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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슬비 May 20. 2020

들어서며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내줘서 고마워>를 내고 많은 후기와 댓글 등을 받았다. 책을 읽으신 분들은 좋은 말을 해주셨지만,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뻔한 책이라며 비난의 말을 많이 하셨다. 저런 엄마를 가진 것이 행운이라며, 자신은 그렇게 말하면 엄마에게 욕먹을 거라는 말들이었다. 그런 반응들이 마음 아팠다. 읽지도 않은 이에게 나의 책이 비난받는 것이 마음 아픈 것이 아니라, 읽어볼 생각도 못하고 날 선 말을 쏟아내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엄마이고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도 엄마이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도 엄마여서 나의 이야기는 엄마를 지나지 않고는 풀어낼 수 없다. 그래서 모녀 관계란 특별하다.

 어찌어찌 버텨보니 세상 많은 딸들의 마음을 알 거 같다. 애증의 관계. 죽도록 싸우지만 엄마가 없으면 내가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는 세상의 많은 K-장녀 말이다. K-장녀란 그렇다. 장남처럼 혜택과 희생이 동반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의 장녀는 엄마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집안의 기둥도 되어야 하며, 집안의 기둥으로서의 혜택은 받지 못한다. 나는 그래도 형제가 없어서,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른 집의 장녀들은 사소한 물건, 음식까지 모두 양보해야 하는 위치라고 했다. 엄마와 딸은 정말 특수한 관계이다. 이상하게도, 엄마의 친구 역할, 강아지 같은 애교장이 역할은 딸의 영역이다. (필자는 그걸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는 역할을 감당하다 보니, 딸의 무게는 그 어느 무게보다 무겁다. 딸 입장에서 이것을 엄마만 탓할 수 없는 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안고 우리를 키워주시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여성의 역사에 살아가는 두 여자는 서로를 안다. 그리고 딸은 안다. 지금은 그래도 엄마 때보다 훨씬 나아진 세상임을. 그나마 나아진 세상이 이러한 것을 잘 안다.

 한국의 딸들에 대해 쓰고 싶다. 엄마와 죽도록 싸우고도 엄마가 없으면 나의 삶의 이유도 사라지는 것 같은 우리네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어서 그 마음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만, 당사자로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내 마음을 탐구해보려고 한다. 딸로서, 나의 마음을.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탐구해보려고 한다. 딸의 엄마로서 그 마음을 말이다. 모녀라는 알 수 없는 관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딸에게 당신도 알지 못하는 상처를 투영하는 엄마와, 엄마에게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상처를 주는 딸 그 두 관계는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 책은 논문은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공감되는 글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나와 엄마의 관계를 통해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 혹은 당신과 당신의 따님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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