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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Jun 10. 2021

깜박한 시어머니 생일

양가 어머님 중 한 분이라도 건강하셔 내 도움이 필요 없는 것에 감사

그녀는 평일 아침식사 준비를 할 때면 머리와 팔, 다리, 이목구비 모두가 제각각 따로 움직인다. 한 몸에 달린 수족들이지만 각자 동시에 제 기능을 하도록 멀티플 하게 작동시켜야만 지각을 면하게 된다.  이십여 년 직장생활 중 그녀를 줄곧 불편하게 하는 것이  바로 5분, 10분가량의 지각이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모양 빠지는 짓’을 하게 된다.       


그날도 그녀는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사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어제 어머니 생신이라 막내가 할머니 뵈러 갔다 왔나 보던데...”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식탁 위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 그녀의 남편이 던진 말이다. 그녀는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바로 남편의 '더듬수'에 그녀는 부화가 치미는 듯했다. 그 순간 그녀의 남편은 ‘어제 퇴근하면서 얼굴이라도 뵙고 왔어야 했는데...’라며 슬그머니 부엌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녀가 몸에 좋다고 수차례 권유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일어나자마자 현관에 나가 신문을 들고 와, 아침상이 차려지기 전까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간 큰 남자'다. 더욱이 본인의 아들이 할머니 생일을 기억할 만큼 ‘치밀한’ 녀석이 못 된다는 사실도 익히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시어머니 생일을 놓친 마누라한테 ‘한마디’ 하기 위해 물을 마시는 척 들어온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말을 하며, 본인도 마누라와 마찬가지였음을 인지하고, 말끝을 흐리며 ‘퇴장’ 한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시어머니 생일을 확인할 시점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나 차일피일했었다. 하물며 그저께는 잠자리에 들면서 시어머니 생일을 확인하려고 다시 일어나려다가 그냥 잠들어버렸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친정엄마 그렇게 딱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의 생일만을 저장하고 있는 '알량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시어머니의 생일은 매년 이즈음에 그녀의 옛 의료보험증에 적힌 시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를 보고 정확한  날을 확인했다. 지역 의료보험으로 바뀌기 전까지 시어머니는 그녀의 직장 의료보험에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는 쓸모없는 그 낡은 종이 보험증을 폐기하지 않고 신줏단지 모시듯 가방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35년생이고 친정엄마는 32년생이다. 3살 차이인데 체적 상황은 천양지차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걸음걸이가 다소 뒤뚱거리고 느리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혼자 탄천 길을 매일 두 세 시간씩 산책했다. 자식들 고생시킬까 봐, 귀찮지만 건강관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늘 말하는 양반이다. 또한 아들 생일이면 아들이 좋아하는 장어구이와 식혜 등을 해놓고 며느리 보고 가져가라 할 정도의 체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시어머니의 ‘열정’은 며느리에게는 ‘유별(有別)스러움’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했다.      


그녀의 시어머니의 ‘유별’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유별났다. 그녀는 코로나 시작과 함께 시어머니 집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벌써 햇수로 두 해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부터 그녀의 시어머니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또한 외부인뿐 아니라 아들 가족들의 출입도 금했다. 바깥에서 음식물이 유입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감염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작년과 올해, 차례와 기제사를 시어머니가 홀로 준비하여, 함께 사는 큰아들과 둘이서 지냈다.      




출근하면서부터 그녀는 시어머니 생일을 깜박한 실기(失期)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내내 전전긍긍했다. 퇴근길에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의외로 쉽게 정리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그녀의 아들 딸들이 시어머니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선물이지만, 며느리인 '그녀는 선물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을 30년 결혼생활 과정에서 터득했다. 그러니 코로나로 인해 문 밖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녀는 근무 중 짬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전화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축하와 안부를 평소보다 다소 높은 톤으로 전했다.  

  

“전화해줘서 고맙네. 주말에 아이들 먹을 거 준비해둘 테니 가져가거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밝고 정정(亭亭)했다. 그녀는 본인의 실수를 대범하게 넘어가 주는 시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뭉글뭉글 '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이 어두워졌고 생각이 많아졌다.      


‘양가 어머님 중 한 분이라도 건강하시어, 내 도움이 필요 없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지...’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녀의 이성적인 생각과 달리, 마음은 자꾸 아리고 속이 상했다. 세월의 무게가 유독 그녀의 친정엄마에게만 내려앉은 것 같아서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거의 듣지도 못하며 이도 망가진 친정엄마가 자꾸 떠올랐다.

      

잠자리에 들며 그녀는 친정엄마가 아직 정신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그녀의 마음을 추슬렀다. 최근 들어 그녀는 그녀의 친정엄마가 부쩍 많은 단어를 바로바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본인보다 30년을 더 살아온 것을 감안하며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고 위안하며 서서히 꿈속으로 빠져들었다.(202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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