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그 자리가 인생의 전환점이다. #3

넘어진 그 자리 #3

by 손성호

"그 때였어요. 강사를 하겠다고 다짐한 게."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된 건가요?"

"다행히 종양은 아니었고, 간에 상처가 나고 아무는 과정에서 딱딱하게 굳은 알갱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꾸준히 약 먹고 정기검진 받으면서 관리하고 있어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주 동안의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하셨겠어요?"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나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약 이게 암이 아니라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를 돌아보고, 제가 누구 앞에서 말하거나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어떤 경험에서 그런 결론들을 내릴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 내성적이었던 제가 웅변을 배우고 대회에서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면서 굉장히 즐겁게 무대에 섰던 경험도 있구요. 대학 시절에는 야간학교 교사로 활동을 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굉장히 보람을 느꼈던 경험도 있어요. 무언가에 미쳐봤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남은 내 인생을 또 그렇게 미쳐서 살아보고 싶었죠."

"죽음의 문턱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다. 멋진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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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은 낡은 바인더에 무슨 명언이라도 받아 적는 것 마냥 태경의 이야기들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이라면, 교사도 있고 교수도 있는데 왜 하필 강사가 되실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후문에서 분식집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300여 명 가까운 학생들이 찾을 정도로 잘 됐었는데 어머니의 병환으로 일찍 접게 됐죠. 그 후 잠깐 쉴 때, 보험회사 매니저였던 사촌 형한테 연락이 왔어요."


태경은 이야기하느라 잊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카페모카 위에 앙증맞게 얹혀 있던 휘핑 크림도 어느 새 커피와 함께 뒤섞여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신입사원을 뽑아 본사 신입사원 교육에 보내야 하는데, 그 달은 신입사원을 뽑지 못해 저더러 대신 갈 수 있겠냐는 거예요. 물론 아르바이트 비용은 주고요. 쉬고 있을 때 적지 않은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고 공부까지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미경은 이미 인터뷰어가 아닌, 화롯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에 푹 빠진 아이의 모습이었다.


"거기에서 둘째 날, 한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완전히 매료되었어요. 그래서 그 분이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여쭤보고 꾸준히 연락하고 있었는데, 말 하는 직업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그 분이 떠올랐고 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만약 그 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교사나 교수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딱 강사님 케이스가 그렇네요. 강사라는 직업을 알지 못했으면 하고 싶지도 않았을텐데 말이죠."

"맞아요. 제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이나 진로 강의를 해보면 학생들이 경험해 보지 못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은 맛을 모르기 때문에 먹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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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은 다짐이라도 한 듯, 볼펜을 바이더에 힘껏 찍어 눌렀다.


"강사님, 제가 강사님이 강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고 어떻게 살아 왔는지 정식으로 정리해 봐도 될까요? 인터뷰도 정기적으로 하고요."

"저도 아직 정리가 안 됐는데 무슨 정리를요?"

"아뇨, 오늘처럼 이렇게 저랑 이야기하듯 말씀해 주시면 돼요.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어떠세요?"

"저도 오늘은 인터뷰 같지 않아서 좋았어요. 이렇게라면 얼마든지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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