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혜화동의 빗소리는
혜화동에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시 쓰는 선배의 꽁무니를 마르고닳도록 따라다니는 대학 1년생이었다. 그날도 "술 잘 마셔야 시 잘 쓴다"는 믿음으로 선배가 흘린 싯구라도 줏어담을 요량이었다.
배고픈 두 시인지망생이 "은혜"를 입은 날이었다. 선배는 과천경마장에서 2만 원을 배팅하여 10배가 터지는 바람에 술값을 두둑히 번 것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나는, 얼떨결에 9살 많은 선배를 따라 혜화동 로터리에서부터 성대 앞 육교까지 이 술집 저 술집을 들락거리며 만취해갔다. 2차선로 양옆으로 늘어선 소주방과 호프집, 분식점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비 냄새와 술내가 섞인 나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그를 따라 '풀무질' 서점 뒤쪽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적벽돌로 쌓아올린 2층의 양옥집은 한눈에 봐도 자취생을 위해 지은 집이다. 굳이 잠그지 않아도 되는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시멘트로 미장을 한 좁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 중앙은 수돗가다. 이 수돗가는 자취생들이 간단한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나 조리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나는 수돗가를 보자마자 '타는 목마름'으로 입을 수도꼭지에 대고 벌컥벌컥 물을 빨아먹었다.
그의 방은 책상 하나와 남자 두 명이 누우면 맞춤한 공간이었다. 손바닥만 한 창은 덤이다.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며 떨어지는 빗물은 창턱에서 다시 한 번 튀어올랐다. 빗물이 튀어 방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는 굳이 창문을 닫지 않았다. 나도 빗소리를 듣는 것이 더 좋았다.
둘은 신문지 한 장을 펼쳐놓고 마주 앉아 오징어를 찢어 먹으며 소주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창쪽으로 붙어 있는 그의 책상엔 너덜너덜해진 <김종삼 시전집> 한 권과 몇 권의 시집이 전부였다. 그는 대학 입학 후 9년 동안 혼자 서울살이를 하며 이사만 수없이 다니다 보니 그 많은 책도 그에게는 다 짐일 뿐이었다. 그래도 <김종삼 시전집>은 그의 이삿짐에서 한 번도 덜어낸 적이 없었다. 책 옆에는 청계천에서나 구했을 법한 모차르트 시디가 몇 장 꽂혀 있었다. 그는 생각난 듯 일어나더니 모차르트 시디 한 장을 꺼냈다. 친구가 버린 컴퓨터 본체에서 떼어낸 전원공급장치와 컴퓨터 CDP를 연결해서 음악을 들었던 모양이다.
대화
- 김종삼
두이노성 안팎을 나무다리가 되어서
다니고 있었다 소리가 난다
간혹
죽은 친지들이 보이다가 날이 밝았다
모차르트 동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에게 인간의 죽음이 뭐냐고
묻는 이에게 모차르트를 못 듣게 된다고
모두모두 평화하냐고 모두모두
그가 내가 펴보여준 김종삼 시인의 시 <대화>에서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모차르트를 못 듣게" 되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도 모차르트를 못 듣게 된다는 건 "평화"로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사이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컴퓨터용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거나하게 취한 그의 말은 돌고 돌았다. 급기야 '술이 말을 하기' 시작하자, 5년 전 아끼던 후배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또렷해지고 있었다.
시 잘 쓰던 1학년 후배는 휴학 후 군 복무 중 군용차 전복사고로 즉사했다고 한다. 그가 동아리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고향곡과 빗소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까마득한 후배가 벌떡 일어나더니, 하늘 같은 선배가 듣고 있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끄며 말하더란다.
"선배, 모차르트도 빗소리만 못 합니다."
잠시 당황하던 그는 후배의 '박력' 넘치는 감성에 오히려 매료되고 말았다. 모차르트와 비를 비교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 황당한 이야기였다. 음악과 비는 마치 한 몸과도 같은 것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는 비가 오면 음악을 틀고, 음악을 틀면 문득 내리는 게 비였기 때문이다.
창밖 빗소리는 느릿느릿 안단테로 그의 목소리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뒤따라 걷고 있었다. 죽은 후배의 이야기를 끝낸 그의 목소리는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고, 앉은 채로 고꾸라지더니 방바닥이 울리도록 코를 곯아댔다. 비는 그의 코곯이를 덮어주기 위해 다시 포르티시모로 강하게 슬레이트 지붕을 때려댔다. 나도 주섬주섬 남은 안주와 술병을 한쪽으로 치워 겨우 누울 자리만 만들고 쓰러져버렸다. 알 수 없는 말들이 잠 속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모차르트도 빗소리만 못하네.'
20년 전 그날처럼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내부순환도로를 내달리다가 느닷없이 혜화동의 장맛비를 온몸으로 맞았던 그날이 떠오른 것이다. 아이폰 '애플뮤직'은 내 기분에 맞춰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애플뮤직' 앱을 꺼버렸다.
음악을 끄니 빗소리는 더 요란해진다. 비의 속도는 단단하게, 때로는 부드러운 템포로, 가끔은 격정적으로 내달리듯 변주했다. 나는 아주 오래된 연주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20년 전 빗소리에 잠이 들었다가 오늘 그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여름 장마에는 생애 가장 긴 서사곡을 들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