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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Jul 09. 2021

남편과 아내의 시각의 차이

“오빠앙~,  파이팅~”     


가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간드러진다. 카트에 앉아 있는 60대 초반의 여성이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티박스에서 연습 스윙을 하고 있는 남성을 향해 외쳤다. 둘은 불륜이 아닌 35년 차 찐 부부 사이다.     


연습 스윙을 하는 A 씨는 남편과 같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남편보다 두 살 아래인 A 씨와 남편은 종종 개인적으로 교류했다. 그날도 우리는 그들 부부와 함께 라운딩을 하러 나왔다.      




10년 전 즈음, 남편은 지역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정기연주회를 위해 매주 한 번씩 저녁에 모여 연습한 뒤, 뒤풀이로 맥주를 마시고 들어오곤 했다. 정기 모임 외에도 캠핑, 산행, 골프 등 과외활동도 적지 않았다. 당시 남편의 모습은 흡사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는 생기 넘치는 대학생의 모습 같았다.


당시 아이들이 고등학생이었으니, 나는 아이들 입시 뒷바라지에 신경이 모두 쏠릴 때였다. 불구하고 남편의 과외활동(?)에 신경이 쓰였다. 남편에게 투덜거리기도 하고 혼자 짜증을 내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랬었지'이지만, 당시에는 좀 더 '혼자서' 심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남편은 A 씨에 관해 종종 이야기했다. 전문직 종사자인 A 씨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인 남편 입장에서는 좀 이해가 되지 않는 특이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A 씨는 오케스트라 내에서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했다. 뒤풀이가 한창 흥이 오르는 자정이 되면, 시계 괘종 소리 대신 A 씨의 전화벨이 울렸단다.  A 씨는 뒤풀이의 흥이 깨질세라 급하게 구석 자리로 이동하여 연신 ‘네... 네...’ 하며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이 남편의 전언이었다. 그리고는 얼마 있지 않아 A 씨는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고 했다.     


남편이 A 씨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다. 나는 그때마다 ‘A 씨가 착하신 분이시네. 왜 다들 날을 넘겨 밖에서 배회하려 해...’라고 대꾸하면, 남편은 ‘그게 아니라...’하며 말을 바꾸곤 했다.   

  



골프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A 씨 부부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역시 그 단골 메뉴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또 했다. 남편이 하고 싶은 말은 A 씨 부인의 태도 때문에 A 씨가 주변에 밉상(?) 한다는 것이다. 즉 부인이 남편을 너무 통제하다 보니 사람들이 A 씨와 함께 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는 거다. 그 예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산행이나 캠핑 등을 갈 때 A 씨 부인은 꼭 남편을 따라온단다. 와서는 여자 단원들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행동과 언사를 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 단원들은 A 씨를 불편해할 뿐 아니라, ‘A 씨 부인이 본인 남편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번 이야기 들을 때마다 대부분이 기혼자인 여자 단원들이 'A 씨 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여자 단원들이 부인이 있음에도 뭔가 예의없는 행동을 했으리라 추측했다. 그리고 A 씨 부인의 파이팅(?)을 통쾌해 했다.


 그날도 평소의 생각과 유사한 취지로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여전히 A 씨 부인이 '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추가 사례를 들췄다.    


“12시가 되기 전부터 A 씨 부인한테 카톡 문자가 여러 통이 오는데, 가끔 보여주기도 하고 옆에서 우연히 보게도 되지. 그런데 그 내용이 말로 옮기기도 민망하게 반말에 막말로 빨리 들어오라고 난리 치는데 정말...”    


나는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고 그냥 ‘하하’ 웃었다. 남편은 내가 본인의 의견에 동조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속 시원하게 막말하는 파이팅(?)의 A 씨 부인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진 거다.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면 좋겠다’는 게 내 진심이었다.  다만 놀러 나온 날, 남의 집 부부의 이야기로 남편과 기분 상할 일이 없기 때문에 입을 닫았을 뿐이다. 근 30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과 나는 아직도 이렇게 큰 시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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