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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ju park Dec 15. 2020

냉장고 없이 일주일 살아보았다.

*의도했던 건 아닙니다.

12월. 새 가정을 꾸리고 새집으로 이사했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가전과 혼수물품 리스트를 짜보며 최대한 절약하여 준비했다.


그 중에서 '냉장고'는 중고거래 어플인 당근마켓에서 20만원을 주고 이삿날 당일에 데려오기로 했다. 

엘지 디오스 양문형 냉장고였고, 소파도 같이 주신다고해서 굉장히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이사 당일.

 나는 이사물품을 옮겨 놓은 짐박스를 하나하나 풀며 혼자 정리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트럭을 가지고 냉장고를 가지러 가서 한참을 오질 않았다. 주인 어르신이 방문해서 '잔금 치를 시간이 지났는 데 언제 오느냐'며 물어보시기도 했다.

예정 시간에서 40분이 더 지나서야 도착한 남편은 땀 범벅이 되어 커다란 소파만 낑낑대며 들고왔다. 

냉장고가 너무 커서 이리 돌리고 저리돌려도 현관문으로 나올 생각을 안했다고 한다. 판매자 분도 오늘 이사가야하는 날이고, 현관문의 사이즈는 미처 계산을 못하셨는지 '어떡해, 어떡해..'만 연신 외치셨다고 한다. 결국 거래는 포기하고 소파만 제발 가져가달라고 하셔서 들고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내려와 다른 입주민이 12월 말에 이사가는데, 그 옵션 냉장고를 떼어주겠으니 한달만 참아보라했다. 음식이 상하는 건 참아보라고 한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새로 구입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설치는 최소 일주일이 걸렸다. 

나는 냉장고도 쿠팡마냥 2~3일만에 바로 되는 줄 알았다.



사진 제일 오른쪽 문이 작은 베란다로 가는 문. 저곳을 임시 냉장고로 사용했다.

주방에 냉장고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있는 것을 바라보며 살짝 막막해졌다. 냉장고 없이 살아 본 경험이 없는데. 

일단 가지고 온 식재료 부터 상온 보관, 냉장 보관을 분리해 봐야했다.

파스타면, 당면, 소면은 싱크대 하부장 서랍에 모셨다. 나머지 고추장, 굴소스 등의 장류도 아직 뜯지않았으니 하부장에 넣었다. 오래먹기위해 흙이 잔뜩 묻어있는 통마늘 1키로를 구입했는데 베란다 가까운 곳에 박혀있는 못에 걸어두고 일주일 만에 먹을 정도만 까서 보관통에 넣었다.

냉동식품은 아직 사지않아서 다행이었다.


냉장고에 넣었어야 할 물건들은 보일러실에 넣었다. 주방근처에서 미닫이로 되어있는 문을 열면 아주 작은 베란다가 나오는데, 날이 추워서 임시로 냉장고로 쓸 만했다. 우리집 냉장고는 1000L도 넘는다며 애써 위로했다.

새출발을 기념하겠다고 산 케이크도 임시 냉장고에 넣고 조금씩 꺼내 먹었다.

베란다 문 앞에 포스트잍을 붙여두었다.

금방 상할 것들은 긴급!표시를 달았다. 이렇게 적어두니 잊어먹지 않고 처리 할 수 있어 좋았다. 수시로 왓다갔다하면서 아, 이게 있었지 하고 꺼내서 먹었다.



가끔은 배달! 


냉장고가 없는 일주일 동안 오래 보관해야 할 음식들은 사지않았다. 냉동식품도 사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긴했지만, 금방 먹을 양만 구입해서 소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다음날 아침메뉴까지 계산해 식재료를 사두고 열심히 집밥을 먹으며 버려지는 쓰레기가 없도록 했다. 


처음에 냉장고 없이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되었을 때는 일주일 내내 배달만 시켜먹으며 살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의외로 배달은 잘 시켜먹지않고, 식재료를 조금씩 사서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으며 

성능 좋은 베란다 덕분에 케이크를 사왔을 때 빼고는 음식이 상할까 초조하지도 않았다. 


이때 식재료를 파악하고 잘 관리하는 습관이 생겨서 냉장고를 산 지금까지도 상해서 음식을 버리는 일이 없다. 환경 운동가가 되어 냉장고 없이 살기 챌린지를 하고 있다는 설정도 하면서 재미있게 살았다.

하지만 다시 냉장고 없었던 때로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과 얼음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겨울이라 다행이었던, 두 번 경험 하기 힘든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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