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을 위한 이전 세대의 희생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적, 현실지향적인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남을 위해 자신이 죽거나 희생하는 건 이해할 수 없어. 결국 자기가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니까”
나는 그 말이 이해는 갔지만, 그래도 내가 죽음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다면 그 죽음은 고귀하게 볼 수 있지 않느냐 생각했다.
전쟁도, 핍박도 없는 현대의 대한민국에 살면서 나는 가급적 그 지인의 의견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려 하고 있다. 나를 희생하지 말자. 나에게 이득이 되게 행동하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 존재가 무로 사라지더라도, 즉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가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신분과 성별, 심지어 식민지 국적으로 차별당하며 당시의 남자들보다 낮은 계층에 위치했던 그녀들은, 어떻게 자신들한테 유일하게 남아있던 목숨이라는 가치를 그리 쉽게 내놓을 수 있었던가.
그녀들은 당당하게 “부모에게, 아이에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라며 나라를 위해 건강과 시간과, 재산을 바쳤다. 시대의 몰아치는 폭풍에 가만히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꺾이더라도 곧게 뜻을 펴는 나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부끄러움쯤이야, 합리화하면 그만인 것을.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세속에 젖은 머리로 그렇게도 생각하며 그녀들을 가여워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그녀들의 삶이 친일파의 그것보다 여지없이 빛나보였다.
역사 속 너무나 고귀한 그들의 이름이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잊혔다는 것이 슬펐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의열단의 김원봉은 머리에 못이 박히게 외웠으면서, 그의 아내인 박차정이 얼마나 열심히 삶을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였는지 알지 못했다. 기녀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여성해방운동과 독립운동을 이끈 정칠성의 이름도, 독립이라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기 조종사가 된 권기옥이라는 이름도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게 된 데에, 나아가 여성들이 조선시대의 지독한 남존여비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는 데에 그녀들의 노력과 희생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 나 개인을 위해 쓰인다면 그저 끝나버릴지도 모르지만, 나를 죽여 많은 이들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정말 한 사람의 목숨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