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이라면 보통은 주택이나 빌라가 줄지어 있는 동네가 많았다. 집과 집은 담벼락으로 이어지고 건너 있는 집과는 비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로서 그 길을 우리는 골목길이라 불러왔다. 주변에는 큰길이 있음에도 우리는 시간의 효율 탓에 굳이 골목길을 가로지르곤 했는데 모든 길을 지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시골에는 중간중간 사유지가 있기에 원한다고 아무 길이나 갈 수는 없다. 물론 이 개념은 지극히 당연하다. 개인의 땅이 아니던가.
심지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로라 할지라도 그 길을 맘껏 이용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보통 그 골목길에는 '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부러진 나무판자나 페인트가 벗겨진 벽 위에 대충 갈겨쓴 글씨로 '개조심'이 적혀있고 성질난 그 대장(?)은 낯선 자를 보면 곧잘 으르렁대며 그 길을 지키고 있었기에 보통내기가 아니면 그 길을 쉽게 통과할 수 없었다. 그 '골목대장' 누렁이(때론 흰둥이, 때론 검둥이)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무탈하게 그 길을 통과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가장 빠른 그 길로 굳이 지나가는 모험(?)이란 때론 여러 이유에서 피할 수가 없었으니 어쩔 때는 누군가가 도망치다 엉덩이를 깨물리며 눈물 쏙 빼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야말로 그 골목의 대장이 마땅하게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니 따져 물을 수도 없고. 물론 도둑만을 골라가며 물어뜯을 정도의 영리함은 필수 덕목이 되겠다.
저쪽 동네로 가려할 때 길에 나있는 골목이나 지름길이 한 개만 있을 리 없고 그 길만이 마치 유일하게 우리가 걸어야 하던 것은 아니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면 또 다른 그럴싸한 길을 만날 수야 있겠지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그 길에는 본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느 길은 개가 싸놓은 똥이 함부로 나뒹굴거나 전봇대 옆에서 정신을 놓고 계시는 분들(?)이 자주 있는 탓에 그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또는 엉망인 길로 이루어진 골목을 걸러내고 나면 그중에서 결국엔 가장 깨끗하고 가장 빠르면서 그리고 가장 걷기 좋게 길이 잘 포장되어있음과 동시에 이길 수 있어 보이는 '골목대장'이 지키는 그 길로 가로지르려는 그 선택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바로 누군가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위치가 중국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는데 한반도 땅을 가로지른다면 여러 좋은 장점과 함께 대륙에 당도할 수 있으니 주변을 둘러봐도 이처럼 길이 정갈하게 나있으며 비옥한 땅도 없다. 그러다 보니 외세가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며 그저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쓰려했거나 반대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 정도로서 바라본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화가 나는 대목이다.
물론 골목길과 비슷하게 이 땅의 길목을 지키는 대장이 대단한 위용을 떨치며 이름 석자를 큼지막한 문패로 걸어둘 수 있다면 주변에서 감히 얼씬할 생각도 못했겠지만 역사의 기록에서 그런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대표적으로 몽골이 고려 땅을 밟았을 때가 그러했고 왜나라가 조선땅에 발을 들였을 때가 그러했는데 역사에서 살펴보면 고조선 이후로 민족의 지도자들은 골목을 지키려 앞장서야 할 그 중요한 순간에 항상 강화도로 가셨고 미국 땅으로 중국 땅으로 왜나라로 그리고 러시아로 떠나며 제 살길을 찾기도 바빠 보였다. 그러는 통에 우리의 선조들은 온전히 외세가 지배하는 이 땅에 홀로 남겨진 채 수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오랜 세월을 식민지에서 보냈으니 진작부터 이 땅에 외세의 문화가 뿌리 깊게 내린 점은 암만 봐도 당연한 결과였고 그들의 것이 우세하다고 받아들이던 점이라면 사실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나.
