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와따 Oct 31. 2024

죄와 벌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 소리가 그의 가슴을 짓눌러 숨이 막힐 듯했다. 유 사장에게 불려 가서 단체로 욕설을 들을 때면 유독 힘들어하던 송 선배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끙끙거리다가 가슴을 치며 막힌 숨을 몰아쉬던 송선배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김 부장은 책상 위 녹음파일을 멍하니 응시하며 과거를 되짚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송 선배의 죽음과 유 사장의 잔혹한 폭언, 그리고 묻혀버린 진실은 여전히 김 부장의 곁에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런 제보를 하신 거죠?" 기자의 질문은 김 부장의 머릿속을 맴돈다.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왜 다시 꺼내야 할까? 그는 혼란스러웠다. 세상에 갑질하는 인간이 한둘도 아니고, 비행기를 후진시킨 것에 비하면 그깟 욕쟁이 사장이 대수는 아닐 것이다. MBS 입장에서야 그렇고 그런 갑질 소재일 테니 박 기자의 입장에서 썩 구미가 당기지는 않은 듯했다. 사무실 한가운데서 직원의 귀싸대기를 갈기는 영상도 아니니까.


"직원들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싫습니다." 김 부장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기자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그렇긴 해도 이미 회사에서 해임된 사람인데 어떤 실익이 있을까요?"


유 사장은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되었지만, 치밀한 성격 탓에 직접적인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150억 원이라는 거액을 횡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도 미지근했고, 직장 내 괴롭힘이나 명예훼손의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처벌도 어려워 보였다.


10년 전, 송 선배의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장례식장.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 송 선배의 아내는 멍한 눈빛으로 남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 사장은 마치 사냥을 하듯 송 선배를 괴롭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되자 자신이 주도했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 송 선배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고, 송 선배가 거부하자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야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누가 너 같은 놈을 부장 시켰냐?" 송 선배의 죽음은 스트레스에 의한 돌연사라고 했고 그런 줄 알았다. 6개월 뒤, 송 선배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알려졌을 때, 유 사장은 그룹총괄로 자리를 옮겨 무적의 권력자가 되어 있었다.


유 사장의 욕설은 끊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매일 똥을 먹는 기분이었고,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횡령혐의와 관련한 경찰의 유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자 김 부장은 10년 전 송 선배의 죽음을 떠올리며 유 사장의 욕설 파일을 MBS 홈페이지에 올렸다. 송 선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유가족에게 10년 전의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김 부장은 고민에 빠졌다. 흘러간 과거를 물어다 유가족 앞에 놓아주는 것은 송 선배가 원하는 미래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 부장은 이런 제보를 하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닫기로 했다. 



"그 새끼가 사람을 죽였거든요..." 그 말은 삼켜야 했다.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했다.

작가의 이전글 바느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