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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Aug 26. 2022

마르지 않는 욕실

신니의 제주살이 1

부산에 살 때도, 서울에 살 때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처음 며칠 동안 평소대로 아침에 샤워하고 창문과 욕실 문을 열어두고 나왔는데, 도통 저녁이 되어도 바닥에 있는 물기가 마르지 않는 것이었다. 어지간히 맑고 건조한 날씨가 아니면 쉽사리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 사는 선배가 욕실에 물방울 자국과 물때 끼는 게 싫어서 벽과 바닥을 스퀴지로 긁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필수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당장 이케아 스퀴지를 주문하고 벽과 바닥 물기를 긁어내는 것을 내 샤워 루틴에 추가했다. 번거롭지만 이제는 확실한 습관으로 자리 잡은 자연스러운 루틴.


샤워를 끝내고 젖은 몸에 베이비오일을 바르고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들을 수건으로 톡톡 닦아낸 후 머리에 수건을 얹고 높은 창틀 S자 고리에 걸려있는 스퀴지를 집어 든다. 거울부터 시작해서 시계 반대방향의 모든 벽을 긁어내리고 다시 욕실 입구부터 배수구까지 바닥의 물기를 긁어낸다. 스퀴지를 제자리에 걸어두고 창문을 활짝 열고 나오면서 슬리퍼를 슬리퍼 걸이에 걸어두고 환풍기를 켜고 욕실 문도 열어두면 끝.


물기가 많아 곰팡이도 잘 생기기 때문에 무겁지 않은 욕실용품 대부분은 벽에다 걸었다. 어떡하면 이 섬에서 건조하게 살 수 있을까. 너무나 촉촉한 섬..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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