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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Jun 03. 2021

견공(犬公)에 관한 단상

"너희 집 강아지 보고 온 뒤로 내가 죄밑이 되어 죽겠다"

견공에 관한 단상Ⅰ     


그녀는 여섯 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 1960년대 말경부터 서울은 사대문 외곽에 '집 장사'들이 지은 개인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족도 동대문 외곽인 이문동에 28평 남짓의 집에 자리를 잡았다. 넓지 않은 그 공간은 두 집이 살림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단독주택이었다.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주인집 격인 공간에는 마루와 2개의 방이 붙어 있었다.  나머지 한 개 방은 세를 줄 수 있도록, 한옥의 사랑방처럼 대문에서 바로 들어 가도록 지어진 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좁은 공간에 꽃밭과 장독대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당시 단독주택이 갖추어야 할 모든 구색을 갖추려 한 거다. 그녀가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대문 옆에 있는 개 집이었다. 개 집은 대문에서 현관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공간에 있었다. 그곳은 턱을 높여 마당과 분리된 느낌을 주었다. 그녀 가족은 현관으로 출입하는 대신 마루의 미닫이 창문을 통해 다니고, 현관 앞 그 공간을 개 집의 터로 사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개 집을 둔 것은 ‘서울 사람들은 깍정이들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코 어 간다’는 당시 지방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던 서울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처사였다. 그런 만큼 그 집의 개는 사나웠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디에선가 구해온 그 개는 날렵한 턱선과 날카로운 이빨에 거친 흰털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목줄에 매어 있었고, 식사는 그녀 가족이 먹고 남은 잔반으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 가족이 생선과 고기를 좋아하여 고기 국물과 생선 찌꺼기를 매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생선 찌꺼기에는 생선을 다듬었을 때의 부산물과 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날카로운 이빨은 생선뼈뿐 아니라 곰국을 끓이고 남은 뼈도 우두득 우두득 씹었다. 그 개는 항상 짖었다. 특히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낯선 외부인이 대문을 빼꼼히 열고 안을 들여다볼라치면, 십중팔구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집이 떠나가도록 짖어댔다.      


그 개의 밥 시중과 오물처리는 그녀 엄마의 몫이었다. 당시 ‘식모’라는 직업군이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도우미다. 당시 웬만큼 밥을 먹고사는 서울에 가정집은  대부분 식모가 있어, 가정주부의 살림살이를 도왔다. 식모 대부분은 먹을 거 귀한 시골에서 '입'을 줄이기 위해, 서울 먼 친척집으로 보내진 10대 후반의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녀의 집에도 사돈의 팔촌 쯤되는 그런 식모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개 시중을 식모에게 시키지 않았다. 본인의 큰 딸보다 서너 살 많을법한 식모에게 그 사나운 개 시중까지 시키는 것은 맘이 편치 않았던 게다.     


그녀의 엄마는 개에게 밥을 주거나 어질러놓은 오물들을 처리할 때면, 한 손에 빗자루를 들어야 했다. 개가 달려들까 봐 무서웠던 거다. 그 개는 밥을 주는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지만, 종종 달려들기도 했다. 그럴라치면 그녀 엄마는 빗자루 '어이어이...' 하며 개를 다스렸다. 훗날 그녀의 엄마는 개장수에게 팔려 가던 그 개의 눈빛에 대해 한 두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견공에 관한 단상Ⅱ         


1990년대 중반 그녀는 서울에서 분당으로 이사 왔다. 이사 오기 전 맞벌이였던 그녀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이를,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시댁에 맡겼다. 그리고 퇴근해서 시집에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고 설거지하고 아이를 데려왔다. 둘째가 태어나고 1년이 안 돼서 그녀의 시부모는 합가하여 한 두해 아이들을 돌봐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당시 어떻게 의사결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부모들의 합가 이유는 ‘왔다 갔다, 어린 아이들이 너무 고생’ 하기 때문이라고, 남편에게 전해 들은 기억만 날 뿐이다. 합가 문제로 남편과도 시부모와도 큰 분란이 없었으니 당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생각한다.      


‘직장 다니는 엄마는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해야 한다’는 묵시적인 상황에 처해있던 그녀가 제대로 공략당한 셈이다. 시부모의 합가 이유에 토를 다는 순간, 몹쓸 어미가 될 터였으니... 요즘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격세지감일 게다. 여하튼 그녀는 시댁 식구와 함께 분당의 제법 큰 빌라로 이사를 왔다. 당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새소리가 나고 신선한 나무 내음을 머금은 공기 냄새도 맡을 수 있는 호젓한 동네였다.      


