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피스토 Oct 06. 2021

시 속 상상의 즐거움

죽편(竹篇) 1-서정춘


Photo by Mukund Nair on Unsplash



죽편(竹篇) 1-여행

-서정춘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


시가 아름다울  있는 이유는읽는 이에게 상상력을 선물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서정춘 시인의 시 <죽편> 우리에게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시인은 1941년에 태어나 올해 팔순을 맞이하였습니다. 1968, 만 스물일곱의 나이에 신아일보 등단한 그는, 지금까지 5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등단한  50년을 훌쩍 넘겼으니 10년에 1씩 시집을 펴낸 셈입니다많은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다작(多作)’이라고 하고, 적은 수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두고 ‘과작(寡作)이라고 합니다서정춘 시인은 과작 시인이지만그만큼 오랜 세월 절차탁마하며 옥석의 옥석을 가려낸 작품들을 길어올려 시집 한 권에 담았습니다. 


시 <죽편>이 실린 시집 죽편(1995)은, 시인이 등단 30년만에 펴낸 첫 번째 시집입니다. 30년만의 첫 시집이니 그간 써온 많은 작품들을 담고 싶을 법도 하지만, 이 시집에는 서른여 편 남짓의 시들만이 실려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 한 편 한 편 읽어가다보면, 아껴 읽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시편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죽편>은 대나무를 소재로 한 시입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대나무에 대한 시적 상상력은 놀랍습니다. 대나무는 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유일하게 생존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지요. 초여름에는 하루에 1미터까지 자라는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지만, 한계절의 성장이 끝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대나무는 다음 세대의 번식하기 위해 땅 밑에서 옆으로 옆으로 뿌리를 뻗는 일에 온 생을 다 바칩니다. 그렇게 60~100년을 살다가, 한 번의 꽃을 피우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대나무꽃을 보기가 힘든 이유입니다.


서정춘 시인은 대나무를 생의 여행으로 은유합니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는 대나무의 마디와 마디를 빗댄 것이지요. 캄캄한 밤을 뚫고 긴 여행을 떠나는 기차가 떠오르나요? 이 아름다운 은유와 함께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를’이라는 조사 하나입니다. 


푸른 기차 떠난다’와 ‘푸른 기차 타고 떠난다’ 사이에는 시적 상상력의 간극이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를 ‘푸른 기차’에 태웁니다. 푸른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순간, 대나무와 동일시되어 “대꽃이 피는 마을”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시 속에서 꼿꼿하고 강한 생존력으로 한 생에 꽃을 피우기 위해 100년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그 마을에 당도하여 꽃을 피우면 우리의 여행도 끝이 나는 것이지요. 시는 은유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비유법에는 직유법과 은유법, 의인법 등이 있습니다. 그중 직유법은 ‘마치 A와 같은 B’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은유법은 ‘A는 B다’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에서 은유법은 우리에게 훨씬 넓은 상상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 시에서 ‘마치 대나무와 같은 기차’로 표현했다면, 그만큼의 감동은 없지 않았을까요? 대나무를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로 은유함으로써, 대나무는 우리 생의 긴 여행으로 읽히게 됩니다. 시 <죽편>을 통해 환상의 여행이라도 떠나고 온 기분입니다. 이것이 은유의 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