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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Sep 14. 2023

현실에서는 지옥의 솔로인 내가...

이세계에서는 시그널에 환승까지?

바야흐로, 연애 프로그램 전성시대!

'전 연인과 합숙’이라는 파격적인 컨셉의 ‘환승연애’, 흡사 연예인 같은 비주얼의 싱글들이 모여 새로운 사람들과 데이트를 하는 ‘하트 시그널’, 결혼을 위해 짝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나는 SOLO’, 이혼 경험이 있는 출연자들의 ‘돌싱글즈’ 등… 방식도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이러한 연애 프로그램은 유독 MZ세대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연애’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에디터 널리는 몇 년 전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에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싸움 구경, 그다음으로는 남들의 연애 이야기라지만… 모두 비슷하게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이기도 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굳이 볼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는 간질간질한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했으나, 사랑과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고통을 왜 화면 안에서까지 느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마냥 좋은 화면 속 사랑도 있는데.


그 예로… 내 취미이자 특기인 아이돌 덕질은-가끔 마음이 찢기는 예외도 있으나-대체적으로 행복한 감정만을 내게 선사해 준다. 물론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에 있긴 하지만, 실제로 연인만큼 가까이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은 없기 때문에 사랑하며 감내해야 할 감정 소비가 현저히 적다. 이전의 연애와 비교했을 때 덕질이 도파민의 최댓값은 더 큰 것 같은데...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도 훨씬 덜하고 말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딱 보고 싶은 바로 그 모습들을 찾아서 그때그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크게 작용한다. 여하튼 모종의 이유들로 아이돌 덕질에 흠뻑 빠져 산 지 어언 1n년차 케이팝 처돌이 널리에게 화면 밖 실제 사랑과 연애는 당연히 뒷전이었고, 더 솔직하게는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할 시간에 오빠들의 자체 제작 콘텐츠를 하나 더 보겠다’ 싶었더랬다.


이쯤 됐으면 MZ세대는 왜 이토록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인지 꽤나 궁금해졌다. 안 보는 사람은 죽어도 안 보던데. 그래서 안 보는 사람 대표로, 자타 공인 연애 프로그램 처돌이들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아래는 인터뷰 일부를 발췌했다.


Q1. 연애 프로그램 중 어떤 형식을, 왜 좋아하나요?


A1. ‘하트시그널’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특별한 설정이 있는 것보다 보기에 더 편하고 새 인연을 만나는 과정에서의 감정에 공감이 잘 돼요. (24세/여)

A2. 전 연인끼리 아닌 척, 모르는 척 있는 ‘환승연애’를 가장 좋아해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현실 같아서 도파민이 돌아요. (21세/여)


Q2. 연애 프로그램을 어떤 마음으로 시청하나요?


A1.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기도 하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출연자가 있으면 그 모습을 배우려 하기도 해요. 그래서 완벽하게 짜인 판보다는 솔직한 감정선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이 좋아요. 출연자들의 감정에 진정성이 느껴져야 공감이 되고, 프로그램에 호감이 생기거든요. (24세/여)

A2. 너무너무 설레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사랑 앞에 다 비슷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웃겨하기도 해요.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느껴지면 오히려 웹드라마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리얼한 연애 프로그램이라야 재미있는데, 요즘은 프로그램 출연이 ‘인플루언서 등용문’처럼 여겨지는 감도 있는 것 같아요. (21세/여)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을 스크린 속에서 ‘간접 경험’하고, 또 공감하는 세대다. 리얼리티를 넘어, ‘하이퍼 리얼리티’라는 단어가 왜 나왔겠는가? 바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기 때문이다. 요즈음 인기 있는 예능들을 몇 개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패션부터 화장법, 심지어는 특유의 말투까지 그대로 재현해 숨 쉬듯 흑역사를 생성하던 시절의 추억을 강제로 소환시키는가 하면, 주변에 열댓 명은 있을 법한 친구들의 일상 모습을 거푸집으로 옮겨다 놓은 듯 연기해 마치 눈앞의 실제 상황인 것처럼 현실감을 더한다.


연애 프로그램의 유행 역시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지금의 MZ세대는 친절하지 않은, 광범위한 세대 구분과 미디어가 만들어 낸 ‘금쪽이’ 이미지에 갇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고, 그렇기에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과 잘 맞는 것을 곧잘 찾아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이 투철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 말인즉슨, 저마다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부지런히 일상을 일구어 나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사 빠진 것 같은 이미지로 조롱당하는 MZ세대의 실제 일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연애’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무한 경쟁 사회에서, MZ세대는 젊음을 일에 갖다 바치기 일쑤다. 대학생은 용돈 벌이를 위한 아르바이트와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대외활동 혹은 인턴 경력에, 직장인은 미래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 … 실제 연애는 ‘사치’로 여겨진다. 그렇게 디지털 네이티브 MZ세대는, 연애 프로그램 시청을 통해 남들의 연애를 지켜봄으로써 ‘유사 연애 감정’을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의 MZ세대가 열광하는 연애 프로그램들은 진솔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 마치 내가 처한 현실처럼 연애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콘텐츠다. 당장에는 연애를 하고 있지 않지만, 나중을 대비해 감정 표현 방식을 배우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사회가 만든 ‘금쪽이’ MZ세대는 미래 걱정에, 내일의 돈 걱정에 연애할 여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연애 프로그램이 성행하는 것은, 각박한 현대사회 속 우리만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흔한 사랑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정교하게 드러나는 개개인의 감정선과 진정한 사랑 앞에서만 나오는 인간의 지질함이 더해져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마주하고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아, 이게 사랑이지.’ 싶은 순간들에, 마지못해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것!


이런 것들이 연애 프로그램의 의미라면, 사랑에 메마른 요즘 젊은이로서 한 번쯤 시청하며 느린 심장박동에 속도를 더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연애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 않았을 뿐,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적 경험인지 매우 잘 아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언젠가 나도 연애 프로그램에 입문하게 될지, 늦바람이 무섭다는데… 어느새 과몰입해서 뒷북을 둥둥 울릴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관심 없었던 콘텐츠에 대해 고찰해 보면서 또 한 번 사랑을 알아가고, 우리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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