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린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영화 <마미>와 음악들
날이 춥지는 않지만 어느덧 겨울이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꼬깃꼬깃 접은 현금을 품은 사람처럼 겨울이면 품고 다니는 노래가 있다. 나만 알고 싶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유명했던 Oasis의 'Wonderwall'. 들을 때마다 노래가 닳는다면 이 노래는 아마 먼지 조각이 되어버렸겠다.
수능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마지막 시절, 학교를 끝내고 독서실에 가는 버스 안에서 틈틈히 노래를 들었다. 눈은 영어 단어를 보고 있어도 귀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플레이리스트의 터줏대감이었던 'Wonderwall'은 극악한 확률의 랜덤재생을 뚫고 자주 나를 찾아왔다.
시끄러운 버스 안의 소음 사이로 리암의 보컬이 섞여들었다. 하루를 비추고 노릇노릇 익은 햇빛이 버스창 안으로 샜다. 정거장을 하나 지나는 사이 햇빛은 이미 사그라지고 없었다. 넌 나의 원더월이야, 날 구원해줄 단 한 사람이니까-. 순식간에 어두워진 창 밖에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유 없이 훌쩍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영화관에서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만났다. 그날도 펑펑 울었다. 그렇게 내 삶에 섞여들어간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지만 ADHD로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스티브. 스티브는 사고를 쳐서 보호시설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스티브를 집으로 데려온 디안은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위태로운 생계 속에서 점점 스티브는 버거워진다. 우연히 이들을 만나게 된 카일라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서서히 안정적인 행복을 그려나간다.
그 해 겨울, 영화관에서 만났던 영화는 자비에 돌란Xavier Dolan의 <마미>(Mommy, 2014)였다. 수능이 끝나고 텅 비어버린 시간을 이 영화와 함께 영화관에서 몇 번이고 보내는 것으로 채웠다.
젊은 천재 감독, (어쩌면 조롱의 의미이기도 한) 칸의 총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돌란의 영화는 언제나 논쟁적이다. 호와 불호의 사이에서 그의 영화는 수많은 평가들을 끌고 다닌다. 이렇게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들을 보는 것은 참 흥미로운데 그만큼 장단점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은 단점을 알아도 장점에 빠져버리면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돌란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마미>는 정말로 사랑해마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감각적인 화면과 섬세한 연출을 사랑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물었다. 부스러지는 빛과 따뜻한 그림자. 찬란한 먼지와 불투명한 창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혹시 본 적 있냐고. 영화 OST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어쩌다 같은 감상의 사람을 만나면 신이 나서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 대화는 항상 <마미>가 음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시작한다. 138분의 러닝타임 속 18곡이 들어있는데 한 곡도 빼놓을 수 없이 주옥같은 곡들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이 영화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헤맸다. 이들을 단순히 영화의 배경으로 깔리는 background music이라고 말하기는 아쉽다. 감정이 고조되어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말하는 뮤지컬처럼, 하나의 언어로서 음악이 그들의 상황을 대변한다.
말을 더듬던 카일라가 셀린 디옹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당당히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엄마에게 치근덕대는 남자를 참다가 스티브가 '그녀를 위해 사네(Andrea Bocelli의 Vivo per lei)'를 부르는 장면도. 영화 속 음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묘하고 환상적으로 스토리와 어울린다.
영화의 스토리가 그래프라면, 이 영화가 그리는 두 번의 변곡점들은 장면 속 언어의 여백이 음악으로 꽉 채워져 있다. 뮤직비디오처럼 보일 정도다. 음악으로 진행되는 서사는 화면비의 전환과 함께 무언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다른 영화와 달리 <마미>의 기본적인 화면 비율이 1:1이기 때문이다.
정사각형의 화면에 갇힌 카메라의 시선은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 인상적인 시야는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세계와도 같다. 좁고, 소극적이고, 배제적인 세계. 영화의 시간을 살아가는 디안, 스티브, 카일라가 현실에서 느끼는 벽처럼 견고한 까만 색이다.
첫번째 변곡점. 스티브가 카일라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 받는다. 이 장면을 통해 세 사람 사이의 긴장이 툭 하고 깨진다. 다시 공부를 가르쳐달라는 스티브에게 카일라는 장난스레 윙크를 날린다. 영화 내내 불안정했던 분위기가 변화를 맞는다. 어쩌면 이 영화가 내내 짊어지고 있던 짐을 한 차례 내려놓은 여유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현실이 아닌 미래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멋쩍은 스티브의 헛기침과 함께 Oasis의 Wonderwall이 흐른다.
And all the roads we have to walk are winding
우리 함께 갈 길이 구불구불 험하고
And all the lights that lead us there are blinding
우리 앞의 모든 빛이 사라지더라도
생계를 위해 디안은 청소 일자리를 구했고, 스티브는 카일라의 도움으로 미래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카일라는 소심했던 성격에서 벗어나 이들과 어울리며 훨씬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좁은 화면 속, 롱보드를 탄 스티브와 자전거를 탄 디안, 카일라가 도로를 자유로이 달린다.
