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 팀장의 하루 ep.26
“솔직히 굉장히 아슬아슬하고 조심스럽다.”
내 브런치 글을 읽은 친구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솔직히 회사 관련 일들을 에피소드로 연재를 하긴 했고, 내가 제일 힘든 시기, 그리고 내가 겪은 부분에서 일어난 사실만을 적는다고 적었지만, 누군가 본다면, 회사 동료들이 유추를 할 수도 있고, 대략적인 회사 파악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딱히 욕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오롯이 나의 개인적인 내용만이 아닌, 더불어 사는 현실에서, 다른 사람의 삶이, 회사나 조직문화라던지, 여러 부분에서 민감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다른 이해관계자가 아예 개입이 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나의 경험만을, 목소리만을 담아서 이 곳에 표현하고 있다.
팀장들 간의 아슬아슬한 줄 다리기
회사는 실적이 안 좋아 압박을 받고, 해외 출장도 자제하라는 경고가 떨어졌다. 난 최대한 가지 않고 일처리가 처리되는 방향으로 일을 한다. 그들의 지시 사항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고, 그걸 최대한 실무진들에게 전달하고, 예외 변수를 만들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난 그게 팀장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곳은 그럼에도 해외 출장은 계속 간다. 전 직장들에서는 항상 윗 선에서 ‘먼저 지시’가 떨어져서 출장을 가는데 비해 여기는 ‘법인 요청’에 의해서, 자율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출장이 결정되지 않고, 특히 법인장들과 유대 관계가 높으면 법인장이 요청하게 해서 협의하에 해외 출장에 오르게 된다. 출장은 ‘목적’ 기반이 아니라, 만들기 나름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 명의 실무진이 가면 될 일을, 팀장까지 두 명이 가기도 하고, 팀장만 가면 될 것 같은데, 꼭 팀원을 데려가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예외 변수가 생기면 나는 정말 혼란스럽다. 출장을 가라는건지, 말라는건지.
팀장 1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여 오롯이 통역을 위해 항상 팀원을 대동하고 해외출장을 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라고 생각도 했고, 왜 언어가 안 되는 분을 해외 사업 쪽에 있을까가 놀랍기도 했다. 아무리 국내 케이스의 노하우가 있고, 전문성이 있다고 해도. 매번 중복으로 들어가는 출장비를 생각하면 낭비이기도 하다. 출장을 가도, 팀장은 끝나고 술자리에서 회포를 푸는 게 주 업무인 것 같다는 설도 있다. 윗 분들도 그분을 안 좋아한다고 들었지만, 진정한 의중은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1대 1로 보고하고 출장 기회를 “잘 받아내고”, 또 윗선도 잘 허락해 주는 걸 보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임원분들도 강하게 반대하지 않는다. 중요한 출장의 기준은 무엇일까?
최근에도 그 팀장이 본부장님 면담 후 갑작스레 해외 출장이 확정되었을 때 (당장 주말 끼고 하루 전에 통보) 팀원은 갑작스러운 출장에 “가서 본인이 뭘 하냐며” 당황하자, 황급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일은 만들면 있는 거다. 일을 어떻게 서든지 만들어야지. 이렇게 가서 보는 게 중요하고 얼마나 좋은 기회냐. 본부장님 하고 같이 가는데”리며 해외 출장을 보내기에 바쁘다. (여기서 해외 출장은 나름 있어빌리티, 능력 있는 자가 가는 것, 중요한 포상 같은 인식이 지배적 그래서 유독 옆 팀만은 해외 출장이 능력이 아닌 그 팀장이 이뻐하는 팀원들의 포상 개념이다라고 뒷 말이 무성하다. 아니면 본인이 출장을 가려고 제안을 많이 한다. 나도 고뇌한다. 내 팀원들도 저렇게 윗 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때 우리 팀원 중에서 출장 갈 만한 사람이 1~2명밖에 없다.)
저렇게 하루 전 날에도, 출장을 가라고 하면, 가고, 뜬금없이 이 일에 투입되라고 하면, 투입되고. 보고서도 다 알아서 써주고. 어찌 보면, 그녀를 팀장으로 모시는 것은 '말만 잘 들으면' 너무 편한 세상일 수 있겠다 싶다. 그녀의 스타일에 반대하는 팀원들은 다 퇴사하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도... 이렇게 남아 있는 팀원들이 저렇게 웃고 있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끔씩 '복종'하는 듯한 팀원 스타일이 부러울 때도 있다.
팀장 2
항상 나서서 회의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질문하고 리드하고 빠지는 스타일이다. 친절하기도 하지만, 잘 삐지기도 하고, 해외에 발령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분이다. 이 남자 팀장님은 단지 내가 여자 팀장이라는 이유로, 팀장 1과 내가 친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실내의 인사권한 및 윗선과 제일 밀접하게 일하는 부서 특성상, 비밀 아닌 비밀을 제일 먼저 알고, 제일 먼저 정보가 세나가는 부서이기도 하다. (그분이 했다는 게 아니고...) 그리고, 팀장 선에서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필요함에도, “정말 내가 말하고 싶지만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말할 수 없다.”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다.. 그래도 팀장들은 다 알아야 업무 간 이해관계에서 협조가 되는데 팀장 선에서도 위, 아래가 있는 기분이다. 공유는 어디까지나 팀장들 선에서는 공평하게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늦게 입사한 경력직 팀장으로, 내 업무 영역과 너무 흡사한 팀이 2개가 존재하고,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 탐장 1의 스타일이 억울하고 싫을 수 있지만, 마냥 적대시할 수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나도 팀원도 상대적으로 너무 열세하고, 업무도 파악하고, 팀의 안정화가 우선이었기에, 그녀의 업무 스타일이나, 일관성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부분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다 협조하며 일 처리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조직에서 정보통도 없고 근속이 짧아 중요한 정보 입수 부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고, 공개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은 최대한 안 하고자 하는 스타일인데, 막상 이 조직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표현하고 강하게 주장하고 요청하면 먹히는 조직이다. 그래서 더 ‘자기 멋대로’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여.. 맘이 무겁다. 여긴 그냥 룰이 없는 무법천지다.
팀장 1은 그냥 보기에도, 큰 프로젝트만 숟가락 얹기 좋아하고, 티 나는 일만 하고, 나설 때만 나서고, 어떻게 서든지, 본인의 업무가 제일 중요하고, 큰 일처럼 포장하는 (물론 그런 부분이 사회생활하면서 중요한 역량이나 성공의 잣대가 되는 것도 같지만) 사람이라 그 위치에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난 그저 그런 행동들 사이에서 윗분들이 진실만을 가려서 보시진 못하는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것이 조직문화이고, 솔직히 위에서 날 수동적이라 안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강한 위치의 팀장이 되고 싶기도 하다. 솔직히 제일 듣기 싫은 게 '팀장은 뭐 하고 있니?' 같은 눈초리 아닐까. 총알과 실탄을 가지고 팀원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면서, 방탄조끼와 진두지휘를 하며 전략적으로 내 팀원들에게 업무적으로나,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위에서부터 이끌어 내는 것이 팀장의 자리인 듯 하지만. 오늘도 전쟁터에 제대로 나가서 내가 그 사람들과 잘 싸우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오늘도 팀장으로서 나는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