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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Aug 21. 2019

나라를 지킨 영웅에게 보내는 누추한 찬가

영화 봉오동 전투가 낳은 수많은 논란과 아쉬운 점

올해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라고 불리는 무역 특혜국 지위를 박탈한다는 이야기인데, 기존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게 가지고 있던 반감과 실질적인 불이익이 더해져 일본 불매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모 회사의 CEO의 말과는 달리 꽤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대의 요구에 딱 맞는 영화가 바로 이 시기에 개봉했는데, 원신연 감독이 제작을 맡은 봉오동 전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시의성 100점의 개봉 시기

앞에서 말한 것 같이 이 영화의 개봉 시기는 아주 훌륭했다. 당연히 일본과의 무역분쟁을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개봉을 앞두고 고조된 반일감정, 그리고 광복절이라는 국경일이 개봉 시기와 맞물리며 이 영화의 흥행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8월 20일 기준, 400만 명의 관객수를 돌파하며,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지는 중이다.


작품성도 100점?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가 흥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 과연 이 영화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을지, 역사 시간에 배운 그 항일운동의 모습이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져 있을지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의성이 100점이라면 작품성은 그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먼저 영화는 ‘봉오동 전투’라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흘러간다.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며 식민 통치를 강화하려는 일본군, 그리고 이런 일본군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는 독립군. 이 둘의 첨예한 대립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과 독립군은 필연적인 전투를 해야만 했다. 민가를 습격하는 일본군을 그냥 지켜볼 수 없던 독립군의 총알이 일본군을 꿰뚫으며, 영화는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선을 넘어버린 잔인함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영화는 도를 넘어버린 잔인함에 잠식되어 버린다. 물론 그렇다. 일본군이 벌인 잔혹한 행위들에 비하면 이는 우스운 수준일 수도 있다. 하지만 15세 이상 관람가 딱지를 달고 나온 영화이자, 다양한 연령층의 타겟이 되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면 좀 더 신중할 필요는 있다.


선혈이 낭자하는 전투 장면과 머리가 뎅겅 날아가 버리는 장면. 다리나 손가락이 잘리는 장면. 이 장면들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정말 꼭 필요했을까? 물론 이러한 장면들이 주는 쾌감도 있다.


‘일본군에게 당하기만 했던 조선인과 독립군의 역사적 첫 승리’가 봉오동 전투의 의의인 만큼, 이 승리를 더 추켜세우는 한편, 확실히 일본군을 짓밟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억눌렸던 울분을 토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잔인한 이 장면들은 피로감을 낳았다. 반복되는 피 튀기는 장면 속,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역사적 승리의 의의'라는 메시지는 희미해지고, 계속되는 전투로 인간성을 잃고 광기와 독기만 남은 인물들의 모습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반전(反戰) 영화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역사적 승리를 알리는 영화에서 지나치게 부각된 잔인한 장면은 오히려 진짜 메시지를 흐릿하게 만들어버렸다.


존재감 0의 조연 배우들

전쟁 영화, 사극 영화는 기본적으로 많은 인물을 필요로 한다. 이 영화 역시 주연 배우부터 작은 역할을 맡았던 조연 배우들까지. 수많은 배우들이 힘을 합쳐 결과물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몇몇 배우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생긴다. 먼저 일본군의 막내 격이었던 유키오의 역할이 그랬다. 해철이 일본군 막사를 쓸어버린 전투에서, 홀로 엎드려 있던 일본군 병사가 바로 유키오였는데, 해철은 이 소년을 전쟁 포로로 데리고 다니기로 한다.


물론 해철의 의도는 분명했다.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도록 하고, 추후에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벌인 비도덕적인 만행, 폭력적인 사건들에 대해 폭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속, 계속해서 유키오를 데리고 다니는 게 무리라 생각했던 이들은, 결국 유키오를 풀어주게 된다. 그리고 유키오 역시 해철의 원래 의도를 이뤄주지 못하며, 해철의 계획은 그저 ‘소망’ 정도에 그쳐버리고 만다. 사선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루려 했던 무언가가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린 느낌이었다.


유키오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게 무엇이었는지 짐작은 간다. 우리나라를 불법적으로 병합했던 일본은 여전히 과거를 부정하고, 뻔뻔한 태도로 국제사회에 대응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과거 잘못을 보여주고, 양심이 있는 일본인이라면 부끄러워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굉장히 투박하고 엉성하게 만들어진 메시지는 영화 내내 겉돌다 사라져 버리고 만다. 정말 이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으면, 좀 더 은유적으로 담아낼 수는 없던 걸까?


