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정체된 듯한 삶에,
아무도 겪어보지 않았던 지금 시점에서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열리고,
생존의 변화는 항상 지속되고 있다.
삶의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지만
위기의 순간, 생존의 순간에는 내가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아니 버려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버텨야 한다는 느낌도 동시에 받는다.
난 아마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코로나 시대에
나 자신을 위로했던 것 같다.
주어진 환경, 삶에 적응하는 것.
이직을 해도 3주를 버텨라,
운동이나 습관도 3주는 지나야 정착된다..
석 달 버티기, 이력서에도 3년은 채우자….
라는 마음으로.
흔히 3년이 지나야 직무를 알고,
5년을 지나야 업종을 안다는 막연한 속설을
나 또한 다양한 사건사고 속에서 몸소 체험했다.
물론 3년 전에 1년을 버티는 것도
숨이 막히지만 또 막상 1년이 지나면
이젠 정말 ‘좀 익숙해진다’싶고,
그럼에도 전문적인 깊이는 없는 것 같고.
그나마 3년을 채워야 좀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변화가 너무 부럽다.
힘이 나지 않는다.
난 언제쯤 회복탄력성이 올라올까?
1. 가족 안에서의 위치
금요일 저녁 불금이지만,
월요일 대체 연휴도 있는데
퇴근 즈음에 전해 들은
오빠의 (또) 해외 이직 소식.
오랜만에 만난 동료의 ‘잘 살고 있어요?’라는
질문에도 그저 씁쓸히 ‘그냥요..’라고 답하던
그런 나날들이 지속될 때
난 멈추고 그들은 나아가는 느낌.
지극히 같은 시기에 유학을 갔고,
출발점은 같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지금 우리의 위치는 모두 다른 현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순간 힘이 빠진다.
모든 형제가 다 똑같이 잘 살던지,
못 살던지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성공을 축하도 해줘야 하지만,
타지에 살면서, 타국의 시민권자가 되면서,
가족 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일상의 힘듬에서 가끔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떨어져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기엔,
지난 2년간 한국에서 살 때도
가족으로서 얼굴을 본 건 3번이 될까 말까 하다.
이제 삶은 바쁘고, 자주 보는 게 다는 아니지만,
막내지만 엄마를 거의 모시고 살면서
힘들 때는 내가 이렇게 다 해야 하는 게
버겁기도 하다.
그리고 엄마가 편찮으시거나 하면 더더욱.
요즘은 연세가 있으셔서 그 노화의 속도나
부모님이 나에게 기대야 하는 스타일로
바꾸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당연히 자식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기를….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나는 가끔씩 해외를 나가야 내 자신이 편해지고,,
삶에 숨통을 열어준다고 느꼈었다.
해외에서 10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너무 자연스러웠고,
커리어는 당연히 해외 쪽 일을 했고,
해외 출장도 다니고,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오빠처럼 해외에서의 제2의 거주를 하고 싶었지만
여러 일들로 난 다시 출국 하지 못했다.
한 편으론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어떤지 알기에
그 후론 해외 쪽 일을 하며 만족하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국내에만 있고, 국내 시장에서만
일하며 코로마 시국을 보내고 있는 나날이 길어질수록 왠지 이제는 갈 곳을 잃은 기분이다.
이 모든 바램이 사치였을 수도 있다.
2. 팀 에서의 위치
조직은 매달 새로운 변화를 준다.
조직개편, 인사이동, 새로운 팀장, 새로운 실장님.. 업무 변경 등.
새로운 팀장님은 두 달도 안 되어 다음 달부터 업무를 또 바꾸신다고 하고, 그나마 1년을 버티게 해 주며 실무를 도와주며 의존했던 동료 과장도 다음 주면 다른 사업부의 팀으로 전임된다.
이 조직에 뼈를 묻을 것 같고, 25년 이상 한 조직에 있던 두 명의 여성 팀장들이 50이 넘어 다른 중소기업에 임원으로 이직한다는 말에 충격도 받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여성 임원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들의 입으로 갈 곳이 없다고도 했지만 어쨌든 사내에서 여러 포상도 받았고, 이번 건은 알던 협력업체로의 이직이라 일반적인 헤드헌터를 통한 이직과는 다를 수도 있고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요즘처럼 내 나이에 주춤하게 될 때 그들을 보며 희망이 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커리어는 나와 다르지만) 다들 나보다 먼저 이곳을, (나 홀로 이 자리가 나랑 안 맞아 내가 힘들 뿐이라던 위로를 하던 이곳을) 먼저 탈출하는 게, 부럽기만 하다.
자리도 층을 옮겨 이사를 했고, (내가 팀장으로 있던 사업부서 팀원들과는 바로 코 닿을 위치에 있게 됐다.) 일주일에 3일은 재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좀 낫다. 사람들 표정, 뒷말 등을 신경 쓰지 않아서 돼서 좋으면서도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 하루의 고된 일상과 회사에서의 굴곡진 변화 속에서도 다들 탈출구를 찾아내고 있지만 난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에 부러움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 화가 났던 거 같다.
내가 그들만큼 노력했나?
난 무엇을 했는가?
3.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
팀장님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이력서들을 검토하게 되었다.
회사마다 보는 조건이 다르지만.
이력서를 검토하다 보면
그들이 보이는 게 아니고 이젠 ‘내가’ 보인다.
내 이력서가 보이고, 내 나이에서 내 경력에서
서류 전형에서 어떻게 보일지가 객관적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된다.
같은 직무를 하거나, 걸어온 선//후배들.
그리고 정말 직급의 차이지만 40이 넘는 후보자들을 서류 전형에서 보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게 되는 나도 너무
서글퍼진다. 확실히 팀원 후보자로서는 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팀원으로 이직할 건 아니지만)
30명이 넘는 이력서를 보다 보면
3분 안에 첫 ‘느낌’이 시각화된다.
이력서를 읽다 보면
-왜 이렇게 이력서를 성의 없이 썼지?
-왜 그냥 막 지원하지?
싶은 지원자들도 많다.
-요샌 사진이 필수가 아니지만 이상한 평상시 사진이 붙어있으면 좋게 보기 어렵다.
-채용공고를 제대로 본 게 맞나 싶게 충족 요건이 안 되는 지원자들,
-막연히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넣는 사람들,
-마케팅인데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사람들-경력이 3년 정도의 사원급인데 연봉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원자. 그럼에도 그 3년안에 이직만 5번
- 일은 지금 우리 회사보다 많이 안 하는데 연봉을 참 잘 받았네, 우리 회사 오면 적응 못하겠다 싶은 지원자들.
좋은 회사도 여전히 많구나 하며 지금의 내 연봉에 내 위치에 씁쓸함이 드리워지는 다른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며 내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내 이력서를 어떻게 다듬고 노력해야 하는지 더 절실히 느끼는…그런 한 주였다.
이 모든 게 동기부여가 아닌 불안할 수 있는 요즘.
화복 탄력은 멀어보이지만
아직도 그래도
난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 마음만 놓지 않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