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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강 Mar 28. 2023

이렇게 서정적인 독신을 가졌죠 5

ㅡ 베지테리언



1

이빨은 없고 섬모만 가득한 시간, 

소처럼 풀을 먹여 기르는 생,     


이렇게 서정적인 독신을 가졌죠      


    

2

너를 잃고 암수한몸인 것처럼 자주 무늬가 뒤바뀌었다 네가 없고 네가 없으니 나는 색이 없어 아무데서나 배경처럼 잘 발라졌다 어떤 날은 얼굴이 안 보여 표피를 깎아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판화처럼 캄캄했다 캄캄한 채로 서서, 죽은 나뭇가지처럼 툭툭 부러졌다 부러진 채로 서서, 너라는 환상통을 오래도록 머금고 있으면 입속에서 풀냄새가 났다 생각하면 어둠처럼 피가 맑은 짐승도 없어 순장하듯 잡아먹히고 싶고 어떤 날은 온몸이 전생 같아 무녀처럼 천기가 보이겠다 네가 없고 그러나 네가 있고, 있고 없는 너를 떠올리면 입안 가득 섬유질이 무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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