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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Jul 21. 2021

놀라운 아흔 노인네의 미각

'살림은 시집가면 다 할 수 있다' 주의

현관문을 여니, 차가운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얼굴에 와닿는다. 긴장했던 안면근육이 펴지며 입꼬리도 올라간다. 연일 폭염 예보가 있을 정도로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도 전기값을 절약한다고 에어컨을 켜고 있지 않으면 어쩌지 하며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을 먹고 설거지 후 침실로 들어왔다. 침실로 들어오면 나의 하루 일과가 종료되는 거다. 친정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이 외출 계획이 있다 해서, 엄마를 보러가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찜찜했다. 동생에서 톡을 했다. 동생은 외출하면서 내가 방문할 거라고 엄마에게 말해두었으니, 잠깐이라도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귀가가 많이 늦을 수 있다며.  

    

하는 수없이 몇 가지 챙겨서 집을 나섰다. 엄마네 집 현관문을 여니, 더운 바람이 내 얼굴에 후욱 부딪혔다. 혼자 있는 엄마는 조그만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늦은 저녁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 ‘어이구 늦은 시간에 웬일이니... 덥겠다... 어서 에어컨 켜라’고 재촉했다.

     



그날은 나를 시원한 거실에서 맞이할 수 있게 되어서인지 엄마의 모습이 여유가 있었다. 엄마가 부탁했던 큰 타월을 건넸다. 얼마 전 땀이 많은 동생의 베개닛을 타월로 만들려고 한다며 큰 타월이 있냐고 물었었다. 아이들 키울 때 쓰던 것들을 버리지 못해 돌아다니는 것이 생각났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새 것을 세탁해서 가져가는 것이 옳다 싶었다. 엄마도 새 것이라고 하니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갑자기 엄마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니 갈치 구울 때 물 안 빼고 굽제?”     


“응, 급하게 하느라... 채반에 두면 설거지거리도 생기고... 어떻게 알았어?”     


"먹어보면 알재.”

“못 쓰는 플라스틱 그릇에 나무젓가락 걸쳐서 물을 빼면 되는데...”     


“그래, 난 맛의 차이를 모르겠던데... 와~ 울 엄마 대단하다... 아흔 살 먹은 노인네의 미각이”     


“살아있는데, 그깐거 구분 못하나”


나는 생선을 사서 손질 후 물기를 빼고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여유가 있으면 채반에 올려두었고 급하면 씻고 대강 물기를 털고 조리했다.


요리에 대한 '기본'이 전혀 없는 거다. 요리를 배워본 적도 없다. 요리를 생각하면서 궁리하며 해 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요리에 재능이 있어 직관적인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요리는 '생존 요리'다. 싱싱한 재료를 구입하여 최소의 조리법으로 영양과 위생에 충실한 요리를 해왔다. 집밥으로 가족의 건강을 챙긴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던 나는 머리를 심하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육십 먹은 가정주부가 생선 굽기에 기초도 모르고 있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의 한심함을 오래 탓하지 않았던 것은 엄마의 ‘살아있는 미각’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엄마의 구강도 노화현상이 심각하게 찾아왔다. 침샘이 마르고, 매운 것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각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손질 시 물기를 머금은 생선의 구이를 식별해 낼 정도의 놀라운 미각이다.    


얼마 전, 친구가 텃밭에서 키운 가지를 줘서 엄마에게 가져간 적이 있다. 그 이후 어느 날 엄마는 ‘친구에게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꼭 전하라고 했다. 덧붙여 친구가 어디서 토종 가지 씨앗을 구했냐며 신기해했다. 엄마의 말로는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토종 가지는 찌는 시간이 적게 걸리고, 찐 뒤에도 물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가 준 토종 가지를 가지고 가지무침해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었다며 흡족해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쪄간 호박잎을 먹으면서 엄마가 한 말도 엄마의 미각 레이더에 나의 잘못된 조리법이 걸린 게다.


 “니 호박잎 찔 때 손질해서 씻고, 물기를 탈탈 털거나 채반에 담아 물기를 뺀 뒤 푸욱 져야 하는 것 알재~”


내 생각에는 이래저래 수증기로 찔 것이니 물이 묻어있어도 상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씻자마자 그냥 대강 물을 털고 수증기가 올라오는 찜통에 넣었었다. 하지만 엄마의 예민한 미각에는 호박잎의 풍미와 식감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호박잎을 쪄간 나의 수고를 생각하여 에둘러 호박잎 찌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 것이다.     


친정엄마는 ‘여자도 공부해서 자기 일 가져야 한다. 살림은 시집가면 다 할 수 있다’는 주의였다. 딸의 양육방법에 대한 엄마의 확고한 신념적 ‘주의’가 딸이 해오는 '시원찮은' 반찬을 보면서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엄마의 무진장한 요리 팁을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이것저것 많이 해 가져가, 엄마의 품평을 들어두어야겠다.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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