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난민 Jul 09. 2019

[영화] 덩케르크 리뷰

절제된 연출로 몰입감을 극대화하다


메멘토로 이름을 알린 후 배트맨 시리즈 뿐만 아니라 DC 최고의 성공작인 다크나이트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을 통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등극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드디어 현실로 돌아왔다. 1970년생인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각본, 감독을 맡으며 잔혹했던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휴머니즘이 넘치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덩케르크전(Battle of Dunkirk)은 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5월 26일 ~ 6월 4일 수세에 몰린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인 덩케르크에서 민간인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탈출한 작전이었다. 당시 독일군은 네델란드를 침공한 후 프랑스를 향해 서진 중이었고, 이에 대항해 연합군은 Plan D를 가동하여 벨기에로 진공, 네델란드에서 독일군과 교전하려 하였다. 이 작전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총력을 다해 건설한 마지노선을 믿고 행한 작전이었는데, 독일은 전차군단을 앞세운 전격전으로 마지노선을 프랑스와 연합군의 예상보다 손쉽게 돌파해 버린다. 



이에 당황한 연합군은 전력을 모아 벨기에의 다일강에 전선을 형성하지만, 독일군은 5월 14일 프랑스의 아덴을 점령하고 신속하게 프랑스 북동부의 세단으로 진공한 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국 해협으로 향한다. 이 작전으로 인해 연합군은 보급로가 끊기고 측면공격을 당하게 된다. 



연합군은 독일의 진격을 막기 위해 수차례 반격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5월 20일 영국 해외 파견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 프랑스 제 1 육군(French First Army), 벨기에군은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되고 만다. 프랑스 주력군은 프랑스 동부에서 독일군의 서진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펴야 했기에, 이 고립된 연합군의 유일한 희망은 영국으로 건너가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덩케르크 해안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한편 영국 도해를 막기 위해 유보트와 공군을 투입해 연합군을 괴멸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독일군은 이러한 절호의 기회에서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무려 3일간 진격을 멈추는데, 이는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영국은 덩케르크에 고립된 33만명의 연합군이 궤멸될 경우 독일에 조건부 항복을 고려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독일군은 히틀러의 명령으로 3일이나 진격을 멈추면서 연합군이 방어선을 정비하고 영국군이 탈출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된다. 이 명령이 히틀러가 직접 한 것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건 독일군은 진공을 멈추었고, 이는 연합군에게 큰 행운이었다.



덩케르크에서 11일간 탈출한 연합군은 총 338,000여명으로, 영국군 215,000명, 프랑스군 123,000명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놀라운 운이 작용한 2차 세계대전 초기의 탈출작전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이 해안에 약 40만명이 영국땅을 바라보며 탈출을 기다리고 있었죠. 독일군이 사방에서 조여오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는 전멸이냐 항복이냐의 선택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고, 저는 이 사건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이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에게 공세를 빼앗겼던 연합군이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은 이 해안에서 약 34만명의 연합군이 탈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덩케르크까지는 무려 19시간이 걸렸고, 당시 날씨가 매우 나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독일군이 언제 자기 배에 폭탄을 투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시민들은 자기 배를 몰고 파도가 심한 영국해협을 건너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저는 이들의 용기에 진정으로 감탄했고 이들에게 지고의 존경과 찬사를 보냅니다."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화면전개와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표정연기가 어우러지며 이 탈출작전을 그려낸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그를 따라 나선 청소년기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친구는 연합군을 구하기 위해 배를 몰고 해협을 건넌다. 하나 남은 아들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심정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아버지는 묵묵히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덩케르크 작전에 참가했던 분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넋을 놓고 해변에 앉아 바다로 뛰어드는 병사들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장면도 실제 참전했던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든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이 헤엄쳐서 그 해협을 건너지도 못하고, 멀리 떠있는 배를 타기 위해서도 아닌 그냥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했죠. 이 말을 듣고 너무 슬펐지만 저는 이 장면을 꼭 영화에 넣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전쟁을 통해 공황상태에 빠진 동료와 그걸 묵묵히 바라보는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군인들을 담담하게 묘사하는데, 아마도 감독이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었던 내용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한 것 같다. 필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다크나이트에서 느꼈던 압력과 무게감보다는 그보다는 가볍고 사실적인 휴머니즘을 느꼈는데, DC 만화가 원작인 다크나이트가 인간의 폭력성을 밀도 있게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실제 그 폭력성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전쟁영화에서 감독은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보다는 전쟁을 대하는 인간의 내면과 두려움, 그리고 따뜻함과 용기를 보다 다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는 영화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3개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했습니다. 바다, 하늘, 그리고 육지로 구성된 3개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저는 관객들이 실제로 그 해안, 그 스핏파어이(spitfire)의 조종석, 그 배에 몰입될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모여 큰 하나가 되게 해서,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빠져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여럿 배치되어 있다. 필자는 스핏파이어가 연출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는데, 묵직한 화면에 걸맞는 배우로 톰 하디를 참 잘 캐스팅했다는 생각도 했다. 톰 하디는 연료가 바닥나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명의 연합군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파일럿을 연기했는데, 마지막에 연료가 떨어져 활공하면서도 적 전투기를 격추하고 독일군 지역에 간신히 착륙한 후 적에게 비행기를 뺏기지 않기 위해 불태우는 장면들은 정말 압권이었다. 


