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버드만이 정답은 아니잖아요.
스스로 만족스럽게 일했다고 느끼기 위해서 가장 필요 한 건 하루의 곳곳에 배치된 루틴이었다. 그중 내게 어려운 루틴은 잠이었다. 주말만 되면 밤새도록 밀린 취미생활을 즐겼고, 일요일 밤에는 출근 걱정에 억지로 이른 잠을 청해 보지만 항상 가장 적게 자는 요일이 되었다. 그게 직장생활 내내 나의 불규칙한 루틴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침잠이 많았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반면 컨디션이 좋은 날에도, 운동으로 근육을 쥐어짜는 고통이 있었던 날에도 자야 하는 시간에 잠들지 못했다. 나에게 ‘자야 하는 시간’ 이란 아침에 학교나 회사에 지각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자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대였다. 밤 12시가 지나면 불안해하면 최대한 빨리 침대로 뛰어들었다. 어쩌다 10시나 11시에 누워도 눈만 감은채 잠들지 못해 뒤척였다. 그리고 12 ~ 2시쯤에 잠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인들과 여행이나 출장을 가더라도 나는 밤늦게 까지 술자리, 대화 자리를 즐겼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밤에 함께 대화하다가도 10시만 넘어가면 목이 꺾여 졸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반면 얼리버드들은 올빼미들의 활동 패턴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잔혹하게도 사회적 평가는 각자의 패턴과는 별개로, 아침이슬이 마르기 전에 먹이를 찾는 얼리버드에게 후했다.
내가 자라온 집안 분위기도 그랬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나를 깨우기 위해 바늘로 다리를 찌르는 기이한 행동도 하셨다. 내가 오죽 못 일어나면 그랬을까. 나에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주시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라고 말씀하셨다.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루틴이 안 잡힌 것 중 하나가 잠이었다. 직장 생활할 때와 비슷하게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오전부터 일을 시작한 뒤, 다들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일을 마무리하고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잠드는 것. 가장 보편적인 루틴을 상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히 깨졌지만.
‘최강의 인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산 이유는 요즘 유행하는 듯한 ‘카드 뉴스형 책 광고(?)’를 우연히 보았고, 잠자는 시간별/패턴별 유형을 그럴싸하게 소개하고 있어서였다. 잠 때문에 자책과 괴로움을 평생 가지고 있었기에, 16,000원으로 조금이나마 마음 편해질 수 있다면 내겐 타당한 소비였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전체 내용이 '잠'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방탄 커피의 개발자이자 인생의 온갖 쓴 맛을 다 본 뒤 재기해 건강과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저자. 그는 자신을 새벽 2-3시에 잠들며, 자신을 인구에 15% 밖에 되지 않는 ‘늑대형 인간’이라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집중한 부분이다. 본문에서는 패턴에 따라 곰/사자/늑대/돌고래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중 늑대 부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다. 저자가 정의한 '늑대'에 속한 부류에 대해 적어본다.
늑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하루 중 가장 늦은 시간대에 활동한다. 하루를 늦게 시작해서 세상이 잠들기 시작할 때 생산성이 절정을 이루는 '올빼미' 유형이다. 정오-오후 2시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는 시간대. 하루 두 번 생산성의 정점을 찍는다. 이 사람들은 작가, 아티스트, 코디 등 크리에이터 직군에 속해 있다. 대게 내성적이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인구의 15퍼센트가 속해있다.
중요한 점은 그가 늑대형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건강한 데다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걱정하던 '몸 상한다'라는 말과 달리 미국의 건강전도사라고 해야 할까.(저자 스스로 바이오 해커라 칭한다) 그가 한 때 실천했던 '아침형 인간'의 시간들과 그에 따른 부정적인 경험 - 창의력/생산성 저하와 행복감 하락은 웃기게도 내게 위로와 공감이 되었다.
책에서 느낀 위로와 공감은 떨어지지 않은 오래 묵은 각질처럼 거칠거칠, 까칠까칠했던 '수면 루틴'에 대한 내 예민함을 덜어주었다. 발 뒤꿈치를 깔끔하게 밀어 잠시나마 맨들맨들한 아기 발을 가진 기분 좋음이었다. 잠은 그저 거들뿐이고, 보통사람들의 수면 습관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힘들어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올빼미보다 더 똑똑하고 날렵하게 느껴지는 '늑대'라는 비유가 참 맘에 든다.
늑대형 인간으로 살아보리라. 결심한 지 지금 2주 정도가 지난 것 같다. 프리랜서 생활 초반 처참하게 깨진 얼리버드 루틴은 새벽 2-3시에 잠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4-5시에 잠들 때도 있고, 일어나는 시간도 아직 불규칙하다. 그렇지만 억지로 12시에 침대로 뛰어들어 ‘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뒤척이던 때보다는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몸 상한다, 그러면 안된다, 큰일 난다 등등 얼리버드형 조언을 건네준다. 내 실험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아보고 싶다 당당하고 멋진 늑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