우리는 물건을 원산지로 분류하며 '미제' 또는 '일제' 아니면 '국산'으로 구별 지어 왔는데 불과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미제'와 '일제'는 솔직히 꽤나 인기 있는 상품이었고 선물로도 종종 활용되어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수입코너로 불리는 그 가게는 상가 이층의 계단 바로 앞 명당자리에 위치했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 가게에 둘러앉아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애를 돈독히 하고 계셨는데 그런 가게에서 파는 물건은 주로 '미제'가 많았다. 어차피 동네의 (이웃) 사촌이 운영하는 가게이니 만큼 우리 집도 그 가게에서 한두 개 의무적(?)으로 무언가를 사는(사실은 팔아주는?) 일에 동참해야 했고 보통은 그러한 연유로 우리 집에 들어오는 '미제(당시라면 영어로 된 제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제로 간주했다)'물품 중에는 '바셀린'이 있었다. 그 당시 바셀린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만병통치약과 같은 역할이었다. 어디에 어떨 때에 어떤 목적으로 바르는 물건인 줄은 정확하게 몰랐지만 그저 아픈 부위에 바르기도 했고 가려운 곳에도 발랐는가 하면 심지어 입술과 콧구멍까지 곁에 두고 1년 내내 바르는 약(?)이었는데 그때의 생각이라면 미제에 대한 믿음 하나로 온몸에 바르고 또 발랐나 보다. 이십 년 전이라면 '일제'도 대표적인 'must have' 아이템 중 하나였는데 그 시절 가전제품이 보통 그러했다. Sony, Panasonic, aiwa라고 적힌 카세트와 CDP와 MD 그리고 집 거실에 있는 오디오와 카메라까지 오히려 주변에 보여주고 싶던 자랑거리들이었고 그것들은 심지어 품질도 뛰어났으니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마땅히 없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 드는 점은 더 이상 '미제'나 '일제'가 우리 사이에서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사이 '메이드 인 코리아'는 우수한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입코너에서는 더 이상 미제를 팔아서는 장사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며 이제는 이런 가게를 찾기도 어렵고 그나마 찾더라도 동남아산 향신료가 주를 이룬다니 실로 대단한 변화 아니던가.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Sony나 HP의 노트북보다 삼성이나 엘지의 제품을 먼저 찾는다. 단순한 애국을 떠나서 품질이 더 우수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아사히'보다 '국산 수제 맥주'가 더 군침 돌게 할 정도니 그야말로 '일제'나 '미제'를 우선적으로 찾던 시절은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가 자연스레 사라져 가는 시대이니 이야말로 진정한 애국 아니던가.
하지만 고생대 판게아로 다시 돌아갈 정도의 대단한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이 땅은 여전히 이 위치에 반도로 있을 것이고 아태평양의 최고의 입지 탓에 여전히 주변의 강대국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게 호시탐탐 이 땅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이 땅 위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기싸움을 했지 않았던가. 그리고 일본은 독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우겨대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음침한 야욕을 여전히 대놓고 드러낸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누군가의 시각으로 기록한 위대한 유산으로 우리는 그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배우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역사에서 처럼 이 땅을 다시 찬탈(?)하려는 주변의 움직임은 여전히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대단한 입지를 자랑하는 한반도로 향하는 길목을 지킬 '골목의 대장 자리'는 단군왕검 이후로 지금까지 여전히 부재중이다. 최근 들어 중국과 일본은 다시 혐한을 부추기며 싸움을 걸어오고 미국은 여전히 우리를 압박한다. 사실상 주변에 우리 편은 없는 상황에서 자기들끼리의 편은 있으니 이 시점에서 뒷짐 지고 있다가는 역사의 반복이 될까 무섭다.
과거에 우리(국민)는 주권이 침탈당한 처참한 역사 속에서도 저항할 정도의 위대한 정신을 가진 민족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골목을 지켜내려 앞장서야 할 지도자들이 이 땅 위에 없었던 사실이 근현대사까지 반복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통탄할 역사 아니던가. 종교에 따라 환생이 허락되기도 하고 환생이란 개념 없이 저세상에서 영생을 얻기도 한다. 그 골목에 외지인의 진입을 '불허'했던 누렁이의 종교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강대국들이 야욕을 드러내는 시기라면 아마도 그의 '대장 노릇'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항의서한처럼 필요 이상의 고상한 행동 말고 '개조심' 간판을 내 걸어 골목대장을 배치해야 할 때가 아니던가. 필요에 따라 낯선 자가 이 땅에 진입하는 순간 엉덩이를 콱 물어야 하니깐.
그렇다고 누렁이의 환생만 바라고 또 바란다고 바뀌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나씩 하면 충분하다. 물론 허구한 날 우리 국민들만 앞장서서 'JAPAN OUT'을 외쳐대며 불매 운동한다고 될 일도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같은 '민초'의 입장에서라면 역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로서 그만한 것도 없다. 그에 더해 '일제'보다 '국산'이 더 대단해지는 요즘이라면 참으로 불매하기 딱 좋은 세상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