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 그리고 음악의 하모니
겨울에 본 뮤지컬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12월에 본 영화지만 연말연시 등으로 리뷰가 늦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점은 우선 생각보다 상영관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겨울방학 시즌에 각종 블락버스터와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골든글로브 주제가상(Best Original Song)까지 수상한 영화임에도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두번째는 보면서도 느꼈지만 감독과 음악연출이 모두 신인이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감독인 마이클 그레이시(Michael Gracey)는 이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그는 비쥬얼이펙터 출신으로 보통의 신인감독들이 거치는 단편영화조차도 연출해본 경험이 없다. 원더우먼 등의 블락버스터급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신인'급'이었던 것도 놀라운데 이건 훨씬 더한 일이다. 이러한 기회부여는 미국이 아니면 아마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상당히 저예산으로 높은 수준의 시각효과를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이 시각효과 담당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렇게 감독이 완전 신인이면 보통은 음악감독, 연출자는 베테랑을 쓸텐데, 이 영화는 그렇지도 않다. 음악의 파섹 앤 폴 (Pasek and Paul, Benj Pasek and Justin Paul)은 TV, 영화쪽에서 10여년간 활동해 오긴 했지만 분명히 마이너였다. 일부 매체에 라라랜드 음악팀이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정확히 한 일은 라라랜드 일부 곡의 "작사"였다.
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인데, 이것도 라라랜드의 삽입곡 시티 오브 스타즈(City of Stars)의 작사 때문이었다. 이런 그들이 이런 메이저 뮤지컬 드라마의 음악총괄연출을 맡은 것이다. 그들은 인터뷰에서도 이 영화가 그들에게 매우 큰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아래 영상에서 감독과 음악연출진이 누구인지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는 바넘과 베일리 서커스(Barnum & Bailey Circus)의 창설자 P. T. Barnum의 생애를 그리지만, 그 스토리라인 안에 꿈과 사랑, 계층간의 갈등, 인간애, 우정 등 모든 것을 녹여넣었다. 그리고 그 모든 스토리가 음악과 함께 흘러가며, 수준 높은 댄스와 연출이 겻들여진다. P. T. Barnum (Phineas Taylor Barnum, 1810–1891)은 실제로 여관지기이자 재봉사였던 아버지와 둘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할아버지를 두고 있었다. 휴 잭맨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지만, 어쨌건 영화는 이 서커스단이라는 것을 모티브로 19세기 당시 하층계급이었던 단원들의 애환과 바넘의 꿈이라는 플롯을 들여온다. 사회에서 버려지고 놀림받던 이들이 바넘이 꿈꾸는 사업을 통해 주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은 이 영화의 큰 줄거리 중의 하나이며, 잭 에프론(Zac Efron)과 젠다야(Zendaya)가 연기한 백인 귀족의 자제와 흑인 여성간의 사랑도, 그리고 역시 가난했던 바넘과 귀족 집안의 딸과의 사랑과 결혼도 역시 그러하다.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수상한 This is me도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믿고 나아가는 이야기로, 아래 영상에서 가사와 함께 만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며 놀랐던 세번째 포인트는 배우들의 힘이다. 우선 영국 최고의 오페라가수 제니 린드 역의 레베카 퍼거슨(Rebecca Ferguson)이 있다. 그녀는 전작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을 보면서도 인상 깊었는데,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노래 실력에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마음껏 보여준 것은 액션 연기였지만,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동작이나 분위기에서 영국 뮤지컬 배우 출신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긴 했었다. 실제로는 스웨덴 국적의 영국인 어머니를 두어 스웨덴의 영국계 학교를 다녔으며, 역시 스웨덴에서 음악학교를 졸업했고, 스웨덴 남친과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2012년 BBC 드라마 The White Queen에서 엘리자베스 역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 역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에도 노미네이트되었었다. 이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다 드디어 미션 임파서블에 영국 첩보원역의 일사 역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그녀는 미션 임파서블 6에도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녀가 이 영화에서 부른 Never Enough 장면은 매우 인상깊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아주 평범한 사랑과 꿈을 노래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가사와 음악, 연출력 등은 아주 탁월하다고 할만하다. 이 노래 역시 그렇다. 잠시 가사와 함께 감상해보자.
두번째로 놀란건 미셸 윌리엄스였다. 미셸은 무려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2번, 조연상 후보로 2번 노미네이트된 바 있는 베테랑 배우이며, 브로크백 마운틴, 블루 발렌타인, 셔터 아일랜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등 굵직한 영화에서 연기력을 선보인 바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네이버 영화에서 검색해도 그녀의 여우주연상 수상경력과 위에 열거한 영화 출연경력이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그녀에게 골든글로브를 안긴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My Week With Marilyn , 2011)은 한국에서 개봉은 했었지만 역시 상영관이 적었고 고작 2만명 관객을 동원하고 바로 내린 바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미국에서도 미셸이 마릴린 먼로 역으로 캐스팅되었을때 연기자의 파워나 인기 등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 많았지만, 그녀는 6개월 동안 마릴린의 모든 영상, 사진, 책 등을 연구하고 몸을 만들어서 영화에 임했으며, 그 결과를 골든글로브로 보여주었다. 지금도 많은 비평가들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역시 그녀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히스 레저의 연인이었고 둘 사이에 딸도 낳았지만 (역시 결혼은 하지 않았다), 이들이 헤어지고 1년 후 히스 레저가 자살한 아픔을 갖고 있다. 평소 그녀의 눈빛에서 짙은 슬픔이 느껴지는 것도 당연히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를 놀라게 한건 이 영화에서 그녀가 남편의 꿈을 믿고 가난뱅이와 결혼한 귀족의 자제로 남편이 파산해도 그를 믿는 말도 안되는 현모양처 겸 무지하게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는데, 그녀가 갖고 있는 슬픈 눈빛을 완벽하게 감추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도 본연의 눈빛을 감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화 내내 그녀의 눈빛은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필자는 영화 내내 그저 놀라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영화보다 힘든 작업이지만 무대에 서고 싶다며 브로드웨이로 달려가 블랙버드 등의 작품에서 열연한 바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뛰어난 연기 뿐만 아니라 멋진 춤과 노래도 선사한다. 안타깝게도 유튜브에서 그녀의 씬을 찾을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헐리웃 배우들의 다양성과 퍼포먼스에 놀라게 된 것은 그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앞으로도 이 배우들의 영화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것 같다. 위대한 쇼맨은 그냥 별 생각 없이 보기에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소수지만 아직 몇 군데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