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리얼 라이프
대학 시절에 만나 결혼한 우리는 근 10년을 알고 지냈으니 서로에 대해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우스갯소리로 나눈 대화에서 나름의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자기야, 내가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쓰면 어떨 것 같아? 그런 걸로 싸우는 부부도 많대.”
“치약을 어디부터 짜는 지가 뭐가 중요해. 싸울 일 참 없다.”
이 단순한 대화에는 ‘넌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이니?’라는 본질이 빠져 있었으니
결혼 후에 몰아칠 태풍을 예상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신발 사고 싶어? 그럼 사,
대신 한 개는 버리는 게 좋겠어”
결혼 후 1년간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가장 큰 원인은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도 모를 때였다.
그것은 내가 곧 ‘맥시멀리스트 ‘맥시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는 의미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게는 양말, 크게는 옷 여러 벌, 신발 여러 개를 사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결혼 전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내 용돈에 한해서 소비하는 것이니 남편이 문제 삼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옷 사서 몇 번 입었어? 안 입는 옷은 버리는 게 어때?”
“신발 산다고? 그래 좋아. 대신 안 신는 신발 하나는 버려.”
“장식품도 그저 예쁘다고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예쁜 물건이 많다고 예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택배가 하나씩 올 때마다, 쇼핑봉투를 들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들려오는 남편의 말은 잔소리로 들렸고
그럴 때마다 구겨진 마음 또한 싸움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러는 넌?’ 이라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양말 한 켤레, 셔츠 한 장 등 자신의 물건을 아주 소중히 다룬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옷들이 좀 있는 편인데, 최근 남편 옷장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입던 점퍼를 하나 발견했다. 10년도 더 된 옷이지만 지금 입어도 좋을 만큼 헤진 곳 없이 깨끗한데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는지 입으니 트렌디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난 새 옷을 살 기회를 한번 잃었다…)
풍요 속 결핍이 준 선물, 미니멀라이프
내가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알게 된 홈페이지가 있다. 미니멀리스트(TheMinimalists.com)다. 2010년 무렵 죠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문을 연 ‘미니멀리스트’는 좋은 직장에 다니며 좋은 차, 커다란 집에 살며 남부러울 것 없던 이들이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게 된 계기와 실천 과정 등을 공개한 사이트로, 풍요로움이 결코 마음의 결핍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접하게 된 책도 있다.
소유에 대한 강한 물음표를 던지는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속에는 소유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준다. 그녀가 전한 미니멀라이프의 방법 중 공감하는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Do it _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Do it _ 마트를 창고로 생각하라
Do it _ 구입한 물건을 빌렸다고 생각하라
이 중 가장 인상 깊은 실천 방법은 구입한 물건을 빌렸다고 생각하라는 점이다. 물건을 빌렸다고 생각하면 그 물건을 사용하는 동안 소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사용 후 누군가에게 돌려줄 때도 집착하지 않게 되어 훨씬 마음이 홀가분하다. 물건의 순환으로 공존의 가치까지 경험할 수 있는 것. 미니멀라이프의 정점은 비움으로 상생까지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부부는 미니멀라이프에 공감하면서 집안 정리를 할 때 내버리기보다는 공유를 택하고 있다. 책은 벼룩시장을 통해 나눔을 하거나 헌책을 사고파는 바이백 서비스를 이용하고,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을 하거나 지역 벼룩 시장인 당근마켓을 통해 정리하며 쓸모 없는 것의 쓸모를 배우는 재미를 느낀다.
결혼 후 지금까지 약 5년 동안 자연스럽게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고백 건대, 결혼 전에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내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내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시간’이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시간에 나를 기대지 않는다.
앞으로 3년 후, 10년 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 지 고민하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부부가 함께 인생의 방향성을 논하는 날 역시 늘었음은 물론이다.
거실에 소파를 치웠다고, 옷장이 좀 헐렁해졌다고 어떻게 삶이 바뀔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불필요한 물건을 다 버리고 공간이 깔끔해지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와 그 빈 공간을 채우는 느낌”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 신기하게도 삶에 여백이 생기는 느낌이다. 그 여백은 진짜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거기엔 나와 우리가 있다. 쑥스럽지만 소비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습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신상품에 집착하고 세일 정보에 혈안이 됐던 지난 날들과 완전히 안녕할 날이 머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 리얼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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