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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 인사이드 Aug 03. 2018

영감을 얻는 제주여행

버스 타고 촌촌히 봅서예!


몇 번 제주를 찾았지만 나의 제주는 늘 조급했다. 렌터카를 빌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기념사진을 찍는 데 의의를 둔, 각종 미디어와 SNS에 소개된 곳들을 도장 깨기 하듯 돌아다녔던 시간들로 가득 찬 여행이었다. 제주 여행객 1600만 시대, 그곳에서 내가 찾은 건 핫플레이스와 제주 맛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그곳에 나의 제주는 없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진 제주가 아닌 나만의 제주를 마주하기 위해 다시 제주를 찾았다. 그리고 이번엔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제주 여행의 다짐

버스는 이 여행에 더할 나위 없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잔잔히 흘러가는 차창 밖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뗄 수 없었고, 제주 할망들과 버스 기사가 주고받는 제주 사투리를 들으며 낯설고도 친근한 제주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엇보다 느긋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낙낙한 마음과 여유 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데, 그때마다 웬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제주는 구석구석 숨겨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결치듯 흐르는 능선이 고운 용눈이오름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림까지, 제주의 다양한 푸르름을 마주할 수 있는 버스, 바로 810번이다. 13개의 오름 사이 비자림, 동백동산 습지센터 등을 달리다 보면 제주가 지닌 다채로운 초록빛이 매 순간 버스 창 안으로 쏟아진다.


그중 용눈이오름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오름 중 하나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찬찬히 약 30~40분 올랐을까? 초지와 오름, 삼나무 숲으로 덮인 제주 중산간의 한가로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서쪽으로는 한라산, 동쪽으로는 푸른 바다와 성산 일출봉, 우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인 시야.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멋스러운 오름의 완만함은 어려움을 주지 않으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다 포용할 것만 같은 편안한 감동을 안겨줬다. 오름에서는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을 위해 인간이 마땅히 다른 길로 오르기도 하고, 숲에선 울창한 듯 보이지만 서로 닿지 않으려는 나무들의 배려가 우리가 가는 길마다 햇살을 비춰주곤 했다. 810번 버스를 타고 마주한 제주의 자연은 어느 것 하나 이기적인 게 없으며 숲속의 생명은 공정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들이 내뿜는 푸르른 초록 기운을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제주의 원도심을 관통하는 제주시티투어버스에 몸을 실어 제주의 자연뿐만 아니라 이곳의 문화와 경제에도 나의 행복을 돌려줄 수 있는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이 동네의 멋과 맛을 간직하고 있는 카페, 시장, 작은 동네 서점 등을 현지인처럼 천천히 다니면서 그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말이다.



첫 번째 찾은 곳은 제주 동문시장 속 작은 동네 책방 라이킷. 동네 책방이 주는 매력은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엄선된 책이 새로운 감성의 카테고리를 만든다는 점이다. 책방 한편에 마련된 제주 관련 책들은 여기가 제주라는 곳을 다시금 환기시켜주는데, 이곳에서 제주를 담은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번 여행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주시청에서 간선버스를 갈아타 약 1시간 정도를 달려 김녕 해변에 위치한 카페 농띠다. 화려하지 않아도 조용한 바다와 잘 어울리는 제주의 시골집 그대로를 꾸며놓은 곳으로 이곳 마당엔 뛰노는 댕댕이들이 유독 많았다. 알고 보니 반려견 동반 출입이 가능해 개어멍이라면 다 아는 곳이라고. 특히 이곳엔 쌀, 보리라 불리는 상주견 강아지가 두 마리 있는데, 원래 유기견이었다고 한다. 사실 관광객이 넘쳐나는 여름, 제주 동물보호센터엔 휴가차 제주에 왔다가 자신의 반려견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유기견 비율이 타 도시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보호 동물 안락사 비율은 37%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한 사람의 여행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얼마나 무서운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눈 시리도록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따라 돌아볼 수 있는 202번에 몸을 실었다. 이 버스를 탔다면 한 번쯤은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아무 바다에 내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어딘가에 내려 바다를 계속 보고 있자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복잡한 생각이 파도에 떠내려가는 모래알처럼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는 바다와의 교감은 그때부터 시작-.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인데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게 된다.





배낭을 메고, 뚜벅뚜벅 걸으며, 버스를 타고 떠난 제주에선 그 과정 또한 하나의 여행이 되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진 제주가 아닌 나만의 제주를 찾기 위해 천천히 그 순간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고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지금 버스에 올라 어느 하나 이기적인 것 없이 공존하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 속으로 다가가 보자. 그대로의 제주가 보이는 그 순간, 우리의 제주 여행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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