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넘어진 그자리 #6

by 손성호

"블로그를 그 때 시작하셨다고요? 지금은 블로그 강의도 활발하게 하시잖아요? 그래봐야 겨우 2년 전인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눈이 작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깜짝 놀라 더 커진 미경의 눈은 그야말로 토끼눈이었다.


"그러니까요. 저도 지금의 제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면 신기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수능 보면서 논술 시험을 볼 때나 글 써본 게 다였던 제가, 블로그에 거의 매일 글을 쓰다시피 하고 이제는 책 출간까지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요."


open-book.jpg


"책 출간도 하세요? 무슨 책이요?"


"우선은 블로그와 온라인 마케팅 관련 책이 먼저 나올 거예요. 아직은 제 이야기로 자기계발서를 쓴다는 건 아무래도 시기상조인 듯 해서요."


"대단하세요. 2년 전 경력단절됐던 청년이 횟수로 3년 만에 책까지 출간할 정도라니!"


"아니에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운이 좋은 거죠."


"아! 아까 수능 말씀하셨는데, 강사님은 학창 시절에 공부 잘 하셨나요? 지금까지 들어본 바로는 못 하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놀라서 그런 건지, 물꼬가 터진 건지 미경의 질문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저돌적인 자세의 인터뷰는 거부감을 갖게 마련인데, 미경의 철이 없는 듯 거친 질문에는 그저 답을 해주는 방법 밖에는 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음~ 못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고3까지 SKY를 목표로 삼을 정도였으니까요. 뭐~ 수능만 안 망쳤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죠."


IE000972419_STD.jpg


"수능을 망쳤어요? 실수를 하셨나요? 컨디션이?....."


태경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며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을 나즈막이 쉬었다. 그리고 이내 엷은 미소를 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쩌겠어?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하는 게 직장인의 운명인걸. 안양에 새로 오픈하는 점포에 파견을 나갔지."


"안양? 안양이면 수원하고 가깝잖아? 그런데 왜 그만뒀어? 난 또 엄청 먼 데로 파견 보내서 그만뒀나했지? 보통 그러잖아. 정리해고 할 명분 없을 때 말도 안 되게 먼 곳으로 발령내거나,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보내는 경우."


"맞아. 버스타고 10분이면 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어. 나름 많이 배려해 준 발령이었던 거지 뭐. 보통 오픈점은 여러 점포의 베테랑 인력들을 파견보내서 임팩트 있게 매출을 확 띄우는 게 이쪽 시스템이었어. 그래서 나를 포함해 수원 지역의 베테랑들이 안양점으로 파견을 나갔지."


f0058993_4b1e67b0d592f.jpg


시킨 줄도 잊고 있었던 두부김치가 나왔다. 먼저 시킨 술국도 거의 그대로인 걸 보니 현석과 태경은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안주는 잘 안 먹는 스타일인가보다. 현석과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태경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함께 발령난 직원들은 나한테는 까마득한 선배들이었어. 물론 같은 직책으로 갔지만. 그래서 좀처럼 작업장에는 잘 나타나지 않더라. 물론 나도 그러려니 했어. 어찌 됐든 내가 막내였으니까."


"그래도 오픈 때면 엄청 바빴을텐데, 그런 게 어디있어? 한 사람이라도 일손을 보태야지. 그건 아니다."


"암튼, 어린 알바 애들이랑 아주머니들은 판매만 하기에도 벅찼고, 그 모든 물량을 다 내가 작업했어. 삼겹살 1억원 어치 생각해 본 적 있어? 그 많은 물량을 다 혼자 작업했지. 그러다가 실수로 내 오른손에 든 칼로 왼손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어. 정말 순식간이었어."


현석은 인상을 찡그리며 놀란 눈을 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아팠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런 기억은 별로 없어. 그 순간에도 고기에 피가 묻지는 않았나 걱정부터 했지. 그리고 잘린 부분을 원래대로 붙이고 수돗가에서 물을 틀어놓고 피를 흘려보낸 후, 랩으로 손가락을 꽁꽁 싸매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지."


Emergency.jpg


"진짜 넌 왜 그러냐? 남들은 한 번 일어나기도 힘든 일들이 어떻게 너한테만 일어나는 것 같아. 그래서? 손가락은 괜찮아?"


태경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왼손 엄지손가락을 접어다 폈다 하며 현석에게 보여줬다.


"다행이네. 그래서 다쳐서 그만둔거야? 이제 작업 못하니까?"


"아니, 그만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야.. 휴~ 2시간 동안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무도 내가 사라졌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거야."


"진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줌마들이야 장사하느라 바빴다고 쳐도, 그 선배들은 그 사이에 한 번도 작업장에 안 들어왔단 얘기야?"


"응, 그랬던 거지."


"대박~ 완전 짜증나네."


"그래서 그만 뒀어. 서럽더라구. 나름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승진한 건데, 주위의 시기 때문에 여기까지 파견나왔던 거하며, 와서도 혼자 일 다하고 다치기까지 했는데 그마저도 알 지 못하는 사람들때문에, 너무너무 서러웠어. 그래서 때려치운거지. 더이상의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겠더라구."


태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현석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가져다 댔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마치 쓴 맛을 끝까지 다 느끼려는 듯 소주를 입안에 한참 머금고 있더니 천천히 삼켰다.


매거진의 이전글용감한 것이 아니라, 용기를 선택한 것이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