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그 자리 #4
"H마트 다녔었던 건 아는데, 사업도 했어? H마트는 왜 그만두고? 완전 승승장구했었잖아? 바쁠 땐 나도 거기 고액 아르바이트로 불러 주기도 하고."
소주를 들이켜고 현석은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랬지. 너무 승승장구한 게 문제였지만 말이야."
"승승장구한 게 문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고향 집 불났던 건 알아?"
"불이 났었어? 고향집에? 언제?"
정말 몰랐다는 듯, 현석은 눈이 동그래지며 되물었다.
"넌 그때 군대에 있었을 거야. 그러니 연락을 안 했지. 내가 H마트에서 네 말대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어. 집에 불이 나서 다 타 버렸다고. 다행히 어머니랑 여동생은 집에 없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는데 집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 버렸어."
현석의 눈은 좀처럼 다시 작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 거야?"
"고향으로 내려가긴 했는데 바로 그만두진 않았어. 회사의 파격적인 인사로 7년 정도의 기간을 단축하는 승진을 한 상태였거든. 쉽게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 알잖아. 내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부터 어떻게 올라갔는지."
"알지. 대학교 4학년 때 갑자기 전공과도 관련 없는 H마트 축산코너에, 그것도 아르바이트로 입사한다고 해서 나도 엄청 말렸었는데."
"그래, 그때 그 선택을 증명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 일이면 일, 사람이면 사람. 그래서 그때의 결과물이 정말 소중했던 거야."
"그럼 언제 거긴 그만둔 거야?"
"너도 알겠지만, 직장 생활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면 축하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기하는 사람들도 꼭 있잖아. 나도 마찬가지였어. 나의 파격 승진에 주위에서 안 좋은 소리들이 많아지니까 회사에서 나를 새로 오픈하는 다른 지점에 파견을 보내더라고. H마트와 같은 유통 업체들은 오픈점을 몇 개 경험했느냐가 그 직원의 스펙과 다름없었는데 나한테는 아르바이트 때 한 번이 전부였거든. 그래서 점장님이 택하신 특단의 조치였지."
"어디든 그런 사람 꼭 있다니까. 과정은 보지도 않고 결과만 보고 비교하고 시기하는 못난 사람들. 그래서? 어떻게 됐어?"
현석의 빈 술잔을 채우며 태경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한겨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파랗고 높았다.
하늘 밑으로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연신 내뿜는 입김만이 2월의 늦추위를 실감케 할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유난히 빨리 움직이는 한 사람. 미경이었다. 태경은, 약속 시간에 늦어 난감한 표정으로 종종걸음을 하고 있는 미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딸랑딸랑"
미경은 카페 문을 열자마자 곧장 태경에게로 달려왔다. 밖에서부터 몰고 온 싸늘한 바람에 상쾌한 미경의 향기가 얹혀 있었다.
"죄송해요. 먼저 뵙자고 했는데..."
"괜찮아요. 책 읽고 있었어요. 워낙 카페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하거든요."
"대신 커피는 제가 살게요. 카페모카 드시죠?"
태경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본인의 커피 취향을 기억해 주는 미경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커피 주문을 마치고 돌아와 앉자마자 미경은 인터뷰 모드로 들어갔다.
"네, 지금은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책을 좀 읽는 편이에요. 그런데 책을 원래 많이 읽었던 건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책을 지금처럼 많이 읽게 된 것도 동기가 있으신 건가요?"
"그렇죠. 지난번에 제가 찾아갔던 강사님 이야기 기억하시죠?"
"네, 사촌 형님 부탁으로 대신 갔던 교육에서 만났던 분이요?"
"맞아요. 그분께 연락을 드리고, 그분이 운영하시는 강사 아카데미에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강사를 위한 저의 첫걸음이 시작된 거죠."
"결국, 그 아카데미의 강사과정이 뛰어나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음... 뭐 그렇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나와서 저처럼 이렇게 강의하는 분은 거의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 잘났다는 건 또 아니고요."
"그럼 또 뭔가가 있는 거네요? 강사님만의?"
"바로 그 아카데미의 강사과정에 책 읽기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아,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신 거군요."
"맞아요. 사실 전 그때까지 제 돈 주고 책을 사서 읽은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