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Science Fairy tale, <천 개의 파랑>

by 라소현
xxlarge


<천 개의 파랑>, 천선란, 허블

※ 이 글은 <천 개의 파랑>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음


한국 SF의 현재를 보고 싶어서


한국과학문학상은 이제 확실히 신예 SF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 한국 문학에서 김초엽과 천선란 작가를 빼고 얘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SF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었던 터라, 뒷북이지만 같은 관문을 통과한 천선란 작가의 작품은 어떨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 좀 읽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서가에 이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게 벌써 2년도 더 전이니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얼마나 더 '핫'했겠는가. 출간 이후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여 계속 궁금했는데 새로운 독서모임에서 친구의 추천을 받은 김에 첫 책으로 정하게 되었다 (참, 내가 추구하는 독서 모임을 찾을 수 없어서 결국 내가 만들었다).


소설은 마치 이 책이 콜리만의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한다. 기수 휴머노이드지만 소프트웨어가 잘못 들어간 콜리(당시에는 이름도 콜리가 아니었다)는 투데이라는 말과 합을 이뤄 경마에 나가면서 점차 행복과 말과 인간에 대해 알아간다. 하지만 투데이는 경주마로 소모되면서 빠르게 건강을 잃었고 결국 그런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콜리는 스스로 낙마하는 선택을 한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로봇에 재능이 있지만 장애가 있는 언니와 한부모 가정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결국 불평불만도 말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난 연재는 부서진 콜리를 만난 후 '뭔가 다르다'라고 느끼게 되고, 몰래 경마장에서 콜리를 빼오게 된다. 콜리는 남편과 사별한 후 힘들게 생계를 책임지던 보경과 장애 때문에 사회 전반적인 시설로부터 소외받던 은혜를 감정적으로 보듬어준다. (물론 연재도 콜리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연재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로봇 대회를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 간의 관계와 우정도 모두 더 끈끈해진다.


(스포일러 주의)

(스포일러 주의)

이들은 힘을 합쳐 폐사 위기에 처한 투데이를 구하기 위해 그를 경마에 출전시킨다. 콜리는 투데이가 자기의 무게만큼을 덜어내고 더 빠르게 달려 행복감을 느끼길 바라며 다시 한번 자의로 낙마하면서 소설은 끝맺는다.


쉽고 가볍게 쓰인 청소년용 소설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책이 무겁지 않고 가볍다는 것이었다. 문체나 내용이 매우 가벼운 편이어서 놀랐다.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이런 감상은 더욱 극대화됐다. 투데이를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라니, 네이버 지식인 고전짤로 돌아다니는 내용이 아닌가.


20130306000554_0.jpg 지식인 출처 :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407&docId=131941072


중간부터는 청소년으로 설정되어 있는 주인공들 말투 때문에 인터넷 소설을 읽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차라리 이 책이 청소년을 타겟으로 한 문학작품으로 출간되었던 것이라면 이런 부분을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스포일러 주의)

(스포일러 주의)

사실 마무리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수미상관 구조인 점은 안정적이었으나 휴머노이드가 다시 말 위에서 자의적으로 떨어지는 사유가 '말을 더 행복하게 하고 살려야 한다는 존재 이유'라는 점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휴머노이드는 소설 내내 (우리가 로봇에게 기대하는) 지적인 존재보다는, 인간의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감성적인 존재로만 기능하더니 결국 결말에서조차 K-신파극 같은 '이래도 안 울어?'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심지어는 갑자기 '천 개의 파랑'이라는 제목의 비밀을 시적으로 해설해 주는 점에서 이 지나친 감수성에 숨이 막혔다.



약자들의 연대가 변화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청소년, 장애인)가 할 수 있는 진솔한 고민들이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는 것이 좋았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소설이 범람하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세상에 있다는 것이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은혜가 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들을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현실감 넘치면서도 나에게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 주는 새로운 이야기였는데, 인터뷰를 찾아보니 천선란 작가 개인의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었다.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은혜는 철저하게 삭제되었다. 사람들은 지하로 가라앉은 은혜를 모르는 척 외면하더니 어느 순간 휠체어에 앉혀놓고 측은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 기술이 너를 구원했다는 듯이 굴었다.


한편, 여성 서사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독서모임 회원이 읽다가 중간평을 공유해 줬는데 여성 인물들만 잔뜩 나오는 게 어색하다고 말해서 내심 놀랐다. 아니,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은 대놓고 여성 중심 서사라서 금방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내 감각이 이렇게 둔해졌다니. 찾아보니 실제로 천선란 작가와 페미니즘에 관해 연구한 기록도 있더라. 이런 여성 서사는 SF를 만나 과학기술에 자리를 빼앗기는



현실에 SF 한 방울 더하기


책 뒤쪽에 있는 심사평에도 있듯이, 이 작품은 우리가 SF에 기대하는 장엄하고 놀라운 세계관은 약한 편이다. SF적인 요소를 위해서 로봇을 차용했을 뿐, 실제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반 소설의 휴머니즘에 더 가깝다. (기계 앞에서 더욱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주제 의식 일부에 세계관 자체가 '이용당했다'라고 느낀다)


심사평을 보니 심사위원분들은 '과학기술'의 내용이 SF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의 지점이라고 했지만, 그냥 일반 독자 1인으로서 내가 SF에 기대하는 것은 확실히 핍진성을 확실히 갖고 있는 초현실적 세계관이 맞다. 신기한 기술들의 나열이나 미션 임파서블에서나 볼법한 미래 아이디어 상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탄탄하고 새로운 세계관인데 과연 이 소설을 통해 내 기대가 충족되지는 못했다.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 나와서 자신의 약한 처지를 개선해 나간다는 이야기 플롯에 로봇은 얹혀있는 설정일 뿐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Science Fiction(SF)라기보다는 Science를 곁들인 Fairy tale로서의 "SF"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후에 읽는 SF 작품은 냉정하고 차가운 디스토피아적 내용이어도 되니까 좀 더 강력하고 흡입력 있는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면 좋겠다.



그리고...

가을에 하늘이 왜 높은지, 가을에 왜 단풍이 드는 건지 전혀 기억나는 바가 없어서 검색해 봤다는 것은 비밀이다.

독서모임 분들과는 <천 개의 파랑> 완독 기념으로 과천 경마장을 방문하고 왔다. 투데이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길 바랐지만 다들 경마가 주는 도파민을 맛보고 말았다는 결말.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3년 나의 수영 기록과 함께, <수영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