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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포터 Feb 10. 2021

제주도의 푸른 밤

"떠나요 둘이서"로 시작하는 그 노랫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어느덧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노래의 선율은 미치도록 아름답고 가사는 너무나도 강렬해서 마치 한 소절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덧 비행기표를 조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실제로 떠날 마음도 여유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곁눈질로 쳐다보게 만들 정도로 이 노래의 전달력이란 어마어마한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 마음 흔들어 놓는 이 노래를 웬만해선 당해낼 재간이 없다.


보통 우리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길을 떠난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여행도 있겠지만 반대로 흘러넘치는 내 안의 무언가를 비우기 위해 떠나는 경우도 다. 유람을 즐기겠다는 열정으로 호기롭게 떠난 그 여행이 며칠 뒤엔 유랑으로 바뀔 때가 있는가 하면 휴양을 즐기려 태평양 건너가 놓고 작렬한 태양 아래서 고향 타령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상해야 될 단체 여행은 그저 마음 상한 채 의절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수행을 위해 떠난 생활이 순식간에 고행으로 변하기도 다. 물론 이렇듯 어려운 여행길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므로 즐기고 떠나면 될 뿐 풀이 죽을 필요는 없다. 위기는 기회로 다시 어느 순간 기회는 위기가 되지 않던가. 어쩌면 떠나는 자는 대단한 여행의 계획보다 유연한 마음가짐을 먼저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몇 번의 지난 여행길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유연했는지 성찰의 시간 역시 필요하다. 그런 생각 없이 되풀이되는 여행은 본인의 영혼을 갉아먹고 주변 사람은 지치게 만드니 아무리 '제주도의 푸른 밤'이 귓가에 맴돌아도 그 마음은 모두를 위해 집어넣은 뒤 쳐다도 보지 말아야 옳다. 그럼 진지한 마음 장착하고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자. 대학시절 배낭여행과 신혼여행 그리고 가족여행들은 대체로 즐겁고 유쾌했으나 힘든 구간이 있었는데 고행길로 변한 주된 이유라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결국  마음의 그릇은 한없이 작았으며 그만큼 내가 살면서 덕을 쌓지 못했음이라. 반성합니다. . (?)


다시 떠날 생각과 결심이 서고 나니 심장은 빨라진다. 반성을 완료한(?) 덕에 과거의 여행은 모두 즐거운 기억으로 탈바꿈하여 좋은 생각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은 분주해졌고 마치 푸른 바닷속 그 대단한 광경이 눈을 감으면 펼쳐질 것처럼 눈앞에 선하다. 습하면서 동시에 무더운 그 휴양지의 날씨를 생각하면 괜히 코를 한번 찡긋 했다가도 고작 한라산 중턱(?)에서 맛본 상쾌한 공기의 느낌에서 이제는 마치 히말라야 고봉에라도 오를 수 있을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물론 올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에 역병이 창궐하였으니 갈 수는 없겠고, 내년쯤 되면 제대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그렇다고 평생 집콕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행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사람도 필요하지 않던가. 해돋이 명소 정동진부터 한가한 해안가 느낌 물씬 풍기는 남해와 바다 1번지 해운대까지 제대로 된(?) 여행을 다시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물론 해외로 나갈 그날도 기다려진다. 결혼식과 생일잔치 그리고 돌잔치나 환갑잔치 등을 떠올려 본다면 명확해진다. 내가 가서 축하해주지 않으면서 나 필요할 때만 오라며 초대장을 준다한들 어느 누구도 올리 없다. 여행산업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나가서 10달러를 쓰고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며 홍보대사역을 맡는다면 그 행동에 감명받은 외국사람이 내국하여 2만 원을 소비를 할 수 있다. 허구한 날 국내여행만 고집한다고 해서 내수경제가 살아날 리 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 말고 진짜로 바깥에서 돌멩이를 주워서 올려둬야 좋지 않겠는가. 물론 흥선대원군이 살아난다면 다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쯤에서 왜 여행을 위해 하필 비행기 탈 생각을 먼저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기차여행도 있고 자차 여행도 있는데 말이다. 먼저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은 집 앞에서 목적지까지 환승 없이 편하긴 해도 서울을 벗어나기도 전부터 올림픽대로 한남대교 남단에서 한계를 먼저 만난다. 시간의 제약도 뒤따르는데 보통 푸른 바다를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자동차로 가는 그 종착지가 멀어야 고속도로가 뚫려 있는 양양이 최대다. 여수 밤바다나 부산 앞바다를 자동차로 계획한다면 물론 갈 수는 있겠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순 없다. 적어도 고조할아버지 정도 되는 가족의 큰 어른께서 명절날 부산에 잠깐 들렀다가 가라고 할 정도가 아니라면 아마도 포기할 듯하다. 쓰나미도 정면으로 맞설 정도의 해안가 고층빌딩을 보는 재미가 부산에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동차보다 기차를 알아보게 된다.


