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전투를 충실히 재현한 고전영화
The Battle Of The River Plate (1956)
감독: 마이클 포웰(Michael Powell), 에머릭 프레스버거존(Emeric Pressburger)
출연: 존 그렉슨(John Gregson), 안소니 퀘일(Anthony Quayle)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독일군 전함 그라프 쉬페(Graf Spee)는 남대서양 일대에서 연합국 상선들을 공격하기 출동했다. 그라프 쉬페의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월등한 속력을 자랑하는 그라프 쉬페를 이용해 연합국 선박들을 차례차례 침몰시킨다. 이에 영국 해군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나타나 그라프 쉬페와 치열한 전투를 펼친다. 수세에 몰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게 되자, 랑스도르프는 배를 포기하고야 만다. 독일함대의 자존심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라플라타강 전투는 마무리된다.
1939년, 독일이 전쟁을 선포하기 열흘 전, 독일 장갑함 그라프 슈피는 대서양으로 향했습니다. 그라프 슈피는 포켓 전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크기는 작았지만 빠르고 강력한 무장을 갖춘 전투함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프 슈피는 남대서양 일대에서 영국 상선들을 하나 둘 수장시켰습니다.
1939년 11월 15일 수요일
독일군이 영국 상선 '아프리카 셸'을 폭파시킵니다.
'아프리카 셸'의 선장 패트릭 도브가 독일군 사관에게 항의합니다.
전쟁 초기의 독일은 상선을 나포하면 선원들은 대피시킨 뒤 배만 침몰시켰습니다.
그라프 슈피의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군인이기 이전에 뱃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뱃사람인 포로들을 인도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라프 슈피는 보급을 위해 따로 항구를 찾지 않았습니다. 모든 보급은 해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라프 슈피와 군수지원함이 나란히 달리는 가운데 보급이 이루어집니다. 랑스도르프는 보급에 관심을 보이던 도브 선장에게 그라프 슈피의 해상보급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도브 선장은 쌍안경을 보급선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보급선에 알트마르크라는 함명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제대로 위장을 못했군."
랑스도르프가 불평하듯 말했습니다.
독일군은 위장을 위해 수시로 배 이름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굴뚝과 포탑을 더미로 만들어 전혀 다른 배처럼 보이게 위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배처럼 보이게 할지는 '제인연감'을 보고 결정했습니다.
'제인연감'은 영국의 군사 분야 전문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입니다. 독일군이 영국 책을 보고 자신들의 배를 위장하고 있었던 겁니다. 참고로 '제인연감'은 엄청 비쌉니다.
"멋지게 하고 계십시오. 곧 알트마르크의 포로들이 옮겨올 테니까요."
군수지원함에는 영국인 포로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라프 슈피에게 당한 선원들이었습니다. 곧 알트마르크의 포로들이 그라프 슈피로 옮겨올 것입니다. 포로를 옮기는 이유는 머지않아 그라프 슈피가 본국으로 귀환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영국 상선 '도릭 스타'가 침몰합니다.
도릭 스타는 침몰 직전에 가까스로 무전을 보냈습니다. 도릭 스타의 구조 신호를 수신한 연합군 추격대가 곧 들이닥칠 것입니다. 랑스도르프는 추격을 따돌리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영국 순양함 에이잭스, 아킬레스, 엑세터는 라플라타 강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기함은 헨리 하우드 제독이 이끄는 경순양함 에이잭스였습니다. 그들은 그라프 슈피를 뒤쫓고 있었습니다.
하우드 제독이 아킬레스와 엑세터의 함장을 자신의 기함으로 불렀습니다.
하우드 제독은 며칠 전 도릭 스타가 발신한 구조 무전을 수신했습니다. 그는 도릭 스타의 무전을 바탕으로 현재 그라프 슈피가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를 예상해 봅니다.
"나는 셋 중 하나일 거라고 봐.
하나, 다시 인도양으로 돌아가거나,
둘, 덴마크 해협을 통해 독일로 향하거나,
아니면... 셋, 귀국하기 전에 여기로 올 거야, 우리 쪽으로.
내 직감으로는 세 번째가 유력해."
하우드 제독의 함대는 고작 3척의 순양함으로 남아메리카 해안 전체를 커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우드 제독은 다른 지역은 과감히 포기하고 라플라타 강 인근에 전력을 집중시킨 것입니다. 그의 판단이 맞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12월 13일 수요일 아침
일출에 맞추어 에이젝스에서 정찰기를 띄웁니다. 함대 전체가 바다를 꼼꼼히 뒤졌지만 그라프 슈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우드 제독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때, 에이잭스의 견시가 수평선 너머에서 연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확인을 위해 중순양함 엑세터가 연기가 보이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엑세터가 연기를 향해 다가가는 동안, 에이잭스의 수병들은 연기의 정체가 포켓 전함이 맞는지 아닌지를 두고 설왕설래합니다. 잠시 후 엑세터로부터 발광신호가 수신되었습니다.
