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오지 않는 집

지붕은 생겼고, 아이는 자랐다

by 피터의펜

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지 않았다.


매년 하던 일이었는데, 올해는 그냥 안 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트리라는 건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꽤 중요한 준비물 같은 것이었다.


예쁘게 꾸미고,

양말 오너먼트도 걸어두고,

자고 일어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믿기 위해서는 트리가 꼭 필요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 믿음이 필요 없어졌다. 산타클로스가 우리 집에 올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조금 황당하고, 조금은 슬픈 일이다.


대신 집 안이 너무 허전하지 않게 LED 전구만 조금 달아두었다.


작년까지는 분명 열심히 했다. 캐럴을 하루 종일 틀어두고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트리 아래에는 손수 적은 편지가 놓여 있었고, 나는 그 편지를 통해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우리 집에서 어떤 의미인지.


분명 쓸데는 없지만 그래도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 당장 사달라고 하면 사줄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빌고 또 빌면 크리스마스 그날 새벽, 정말로 배달되는 기적 같은 일이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경험하며 자라왔다.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 그 선물을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한 손으로 들기 힘들 만큼 큰 박스를 고르고, 트렁크에 숨겨 두었다가 아이들이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여오는 일.


그 수고를 기꺼이 해야 했다.


포장지 소리 때문에 숨을 죽이고, 테이프를 뜯을 때도 조심조심했다. 그렇게 선물을 머리맡에 내려놓고 나면 그제야 한 해를 잘 넘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원하는 선물도 바뀌기 시작했다.


로봇이나 인형 대신 게임 아이템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쓰는 그 편지에 당당하게 '로블록스 현질 아이템'을 적어놓은 걸 보며 작년 크리스마스에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 더 솔직해져도 되겠다고.


그래서 올해는

내가 먼저 말했다.


이제 산타는 없다고.

이런 '의식'은 그만하자고.


아이들은 의외로 담담했다. 사실 아빠가 산타였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재작년까지는 진짜 믿었지만 작년부터는 알게 됐다고, 괜히 나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실체 없는 캐시로,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으로.


트리도 정리했다. 해마다 조금씩 듬성해지던 트리는 분리수거 날에 내놓고 그 자리에 전구만 남겼다.


굴뚝은 없지만 지붕이 있는 집으로 왔는데, 산타는 더 이상 올 수 없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좀 웃기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렸다.


올해는 조금 덜 설레는 크리스마스다. 대신 조금 더 솔직하다.


아이들이 자랐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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