기차 여행이라면 아무리 여러 번 생각해봐도 의자를 돌려서 가족이 마주 앉아 음식 카트에서 오징어 사 먹는 무궁화호로 떠난 그 여행이 제법 좋은 추억을 준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21세기고 전국을 넘어서 전 세계가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서로 연결될 만큼 광속의 시대가 되었는데 6시간을 기차에 앉아 옴짝달싹 못한 채로 시간 보내며 간다는 것도 부담이다. 물론 KTX를 이용한다면 3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돈이 발목을 잡는다.


여행에서 경비를 따지는 측면은 상당히 중요하다. 생활비와는 별개로 들어가는 돈이기 때문에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은 아마도 신경을 쓰며 사는 사람이 알뜰살뜰한 사람이라는 시각은 합리적이다. KTX는 (무궁화호에 비해) 빠르지만 값은 꽤나 비싸다. 그렇다고 자리가 편하지도 않기 때문에 굳이 뜻이 있지 않는 한 그 의도된 고행을 감내하기 어렵다.


반면에 비행기라면 LCC 항공사(저비용항공사, 제주항공이나 부산항공등) 덕에 어떤 날은 왕복항공료가 KTX의 편도 요금 수준이고, 심지어 어떤 날은 천 원대에도 티켓이 나온다. 거기에 더해 항공사가 많다 보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가격 조회하는 재미도 있고 그 사이 이미 여행의 결심은 굳게 다. 때론 돈과 시간을 신경 안 쓰는 쿨가이들이 주변에 있지만 그럼에도 비행기 타고 떠나는 그 여행은 구름 위를 비행하며 평상시 생활에서 벗어난 이색 경험을 선사하기에 결국 여행의 기분은 비행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퍼맨과 배트맨의 싸움도 역시나 날 수 있는 초능력자 슈퍼맨이 더 우세(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하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기싸움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언맨이 극의 흐름을 주도하듯 우리는 유독 하늘을 나는 능력을 으뜸으로 치지 않았던가. 이런저런 크고 작은 경험이 쌓이고 반복되다 보니 여행이라면 공항이나 비행기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마음속에 들어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결국에는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말로 풀이된다. 더 이상 비행기란 것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탈것이 되었다. 범죄를 저지른 전과만 없다면 세계 어디든 못 갈 나라가 없고 입국을 불허당할 만한 이유 역시 있을 수 없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고 다른 것에 안 쓰면 마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LCC 항공사가 이토록 많은 이 시대라면 참으로 여행 가기 좋은 세상 아니던가. 그저 시간을 할애할 정도 여유와 약간의 여비 정도 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행과 관련해서 크고 원대한 꿈은 없다. 그저 1년에 한 번씩은 비행기를 타며 떠나자는 소박한(?) 바람이 전부다. 론 그 꿈이란 때론 걷잡을 수 없을 만치 커지기도 한다. 10만 원 더를 외치다 보면 숙소가 달라지고 그탓에 장소가 바뀌며 어쩔 땐 나라가 뒤 바뀐다. 그래 봐야 어차피 같은 하늘 아래 여행지일 뿐이다. 여행이란 것이 사실 어딜 가도 좋다. 거기에 더해 국내여행 간다고 애국자로 칭송받고 국외로 떠난다고 매국자가 되는 발상이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하다. 여행산업의 파이를 키운다는 그 일념으로 나는 오늘도 비행기표를 찾는다.


물론 그냥 찾기만(ㅎ) 할 뿐 결국엔 운전해서 집과 회사를 오갈 뿐이지만 내년엔 그 대단한 목표를 다시 펼치려 한다. 그 준비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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