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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의 무게

웹툰 작가가 말하는 저작권의 진심

by 마고신

매주 마감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플랫폼은 일정한 분량과 정해진 연재물을 요구하고, 독자는 언제나 새로운 전개와 반전을 기대한다. 작가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캐릭터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움직이게 하려면, 매 장면마다 숨은 사연과 논리를 쌓아야 한다. 한 화를 완성하기 위해 수십 컷의 표정과 몸짓을 설계하고, 그에 맞게 대사 톤과 흐름을 수십 번씩 되짚는다. 그래서 작가의 책상 위에는 늘 스토리 노트와 콘티, 인물 관계도, 대사 메모가 가득하다. 눈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멋진 웹툰 한 컷 뒤에는 수많은 고민과 실패, 그리고 다시 쓰기의 흔적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한 컷의 무게에는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의 땀과 노력이 채워져 있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작품이지만 타인에 의해 세계관이 쉽게 노출된다. 분명 스토리 작가가 설계하고 그림 작가가 그린 작품이지만, 어느 날 다른 플랫폼에서 제목만 바꿔서 새로운 주인공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이야기 구조는 비슷하고, 핵심 사건과 상징, 심지어 대사 톤까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무단 캡처본은 SNS를 타고 빠르게 퍼지고, 일부 팬들은 공유라는 명목으로 캡처 이미지를 재가공해서 퍼트린다. 이 모두가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작품은 작가의 심장이고 핏줄이다. 작품이 훼손된다는 것은 작가의 심장을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작품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디어에 송출된다면 홍보 측면에서 더 좋은 게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단으로 복제되고 재가공된 콘텐츠는 원작자의 정당한 수익에 영향을 끼친다. 독자는 불법 복제본으로 감상하게 되고, 정식 플랫폼에선 조회수가 점차 줄어든다. 이는 곧 작가의 생계와 직결된다. 하물며 스토리 작가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스토리는 눈에 보이는 그림이 아니기에 표절을 입증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선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사실, 그런 부담감을 떠안고 진행할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고 본다.


한국 웹툰 시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만화 생태계를 자랑한다. 매년 수많은 신인이 데뷔하고, 인기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게임으로 확장된다. 최근 업계는 ‘K-웹툰’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며 K-콘텐츠 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화려한 외형만큼 내부 시스템은 아직 견고하지 않다. 플랫폼 중심의 계약 구조는 신인 작가에게 여전히 불리한 게 현실이다. 일부 플랫폼은 표준 계약서를 도입했지만, 현실에선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 작가는 꿈에 그리던 데뷔 기회를 잡기 위해 불리한 조항도 감수하며 진행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저작권 침해는 작가 개인이 홀로 싸워야 하는 전쟁터가 된 지 오래됐으며, 나아가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에게까지 악영향이 미치고 있다. 이는 곧 작가의 작품과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K-웹툰’의 위상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종종 주변 작가들에게 묻는다. ‘계약서 꼼꼼히 읽었어? 권리 조건은 확인했어?’라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데뷔하고 싶어서 급하게 사인했어요. 이렇게 시작된 첫 연재는 작가의 이름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창작자 권리의 가장 취약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 틈을 파고드는 표절과 무단 복제는 언제든 작가의 꿈을 산산조각 낼 수 있으며, 작가는 연약한 병아리처럼 쉽게 쓰러질 수 있다. 병아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약하기에 가벼운 폭력으로도 일어날 수 없다. 건강한 환경 조성은 병아리가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최근 플랫폼과 유통사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AI 탐지 기술을 도입하고, 불법 유통 신고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작가의 체감은 여전히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이미 복제물이 퍼질 대로 퍼진 뒤에 삭제 조치를 해도 피해는 복구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해자는 이름만 바꿔 새 계정을 만들고, 같은 수법을 반복한다. 수많은 작가가 불법 복제에 따른 수익 손실과 표절 피해를 호소해도, 실질적 보상은커녕 정당한 법적 처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작가의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AI 기술 발전은 저작권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AI 데이터로 웹툰 이미지가 무단 수집되고, 작가의 화풍을 모방한 AI 그림이 쏟아진다. ‘참고만 했을 뿐’이라며 법적 책임을 피하지만, 그 참고의 출처는 분명 작가의 피와 땀의 수고다. AI는 순식간에 수천 장의 그림을 분석하지만, 그 데이터 하나하나는 수백 시간 동안 작가의 노력과 아이디어로 집대성한 작가 고유의 결정체다. 그럼에도 현행법은 이를 명확히 규제하지 못한다는 게 아픈 현실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법이 따라잡지 못한 사이, 작가는 또 한 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공격받으며 죽어간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창작자 스스로 권리에 대한 공부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계약 조항 하나라도 꼼꼼히 읽고, 문제가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창작자 커뮤니티와 협회를 통해 정보와 경험을 나누며,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독자도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하며,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앞장서서 근절해야 한다.


플랫폼과 유통사는 표준 계약서와 저작권 보호를 더 이상 ‘홍보용 문구’로만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실질적 법률 지원과 신속한 삭제 대응, 가해자 제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작권 침해자에게는 강력한 처벌이 따른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각인시켜야 한다. 작품은 작가의 심장인 동시에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시스템과 독자의 인식 변화에 힘써야 한다.


나는 독자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무심코 찍은 캡처본 하나, 아무 생각 없이 공유한 짜깁기 영상 하나가 한 작가의 생계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불법 복제본 대신 정식 플랫폼에서 한 편이라도 결제해 주는 것, 원작자의 출처를 밝히고 팬아트와 2차 창작을 할 때 최소한의 허락을 구하는 것, 이 작은 배려가 모여 작가를 지키고 콘텐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간곡히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웃고 울며 하루를 견디고, 때론 삶의 위로를 받는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 컷, 한 컷에 자신의 청춘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한 컷은 작가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책상에 앉아 내 세계를 이어간다.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꾼다. 그 힘은 정당한 보호 위에서 더 큰 가능성을 꽃피운다. 나는 나의 이야기가 끝까지 나의 이름으로 남길 바란다. 그리고 내 작품을 사랑해 준 독자가 권리까지 함께 지켜주길 부탁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실천부터다. 불법 복제물을 근절하고, 창작자를 존중하는 마음. 그것이 한국 웹툰이 진정한 문화 산업으로 성숙해 가는 길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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