"적함 발견!"
"적함 발견!"
그라프 슈피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양국 함선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교전을 준비합니다.
하우드 제독의 예상이 들어맞았습니다. 하우드 제독은 본국에 무전을 보냅니다.
"해군본부에 이렇게 전달하게.
'포켓 전함과 교전 중임' 우리 좌표도 알리고!"
엑세터가 깃발을 휘날리며 그라프 슈피를 향해 항진합니다. 그라프 슈피에게 최대한 접근하여 공격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라프 슈피의 주포는 11인치였고 엑세터의 주포는 8인치였습니다. 그리고 에이잭스와 아킬레스의 주포는 고작 5.9인치였습니다. 그라프 슈피의 주포가 더 강력하고 더 멀리 쏠 수 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거리를 좁힐수록 유리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라프 슈피의 포탄이 먼저 날아듭니다. 심지어 후방에 있는 에이잭스에게까지 포탄이 미칩니다. 엑세터도 곧바로 응사합니다.
그라프 슈피가 빠듯하게 사정권에 들어오자 에이잭스의 함포도 불을 뿜었습니다. 아킬레스도 뒤이어 발포합니다. 그라프 슈피가 중순양함 엑세터의 탄착군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라프 슈피의 주변에서도 물기둥이 솟아오릅니다.
하우드 제독은 함대를 양쪽으로 나누어 그라프 슈피의 공격을 분산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랑스도르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놈만 팹니다. 그라프 슈피의 주포는 중순양함 엑세터만을 노리고 집중 공격했습니다.
그라프 슈피의 포탄이 엑세터의 전방 포탑에 명중합니다. 그 바람에 함교 인원 대다수가 사망하고 엑세터의 함장만 살아남았습니다. 함내 통신마저 두절되어서 엑세터의 지휘계통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기와 불길이 엑세터를 뒤덮었습니다. 엑세터의 함장은 함을 복구시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아킬레스도 그라프 슈피의 5.9인치 부포에 피격당했습니다. 함선의 숫자는 영국이 많았지만 화력에서는 오히려 독일이 앞섭니다.
어느새 엑세터의 모든 주포가 침묵합니다. 그리고 통제력을 잃은 엑세터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더 공격받는다면 엑세터는 침몰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우드 제독은 그라프 슈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경순양함 에이잭스와 아킬레스로 그라프 슈피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동시에 에이잭스와 아킬레스의 주포가 불을 뿜습니다. 하우드의 과감한 공격에 그라프 슈피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순양함들이 마치 구축함처럼 달려들자 그라프 슈피도 당황하는 듯 했습니다. 결국, 그라프 슈피는 결국 침로를 180도 바꾸어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손상이 심한 엑세터는 포클랜드로 회항하였고 에이잭스와 아킬레스가 상처 입은 사냥감을 뒤쫓습니다. 추격 중에도 양측은 포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자정 무렵, 그라프 슈피는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우루과이는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양측은 더 이상 교전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독일군의 방문에 몬테비데오는 난리가 났습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의 외교관들이 차례로 우루과이 외무장관을 찾았습니다. 우루과이는 중립국이었지만 영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나라였습니다. 반면에, 강 맞은편의 아르헨티나는 독일과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독일 군함이 우루과이로 들어가는 바람에 일이 복잡하게 꼬여버린 겁니다.
날이 밝자, 항구는 그라프 슈피를 구경하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라프 슈피의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로 실황중계되었습니다.
전사한 독일 수병들의 장례가 치러지는 가운데 포로들이 석방됩니다. 그라프 슈피를 떠나기 전, 도브 선장이 랑스도르프를 찾아 그간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헤이그 협약에 따르면 교전국의 군함은 안전 목적이 아니라면 중립국 내에서 수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투력 증강을 위한 수리도 일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그라프 슈피의 수리에 최대 2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우루과이는 독일이 전투력 증강을 위해 2주의 수리기간을 주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우루과이 당국이 허락한 시간은 고작 72시간뿐이었습니다. 그라프 슈피는 12월 17일 오후 8시 전에 몬테비데오 항구를 떠나야 했습니다.
