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와따 Mar 19. 2023

퇴직 후 지난 1년의 조각들

회상

퇴직을 하고 1년이 지났다.

매일매일 하루를 바느질해 놓은 듯 기억에 촘촘하게 박혀있다.


365개 정도의 작은 구멍들이 가지런하다.

지나온 1년 역시 후회가 남는다.

1년이 지난 후 돌아봤을 때 찌꺼기가 남지 않는 생활을 하려고 무단히 애를 썼는데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떤 삶을 살았어도 후회는 남았을 터이다.


어차피 놀기로 했던 건데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돌덩이를 넣은 듯 불편한 생활이었다.

성격이다.

결과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진 것 없이 마음고생만 했다.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더 후회했을 성격이다.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

이성적으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려받은 성격대로 사는 방법밖에는 없는 듯하다.

이 잘난 기질을 확인했으니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먹고 놀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 오히려 피로만 쌓였다.


지난 1년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있겠지! 만들어야 한다!


속초, 구례, 제주도, 울릉도, 다낭, 다시 제주도. 강릉, 남해

예약을 했다가 위약금까지 물면서 포기했던 괌이 아쉽고

일본은 꼭 가봐야 한다는 마눌님의 외침은 벚꽃앤딩처럼 끝났다.

피지도 못하고 지다니. 아쉽다. 미안하다. 조금 더 부지런히 놀아야 했는데.

언제 가 볼 수 있을까?


오프라인에서 만남이 줄었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분들의 정이 많이 쌓였다.

인친이 현실의 친구보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분들은 신기루다.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물론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

몇몇 분은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 뵙고 싶다.

인스타그램 릴스 중 19만 조회수가 나왔다.

인생처럼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의 친구를 자주 만질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함께 퇴직한 임원들과 새로운 만남을 조직했고,

나의 퇴직을 아파하면서 위로해 주는 선배들의 따뜻함에 감동했다.

나중에 후배들에게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가깝게 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멀어지는 부모님은 큰 숙제다.

세대차이인지 성격차이인지......

떨어지면 마음이 아프고 함께 있으면 고구마 백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사시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도 7천 원 병원비를 당신 카드로 결제해야 한다고 실랑이를 했다.

지켜보면 짜증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나의 이런 기분이 누구를 향한 불만인지 알 수가 없다.

내일모레면 아흔이 되는 아버지는 잠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한다.

왜 그토록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시는 걸까.

쉬거나 논다는 개념을 평생 배우지 못한 삶이다. 속상하다.


매월 참석하던 최고경영자과정 모임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현직이 아니면서 만남을 이어갈 필요가 있는지 판단이 안 된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조각들이 남아 있다.


아픈 1년을 뒤로하고 내 기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대학 캠퍼스에서 생활이 시작됐다.

과연 여기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동네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우리 동네 산수유>


작가의 이전글 식구 네 명 모두 놀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