Because maybe,
그 이유는 어쩌면
you'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언젠가는 네가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아서
And after all,
결국엔
you're my wonderwall
넌 나의 원더월이니까
넌 나의 원더월이니까- 스티브는 손을 뻗어 양옆의 화면을 힘껏 민다. 어느새 세상은 넓어져있다. 영화가 스크린을 꽉 채운다. 그들의 찬란한 미래를 축복하는 것처럼.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처음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펑펑 울었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줄 원더월이라는게 온 감각으로 느껴졌으니까.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은 오래 가지 않는다. 스티브가 보호시설에서 한 아이를 화상 입게 한 사건에 엄청난 금액의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디안을 중심으로 다시 좁아지기 시작하는 시야는 암담한 미래 그 자체다.
가상의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행동문제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는 어려움에 처할 경우, 법적 절차 없이 공공병원에 아이를 위탁할 수 있다는 법이 존재한다. 첫 장면에서 스티브를 병원이 아니라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디안에게 보호소 직원은 안타깝지만, "사랑과 구원은 별개"라고 말했다. 디안은 "그런 비관적인 사람들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녀는 스티브와 행복할 수 있음을 자신했다.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애쓰던 노력도 스티브와의 행복을 꿈꿨던 미래도 다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스티브는 마트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디안의 선택이 정말 틀린 것이었을까?
두번째 변곡점이다. Ludovico Einaudi의 Experience이 흘러나온다. 집으로 돌아온 디안은 흰색 차를 새로 사곤 스티브와 카일라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행복한 이들을 태운 세상은 다시금 넓어진다. 사실은, 디안은 가만히 바라볼 뿐 스티브의 세상이 넓어지고 있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여자친구를 소개하고, 원하던 대학에 붙는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한다. 디안을 떠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면처럼 묘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사이, 불안감은 고조되고 디안은 이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의 앞에 빛이 일렁이는 행복한 미래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면은 다시 좁아진다. 답답해진 시야. 디안은 스티브를 병원에 위탁하기로 한다.
스티브를 병원에 보낸 뒤 디안은 혼자 살아간다. 남편의 일 때문에 카일라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니, 셋은 마침내 한 명이 될 것이다. 스티브를 병원에 보낸 것에 대해서 카일라는 디안과 깊이 얘기하려 하지만 디안은 괜찮다며 활기차게 웃는다. 카일라가 떠나고 나서야 나오는 눈물을 애써 막으며 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시선을 옮긴다. 직원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 한 직원이 잠시 스티브의 구속복을 풀자, 스티브는 앞으로 달려나간다. 달려나가는 스티브의 모습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많은 해석이 오가지만 나는 이 결말을 꽤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줄곧 스토리와 음악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올라오는 노래의 제목은 Lana Del Rey의 Born to die다. 죽기 위해 태어났다는 제목이지만 단지 죽음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노래는 아니다.
Feet don't fail me now
지금은 아직 걸을 수 있어.
Take me to the finish line
날 끝까지 데려가줘.
All my heart, it breaks every step that i take
내딛는 걸음마다 내 심장은 무너져내려.
But I'm hoping at the gates, they'll tell me you're mine
하지만 저 문들은 내게 당신이 내거라고 말해 줄거야.
스티브는 달린다. 스티브가 달려가는 문(혹은 창문)은 불투명하고 단단해 보여서 쉽게 열릴 것 같지는 않다. 저 문이 잠겨있다면? 혹은 깨트릴 수 없다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공간에서 도망쳤을 때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아마 스티브 스스로도 얼마 못가 잡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스티브가 '문'으로 달려갔다는 사실이다.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저 문들이 말해줄 것처럼 엄마에 대한 사랑을 절대 놓지 않을 스티브의 의지일 뿐이다. 그리고 스티브에게 한 번도 미래는 투명한 적이 없었다.
Sometimes love is not enough and the road gets tough i don't know why
때론 사랑은 부족하고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
...
The road is long, we carry on
가야할 길은 멀지만
Try to have fun in the meantime
가는 동안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자
Come take a walk on the wild side
이 거친 길을 같이 걷자
...
Cause you and I, we were born to die
너와 나, 우린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인간은 누구나 죽기 위해 태어났다. 스티브는 그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하지만 함께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끝이 오겠지만 그 때까지 사랑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때로 사랑은 충분하지 않고, 나아갈 길은 거칠지만 그래도 끝까지 사랑한다고.
다이Die가 디안(Diane "Die" Després)의 애칭이라는 점은 이 해석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준다. Born to "Die". 다이를 위해 태어난 스티브. 그렇기에 나는 이 노래가 스티브가 디안에게 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나는 항상 엄마를 위해 살게."
디안은 지쳤지만,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다. 스티브를 사랑하지만 여유가 없을 뿐이다. (물론 디안에게 당연히 스티브를 감당해야한다고 막연히 말하기도 어렵다.) 마지막 카일라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사랑과 구원을 비관적으로 놓아버리지 않았다. 앞과 같은 맥락이라면 스티브 역시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보드를 타고 날아오르던 Wonderwall의 모습과 엔딩의 달리기가 겹쳐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적어도 그 힘찬 발걸음으로 죽음을 향해 날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이렇게 사랑으로, 다이를 위해 달려가는 스티브로 기억된다. 그 길은 너무 멀고 거칠겠지만 어쩌면 언젠가는 서로를 구원해 줄 것만 같아서. 결국 이들의 원더월은 서로일 수 밖에 없으니까. 비록 우리 앞의 모든 빛이 사라졌더라도.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846
사실, 이 영상들이 올라와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유튜브에 올라와있긴 하다.
글에서 언급한 순서대로, wonderwall, experience, born to die.
영화 속 원더월도 기침 소리로 시작하는거 진짜 돌란의 센스
정말 사랑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