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먼지가 온몸에 내려앉는다. 불안해진 손은 얼굴을 거칠게 만지는데, 결국 심장까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갈 곳 잃은 발은 여기저기 바닥을 후비고 다니는데, 손톱을 뜯던 손가락이 진정되고 나서야 호흡이 안정되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심리 상태는 언제나 그렇듯 초조하다.
스토리에 대한 집중력. 일하기 직전의 준비 단계. 잠깐의 멍 때리는 시간. 불필요해 보이는 요소들이지만 필수 과정 목록이다. 작업은 예민한 심리 상태일수록 완성도 있는 글이 나온다. 생각에 생각이 더해질수록 흘러가는 시간은 무의미 해진다. 작품의 주인공은 어느새 나와 하나가 되어 뼈 때리는 대사를 날린다. 여자 주인공을 구하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 과정이 다이내믹하게 연결된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면의 연구는 그렇게 머릿속에서 노트북으로 송출된다.
'모든 시공간의 형태가 작가 관점으로 돌아간다'
작업이 진행되면 모든 시공간의 형태가 작가 관점으로 돌아간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추측해 낸다. 그들과 나 사이에 대화는 없지만, 각자의 삶에 집중을 하다 보면 결국 작품이라는 교차 점에서 만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과 습관 그리고 가치관이 더해지고, 캐릭터는 조금씩 입체적인 인물로 모습을 드러낸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단점의 추가도 매력을 어필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생각보다 집중의 시간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딴짓을 하고 싶은 욕망이 서서히 손가락과 심장을 잠식해 간다. 진행한 작업물까지는 안전하게 저장 버튼을 눌러야 되는데, 게으른 성격 탓일까? 아니면, 실수가 몸에 베여서 그럴까? 가끔은 저장되지 않은 글들이 전원 off 버튼과 함께 세상 건너편으로 사라진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를 회상해 본다. 온몸은 경직되었고, 눈동자에선 붉은 실핏줄이 튀어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분노한 내 모습은 나조차도 무섭기에 저장 버튼은 작업 진행 중 수시로 하는 편이다.
'나는 집중하고 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마무리되지 않은 스토리를 연결한다. 짧은 집중의 시간은 눈을 감기게는 하지만, 완전히 어둠으로 깔리게 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조금 감긴 눈은 오히려 노트북에 시선을 더 집중시킨다.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려야만 한다. 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아야 독자는 환호하고 집중할 테니까.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나의 감긴 눈에 더 인상을 불어넣는다. 나의 극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어 주인공을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다. 힘들어하는 캐릭터들을 보며, 나의 손가락은 더 거침없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인지한 주인공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마치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고 싶은 욕망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고통이 길어질수록 나의 엉덩이에도 아픔이 동반된다.
시간이 지나도 초조한 심장은 거칠게 곤두박질친다. 잠시 수그러졌나 싶으면 다시 격하게 요동친다. 스토리에 동화된 나의 몸은 이제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주인공이 힘들면 힘든 대로, 떨리는 손과 두근거리는 심장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공기의 울림이 차갑게 느껴지면, 오히려 집중을 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완전히 몰입해야 글은 잘 써진다. 몰입해야 주인공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몰입해야 스토리에 감정을 실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스토리와 하나가 되어서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물리적인 두근거림이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심장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스토리를 끝내야 나의 아픔도 끝나겠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위험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이다. 쉽게 녀석들을 구해줘야만 나의 고통은 사라지는 걸까? 정적이 흐르는 이 순간에 나오는 글은 느낌부터가 틀리다. 그렇기에 녀석들이 쉽게 풀려나가는 장면이 등장해도 다음 스토리는 쉽지 않다. 나는 지금 글에 몰입되어 있다. 싸늘한 공기의 울림이 느껴질 만큼 예민하게 발동한 나의 손가락은 거침없는 행보를 걷는다.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손가락은 공기의 정적이 깨져야 자연스럽게 멈춘다.
'나는 스토리와 하나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이제 나 자신이 되었다. 무엇이 스토리고, 무엇이 현실인지, 나는 지금 판단하지 못한다.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나의 일상도 복구가 된다. 주인공은 지금 고민에 휩싸였다. 나의 손가락이 지금 멈추고 있으니까. 불안한 마음은 손톱을 뜯어야만 잠시 안정이 된다. 그런 이유라도 만들어서 글을 적으려는 내 각오는 이제 주인공 못지않다. 상황을 벗어나려는 죄수처럼 끈질기고 악랄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떨리는 이 감정이 너무 좋다. 실전을 경험해야만 나올 수 있는 느낌. 누구에게도 양보하기 싫은 개인주의는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작가의 의지다. 나의 감정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전쟁을 준비하는 병사처럼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그렇게 나와의 치열한 싸움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가슴으로 전해진다. 싸늘한 공기가 잔잔해지면 편하게 잠이 오는 새벽이 된다.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