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소리 내어" 완독한 책이다. 사실 읽은 기간으로 따지면 가장 오래된 것 같다. 올해 초부터 가을까지 읽었다. 아무래도 그냥 눈으로 따라 읽는 것이랑 문장 하나하나를 음절로 소리 내어 입에 가져오는 것은 속도에서 차원이 다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당시에 (놀랍게도 심지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인기를 얻은 후 국내에서 15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또한 '가벼워 보이는' 소설이기에 더 부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띠지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사로잡은 K-힐링소설의 대표작"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는데 사실 '힐링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난 좀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소설이 항상 인류에게 거창한 목적의식을 부여하고 사유의 깊이를 더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얕은 힐링만 추구하는 책으로 어떻게 살 수 있겠나 싶은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주인공 독고씨는 서울역 노숙자였는데, 청파동에서 편의점을 하는 할머니의 지갑을 찾아준 이후 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게 된다. 편의점과 관련된 여러 인물(편의점 알바생인 대학생과 아주머니,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할머니들 등등)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사람들의 고민을 독고씨가 따뜻한 인간미와 과묵한 매력, 지혜로운 대처법 등으로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동안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던 독고씨의 진정한 정체도 밝혀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스포일러 주의>
<스포일러 주의>
독고씨는 의사였는데 의료 사고에 휘말렸다가 이를 비도덕적으로 덮는 바람에 가족들로부터 내쳐지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기억을 점차 잃었던 것이다. 결국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기억을 점점 되찾은 독고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병원에 찾아가 과거 환자들에게 사과하라고 협박을 한 후 예전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작가분은 원래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책을 지었었다고 한다. 망원동에 이어 청파동을 무대로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동네 이야기를 그려내신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청파동의 모습이 꽤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심지어 <불편한 편의점2> 가 나왔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작품인데도, 나는 이 이야기가 감히 '동네 이야기'라는 큰 틀에서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작품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옴니버스식의 동네 이야기들은 이미 <원미동 사람들>이나 <천변풍경>에서 그 정수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이라고 말하면 크게 캐릭터와 이야기 해결 구성의 단순성을 꼽고 싶다.
첫째, 캐릭터가 단순하다.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그려내고 싶으셨던 것 같지만 인물들이 일차원적으로 그려진다. 악독한 사람은 반성 없는 악독한 사람으로, 주인공은 개과천선하는 캐릭터로, 엄마로서 고생하는 사람은 엄마로서 고생하는 사람으로 그 특성이 고정되어 있다. 짧은 분량 속에서 캐릭터의 모든 것을 소개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낼 여지가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나의 욕심일까? 마치 절대선 마냥 표현되는 편의점 주인 할머니나 독고씨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인간적인 흠결은 독자로서 전혀 알 수가 없고 마치 반드시 따라야 하는 선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에 반발심마저 들었다.
둘째, 이야기 해결 구성이 단순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모든 갈등은 주인공 버프를 받은 독고씨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독고씨가 주는 '위로' 한 방이면 가족 간의 갈등도, 사회와의 단절도, 내면의 괴로움도 만사 OK가 되어 버리는 스토리가 개인적으로는 허황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인기 요인은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자기계발서 및 자본주의가 범람하고 있는 인문학 실종의 시대에, 그나마 소설로서 국내 서점을 지키고 있는 자존심이 있는 책이다.
우선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고씨라는 캐릭터는 미숙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확립된 사람으로 그려지고, 독자는 그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사람 냄새 넘치는 감동도,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된 가치관도 모두 얻을 수 있다.
또한 쉽게 갈등이 해결되는 이야기 구조 덕분에 독자는 갑작스러운 비극에 대한 긴장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대할 수 있다는 점도 사실 독자들에게 소구하는 부분이다. 대중들이 독서를 시작할 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고르기 마련이라면, 이렇게 따뜻하고 희망차게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그에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동네 이야기'의 플롯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역사에서 동네-사람의 역학 관계는 휴머니즘을 극대화하여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불편한 편의점>도 현시점에서 가장 사람들이 찾을 만한, 그리고 어쩌면 가장 필요로 하는 형태의 동네 이야기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원미동, 망원동, 청파동을 넘어 평창동, 청담동, 그리고 또는 저 울릉군 어디라도 글 쓰는 분들의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늘 함께 하기를 바란다.
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 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책과는 또 별개로... 요즘 독자들은 책을 통해서 뭔가를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이 돈에 직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물론 아닌 사람도 엄청 많지만 시류가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의 양극화로 나타난 것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활동/책에 대한 수요인 것 같다. 돈이 되거나, 나로 하여금 어려운 생각에 빠지지 않게 하거나, 이 둘 중 하나는 해줘야 요즘 세상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짧은 영상들의 폐해라는, 유교 선비걸의 떼잉 쯧쯧 한 마디를 덧붙여 본다. (이 유교 선비걸은 밥 먹을 때마다 '스걸파' 라는 예능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