상황이 영국측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우드 제독은 그라프 슈피가 조금 더 항구에 머물러주기를 바랐습니다. 에이잭스와 아킬레스만으로는 그라프 슈피를 상대하기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영국 함정들이 속속 몬테비데오로 모여들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지원군조차 도착하는 데에는 5일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만약 그라프 슈피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든다면 영국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라프 슈피를 꺽을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영국은 일부러 보안이 허술한 전화선을 통해 다수의 영국 군함들이 몬테비데오에 곧 도착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이 제대로 먹혔습니다. 거짓 정보가 석간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12월 17일 일요일 아침.
몬테비데오 항구에는 독일과 영국 해군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30만의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랑스도르프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이대로 항구에 주저앉아 우루과이에 억류되거나, 영국의 포위망을 뚫고 공해로 달아나거나, 아니면 좌초될 위험을 무릅쓰고 얕은 라플라타 강 건너편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때에도 영국군이 가만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녁 무렵, 그라프 슈피가 드디어 몬테비데오 항구를 벗어납니다.
몬테비데오에서 5Km 정도 벗어났을 무렵, 그라프 슈피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확히 일몰 시간에 맞추어 자침합니다. 영국이 드디어 바다의 호랑이 그라프 슈피를 잡았습니다.
랑스도르프와 그라프 슈피의 승조원들은 배를 옮겨타고 아르헨티나로 향했습니다.
영화는 강바닥에 주저앉은 채 화염에 싸인 그라프 슈피를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라플라타 강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바다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였습니다.
영화에서 영국인 포로들에 대한 묘사는 '아프리카 셸'의 선장 패트릭 도브(Patrick G. G. Dove)가 쓴 '나는 그라프 슈피의 포로였다'(I Was Graf Spee's Prisoner)를 참고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패트릭 도브는 영화에 자문 역할뿐만 아니라 카메오로도 출연하였습니다.
패트릭 도브 역은 버나드 리가 맡았습니다. 버나드 리는 007 시리즈의 'M'으로 오랜 기간 출연하셨던 분입니다. 초대 M이자 최장기 M이었습니다.
하우드 제독 역을 맡은 앤서니 퀘일은 제가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자주 뵈었던 분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실 분이니 그때 가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라프 슈피는 미국 순양함 USS 세일럼(USS Salem)이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하우드 제독의 HMS 에이잭스는 영국 경순양함 HMS 셰필드(HMS Sheffield)가 맡았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엑조세 미사일을 얻어맞았던 셰필드와는 다른 배입니다. 이름만 같습니다.
HMS 엑세터는 HMS 자메이카(HMS Jamaica)가 역할을 소화했고...
HMS 아킬레스(HMS Achilles)는 HMS 아킬레스입니다. 실제 라플라타 강 전투에 참전했던 함선이 영화에 그대로 출연했습니다. 라플라타 강 전투 당시 HMS 아킬레스는 뉴질랜드 왕립 해군 소속이었습니다. 영국은 아킬레스를 전쟁 전에 뉴질랜드에 임대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아킬레스를 돌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아킬레스는 1948년 인도 해군에 매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촬영 당시 아킬레스호는 인도 해군 소속이었습니다.
참고로, 뉴질랜드 소속 아킬레스가 HMS를 쓰는 이유는 뉴질랜드 왕립 해군을 뜻하는 HMNZS가 1941년 10월 1일에 발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플라타 강 전투가 있던 시기에는 뉴질랜드 함정들도 다른 영국 함정들처럼 HMS를 썼습니다.
HMS: Her(or His) Majesty’s Ship
여왕 폐하의 선박
HMNZS: His(or Her) Majesty’s New Zealand Ship
여왕 폐하의 뉴질랜드 선박
그리고 촬영용으로 함정으로는 영국 구축함 HMS 배틀액스(HMS Battleaxe)와 미국 구축함 USS 윌리엄 러쉬(USS William R. Rush (DD-714))가 동원되었습니다.
미국 구축함 월리엄 러쉬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였고 1978년 7월에는 우리나라에 이관되어서 강원함(DD-922)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12월까지 운용되었습니다.
이후 강원함은 창원에 위치한 진해해양공원에서 전시용 쓰이다가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스크랩 결정과 동시에 다시 해군에 회수되었습니다. 강원함은 2016년 11월 20일 공식적으로 완전히 퇴역하였습니다.
가끔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왜곡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역사를 다루는 태도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라플라타 강의 전투'에서는 역사를 대하는 제작진들의 진지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전쟁 영화 중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니 한 번쯤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후 에피소드는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 라플라타 강의 전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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