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리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2

넘어진 그 자리 #2

by 손성호

캄캄하기 그지없었다. 이대로 푹 쉬어야만 할 것 같은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불편한 빛이 어둠 속을 휘젓고 있는 듯한 느낌에 태경은 눈을 떴다.

병원이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함께 일하는 후배의 모습의 보였다.


"어떻게 된 거죠?"

"점심시간 끝났는데도 형이 현장에 안 들어와서 차에 가봤더니 형이 자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얼굴은 완전 하얗게 질려 있고, 식은땀도 엄청 흘리는 데다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




그제야 태경은 마지막 기억의 조각을 찾았다.

요 며칠 태경은 굉장히 피곤했다. 아는 형들과 함께 시작한 사업은 예상외로 승승장구했고, 그들만으로는 부족해 친구와 후배들을 모아서 사업 규모를 키워갔다. 다른 업체들과 아웃소싱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싶은 욕심에 모든 일을 도맡아 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태경은 공동대표이자 세무, 경리, 인사까지 담당하며 현장일도 함께 했다. 게다가 업무 이후의 시간에는 또 다른 계약을 위한 영업(갑社 담당자와의 술자리)이 끊이질 않았다.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간경화입니다. 간에 상당한 무리가 와서 부분적으로 간경화가 시작됐어요. 평소에 술을 많이 드시나요?"

"...... 네, 거의 매일 먹었습니다."

"간도 원래 안 좋으신 분이 술을 그렇게 많이 드시면 어떻게 합니까? 초음파를 찍었는데 간에 알갱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정밀 CT를 촬영해 봐야 정확한 건 알 수 있으니, 방사선과로 내려가 보세요."


태경은 군대에서 처음으로 본인이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생활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기에 무시하고 살았다. H마트에서 근무할 때에도 원활한 직장 생활을 위한 답시고, 술자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조영제를 놓을 겁니다. 온몸이 뜨거워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져도 놀라지 마세요."


1분도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온몸이 뜨거워지고 심장 박동 소리가 태경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조영제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 검사 결과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죽음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려야 할지 결정이 나기 때문에 태경의 심장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정확한 결과는 2주 후에 나옵니다. 따로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까지 술 드시지 마시고, 피곤한 일도 자제하셔야 합니다."


1초가 1년 같이 느껴질 만큼 시간은 천천히 가는 듯했다. 2주라는 시간은 태경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이라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 썽거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수십 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하 연설 중에서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는 사람들,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면서도 그 뉴스 속 사람들에 자신이 속하는 것을 생각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태경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태경이었지만, 정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만큼은 억울하고 서럽기만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었기에 지금의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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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잘 살아왔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챙겨야 하는 가장이기에 딴생각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긍정적인 생각들 속에 묻혀 있던 불만과 한숨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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