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나간 기억에 갇혀 있다
기억이 시간을 넘겼다. 닿지 않는 손은 하염없이 그 사람에게로 향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잘못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악몽은 오늘 밤도 나를 괴롭혔다. 사소한 인연도 가벼운 인연은 없기에 지금도 나는 지나간 기억에 갇혀 있다. 벗어나야겠다는 간절한 바램도 이 순간만큼은 사치에 불과했다.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모르겠다. 이곳이 어디며? 무엇을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산이 여러 번 바뀔 만큼 머리카락이 자랐지만, 나의 생각은 아직 미숙하다. 그래서 나는 함구로 생을 보낸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답답함에 숨이 막혀 온다. 기억 속에 갇혀 버린 현재의 난 과거의 삶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만, 그런 기회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글이란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상상을 연결한다. 과거의 위대한 장군이 되기도 하고, 미래의 인류를 멸망시키는 외계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으로 채워지는 글들은 종종 나의 일상을 파괴한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헤매고, 참된 진실과 보통 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보통 진실과 사회적 진실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나는 글을 적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 아직은!
수많은 기억과 경험들이 백지 위에 글로 적힌다. 주인공을 힘들게 해야 하고, 악인을 부각하며, 주변인들에게 감성적인 일상을 선사한다. 그렇게 작은 세계관이 완성되면, 그들의 기억으로 또 다른 인생이 만들어진다. 때론 아픔을,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로 인물들의 감정선을 연결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감정 소비가 일어나고,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잊히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 허우적거리는 과거의 망상은 현실의 문에 부딪히며 활자로 나타난다. 나의 스토리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 경계선이 점점 희미해진다. 어쩌면 글을 적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을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잘못과 악몽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지만, 그 작은 빈틈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해짐을 느꼈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은 때론 일상을 괴롭히는 수단이 된다. 작품을 위한 수단으로는 좋지만, 그 외에는 그러지 못했다. 기억을 벗어난다는 것은 내가 나조차도 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에, 진지하게 나의 현재는 나의 과거와 직면했다. 힘들지만 과거를 인정하고, 그것조차도 나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를 위해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살아야 했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고 싶다. 힘든 기억들도 많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나를 인정해야 작품 속의 인물들도 만들 수 있다. 글을 적는다는 것은 생각을 적는 것이며, 아픔을 치료해 주는 것이며, 때론 선물을 주는 것이다. 순간이 힘들다 하여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난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나의 시련은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공감이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다. 그런 소소한 기대를 하며, 떨리는 심장을 붙잡고 스토리를 풀어간다. 세상에 전하고 싶은 짧은 메시지는 독자와 함께 감정을 나누며 나에게도 용기를 줄 것이다. 언젠가 기억이 시간을 넘을 때 웃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실수를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악몽을 소재로 개발하며, 과거를 참고자료로 쓸 수 있는 오늘의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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