat me with respect. I, Daniel Blake, am a citizen, nothing more and nothing less. Thank you.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약탈자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국가보험번호도 화면에 깜빡이는 숫자도 아닙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했고, 동전 한 푼 꾸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굽실댄 적도 없지만, 내 이웃이 어려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왔습니다. 나는 자선을 바라거나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나는 사람이고, 개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바랍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민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는 줄곧 잔잔하게 흐른다. 아름다운 음악이나 감성적인 장면도 없다. 그러나 필자 역시 영화에 많이 몰입될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그리고 관객이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영국과 한국의 복지현실, 시민을 위한 정책들을 비교하고 떠올려보며 상처받고 버림받고 소외되는 사람들과 국가와 사회의 역할, 국가자원의 국민을 위한 분배, 거대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존재가치, 시민의 권리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트럼프의 협상전략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