그 호젓한 빌라에 딱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이웃의 반려견들이었다. 그 빌라는 경제적인 여유 탓인지 당시로서는 유독 반려견이 많았다. 불행히도 그들 식구 7명은 모두 개를 싫어했다. 싫어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그와 그의 아이들은 개를 대단히  무서워했다. 하지만 공동주택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4살 배기 딸아이가 빌라 안에서 놀다가, 달려드는 개 때문에 혼비백산하는 사건이 생겼다.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몹시 놀랐다, 어른들은 며칠을 아이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마음을 졸였다.  


요즘은 반려견 문화가 자리를 잡아 외출 시 반려견에게 목줄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하며, '당당히' 목줄 없이 다녔다. 그뿐 아니라 본인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되레 기분 나쁜 말이나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그 견주도 아이가 놀랐으니, 미안한 표정은 지었지만 ‘본인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하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당신에게는 애완견이지만, 타인에게는 혐오견일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 빌라 현관을 들어서는데 공동 게시판에 큼직한 매직펜 글씨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가족 중 한 명이 적어 부착한 게 틀림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꾹꾹 눌러쓴 한 자 한 자에 진한 분노가 묻어 있었다.     


견공에 관한 단상 Ⅲ     


“내가 최근에 강아지를 만질 수 있게 되었어. (중략) 내가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던 게 채워지는 기분이었어. 그래서 나도 강아지를 곁에 두고 키우고 싶어 졌어. 엄마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는데 나도 엄청 무서워했잖아. 그래서 엄마도 한 번만 만져보면 나처럼 강아지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중략) 막무가내로 데려올까도 했는데 엄마가 쉬는 집이기도 하잖아. 내가 행복해지고 엄마가 불행하면 제로썸이라는 생각이 들어.(중략) 한 번만 생각해봐 주면 안 될까?”  


어느 날 그녀는 사무실에서 딸의 구구절절한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너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다면 반대할 수 없지"


 그녀는 담담하게 톡을 보냈다.


바로 그날 퇴근하고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그녀가 현관문 소리에,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하러 거실로 나갔다. 남편 뒤를 따라 들어오는 딸의 품에 강아지가 안겨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갑작스러운 강아지와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태어난 지 한달도 안된 그 강아지의 이름은 그녀의 딸이 좋아하는 ‘빵’으로 명명되었다. 빵이는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의 기원이 무엇인지 알려주듯, 사람을 보면 허리를 중심으로 몸통이 좌우로 흔들릴 만큼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사람을 반겼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그의 딸은 빵이가 벌써 동네 ‘핵인싸’가 되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눈길을 줄라치면, 바로 꼬리를 흔들며 귀여움을 발산하는 탓인 듯했다.

      

그녀의 친정엄마의 방문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빵이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다가 그도 성에 차지 않는 듯, 두 다리로 일어나 노인에게 달라붙었다. 그녀는 사전에 집에 강아지가 있음을 미리 귀띔해 두었었다. 그의 친정엄마는 강아지가 조그마한 것을 확인하자, 긴장을 푸는 눈치였다. 하지만 만지지는 못하고,‘아이고 이쁘구나’만 연거푸 되뇌었다.


빵이는 노인의 표정이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듯, 오랫동안 그녀의 친정엄마 주위에서 재롱을 부렸다. 빵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도 않았음을 듣고는 ‘어미 떨어진 새끼가 불쌍하다’며 그녀의 친정엄마는 슬그머니 부엌으로 자리를 옮겼다. 친정엄마의 슬픈 표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견공에 관한 단상 Ⅳ     


최근 그녀의 집은 소형견 말티푸 빵이를 분양해온 뒤로, 강아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두가 들고 날 때마다 빵이에게 인사를 한다. 재택수업으로 평일 대부분을 빵이와 집에 있는 아들은 간혹 '빵이만도 못하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빵이와의 스킨십을 즐거워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 빵이를 만질 수 없다. 여전히 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빵이로 인해 미소 짓고 있으니, 그녀도 그것으로 충분히 빵이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직장동료들과 대화에서 그녀는 종종 빵이를 화제로 삼곤 할 정도이다. 하지만 친정집에 가서는 빵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녀의 친정엄마가 빵이를 보고 ‘불쌍하다’며 지었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너희 집 그 불쌍한 강아지는 잘 크나?"


 그녀의 친정엄마가 뜬금없이 빵이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친정엄마가 왜 갑자기 빵이 안부를 묻는지 물었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강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했단다.    

 

“너희 집 강아지를 보고 온 뒤로 내가 죄밑이 되어 죽겠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딸네 집에서 키우는 어린 강아지를 보고 온 뒤로, 본인이 키웠던 옛날 옛적의 그 개를 떠올린 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서 문을 지키며, 식구들이 먹다 남은 잔반을 먹고, 마구 짖어대던 개에게 시끄럽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발길질했던 그 개가 생각난 거다. 노모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그 개를 결국 개 장사에게 팔아넘긴 것이 내내 맘에 걸렸을리라 그녀는 짐작한다. (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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