위 사진의 스핏파이어는 실제 덩케르크에 불시착해 있던 비행기를 복원해서 경매에 나온 것으로, 370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아래 사진은 이 전투기에 몰려든 독일군들인데, 톰 하디가 착륙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장면과 겹쳐진다.



이러한 연출에 대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대사를 최대한 줄여서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는 가장 투명하고 직접적인 현실감을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즐겨써왔던 시각효과 대신 실제 전투기와 배를 준비해서 실제 역사가 펼쳐진 현장에서 촬영했습니다."


영화는 현실 그 자체를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화려했던 그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물론 카메라의 앵글이나 인물들의 묘사는 크리스토퍼 놀란 그 자체의 느낌이 묻어나지만, 공중전을 비롯한 전투씬은 과장이 완전히 배제된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 그는 람보나 슈퍼맨 같은 영웅이 아닌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 그 자체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제가 영화 언어에서 가장 시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스펜스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 서스펜스 자체를 심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가장 닮고 싶고 배우려고 하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처럼, 관객들이 주인공에 빠져들고 그들이 하려고 하는 행동에 공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대해 말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저는 참전용사 등과의 면담을 통해서 그들이 실제로 살아온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비판 받기도 쉽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를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장면들이 결국은 큰 그림을 그려내도록 조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의도한 느낌과 비젼을 관객분들이 공감하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배우는 단연 톰 하디였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베인 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이번에 전투기 조종사로 분했는데,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을 넘어선 뭔가를 필자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그의 캐스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완성했을때 톰 하디만이 떠올랐고, 그에게 정중하게 출연 요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톰 하디는 동료에게 하는 무전 외에는 어떤 대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절제된 연출, 즉 전투기 조종석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표정만으로 독일의 메서슈미트 Bf 109(Messerschmitt Bf 109)와 교전하고 폭격기를 격추하는 역할로 톰 하디만한 인물이 없을거라는 것이 놀란의 생각이었고, 그건 필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여실히 느꼈다. 


영화 덩케르크는 우리를 고스란히 1940년 5월의 프랑스 북부 해안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감독은 절제된 대사와 현실적인 화면으로 연출하며,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은 그 상황과 인물들의 갈등과 결정에 탄복하고 분노하며 2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준 묵직한 연출력이 더 정제되고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지루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필자에게는 아주 좋은 영화였다. 특히 톰 하디가 해안에 불시착한 후 전투기를 태우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Dunkirk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film/video/2017/jul/18/christopher-nolan-dunkirk-video-interview-harry-styles

Indiewire, http://www.indiewire.com/2017/07/christopher-nolan-interview-dunkirk-most-personal-film-1201857476/

NPR, http://www.npr.org/2017/07/20/538088576/-dunkirk-director-christopher-nolan-we-really-try-to-put-you-on-that-beach

USA Today, https://www.usatoday.com/story/life/movies/2017/07/22/tom-hardy-spitfire-pilot-dunkirk/502295001/

Variety, http://variety.com/2017/film/news/dunkirk-premiere-harry-styles-christopher-nolan-1202495121/

Urban Ghost Media, http://www.urbanghostsmedia.com/2015/05/supermarine-spitfire-p9374-shot-down-dunkirk-restored/

작가의 이전글 늦어도 1분 안에 내 마음 힐링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