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둘을 키우면서
같은 부위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눈 위쪽이 찢어졌다.
마음도 찢어진다.
아들은 동네 외과에서 대충(?) 꿰맸다.
딸아이는 야간에 대학병원에서 성형외과
의사에게 치료했다.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자식을 키우면서 어느 한쪽을 더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똑같다.
똑같은 상황인데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첫째 아들은 눈 위쪽이 찢어졌을 때
동네 병원에서 치료했다.
둘째 딸아이가 다쳤을 때는 밤늦은 시간이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외과 의사가 대충(?) 꿰맬 건지 성형외과 의사에게 맡길 건지 선택을 하란다.
의사가 이런 제안을 한 것부터가 아들과 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딸이니까 흉터가 남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성형외과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했다.
딸을 더 사랑한 건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흘렀다.
한참을 기다렸다. 의사가 툴툴거리며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자다가 불려 온 건지 컨디션이 똘망하지 않다.
불안했다.
어린 아이라 약을 먹여서 재운 후에 치료한다.
가는 실이라서 흉터는 없을 거란다. 마음이 놓였다.
'이 정도면 그냥 외과에서 꿰매도 되는데' 어쩌고~.
'딸이니까 그럴 수 있죠' 저쩌고~.
조금 잘난척하는 성격이다.
바느질하면서 자꾸 말을 한다.
조마조마했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맬 때도 예쁘게 하려고 집중하셨던 엄마가 생각난다.
십수 년이 지났다.
아들은 흉터가 전혀 남지 않았다.
딸아이는 모든 흔적이 선명하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흔적이 남았다.
인생은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 밖의 결과를 우리 앞에 던져준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속삭인다.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속상하다.
다행히 딸아이는 눈썹 위의 상처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들도 대충 꿰맸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어느 가을 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