그런데 이런 유키오 보다 더 겉도는 역할이 있었는데, 바로 춘희였다. 그녀는 일본군에 의해 동생을 잃고만 불운한 존재이자, 일제 식민통치 당시 힘없던 조선인들을 투영한 상징적 인물이다.


춘희를 통해 감독은 무고한 조선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가혹한 일들. 그리고 일본군들의 의도대로 끌려 다녀야 했던 무력한 조선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는 봉오동 전투가 주는 반전의 쾌감을 위해서라도 필요했을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냉정히 따져보자. 그녀가 없었다고 한들, 영화 내용의 큰 공백이 생겼겠는가? 


당연히 답은 ‘No’다.


그녀의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전쟁에 완전히 미쳐버린 일본군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장치로만 소비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동생을 잃게 된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형적인 신파의 길로 관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즉, 불필요한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억지 감동 코드를 구겨 넣은 것뿐이다. 그녀의 등장은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벤저스급 전투력의 독립군

영화는 역사적인 봉오동 전투의 승리를 다루고 있다. 이 전투의 큰 비중을 두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영화는 이 전투를 너무나 신화적으로 다루고 있다.


감독은 독립신문의 기재된 사실을 바탕으로 전투를 재현해냈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물론, 이는 독립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약간의 과장이 있었던 듯 보이지만, 아예 없던 사실을 적은 게 아닌 만큼, 감독이 원하는 자료를 취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크게 두 가지 장면인데, 첫 번째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일본군을 쓸어버린 해철이다. 당시 총기 제조 기술이 현대만큼 뛰어나지 않았기에, 현대식으로 무장한 병사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원거리에서 저격이 가능한 무기를 상대로 칼 한 자루를 들고 뛰어드는 건 무모함을 넘어서 멍청한 행동이다. 심지어 총알이 다 소진되어, 백병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검술이 있었다고 한들, 총기로 무장한 대규모 병력과 싸우는 건 이 전투를 너무 신격화시키는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영화 내내 일본군을 큰 소리만 치고 할 줄 아는 건 없는 ‘당나라 군대’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적어도 그 당시 동양권 나라 중 최고 전력을 갖춘 군대가 일본군이었다. 우스꽝스럽게 일본군을 그려내, 독립군이 대승할 수밖에 없던 당위성을 제공하려는 듯 하나, 이 부분은 고개가 갸웃할 만한 부분이었다.


두 번째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장면은 이장하가 벌인 ‘기관총 쇼’. 그는 고지를 점령한 뒤 흙무덤에서 기관총을 파내자마자 엄청난 기세로 기관총을 때려 갈긴다. 그의 기관총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단 한 명의 일본군도 살아남지 못한다.


물론, 기관총의 위력은 현대전에서도 유효하다. 게다가 고지를 미리 점령한 상태이니 이장하에게 유리한 싸움판이 벌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혼자서 수 십 명이 넘는 병력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기관총을 쏘는 동안 그는 그 어떤 엄폐물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냥 서서 기관총을 갈기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불리한 지형조건과 기관총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는 화기를 가지고 있었다 쳐도, 이장하가 보여준 기관총 전투씬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어벤저스급 전투력’인 것이다.


전투씬만큼은 훌륭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밀도 높은 전투 장면을 만들어 뒀다는 것이다. 당연히 헐리웃의 대작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부족할 수 있겠지만, 국내 전쟁 영화 중 이렇게 많은 전투 장면, 이렇게 큰 규모의 전투 장면을 담은 영화는 별로 없었다. 역사적 승리를 기록하기 위해, 전투씬의 큰 비중을 두려던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총격전, 백병전, 상대 저격수와의 저격 전쟁, 수류탄 폭발 장면 등 다양한 전투 형식을 상황에 맞게 분배해, 전투 장면을 보는 맛만큼은 기존의 어떤 한국 영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주조연급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부분. 이른바 연기 구멍이 보이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며 감정이 깨진다거나 어색함을 느끼는 부분이 적어도 '연기에서는' 없었다.


더 좋은 역사 영화의 탄생을 기다리며...

사실 봉오동 전투라는 영화는 굉장히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다. 단순히 반일감정이 최고조로 오른 지금 시기에 개봉해서가 아니라, 봉오동 전투라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단순히 역사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성. 그리고 역사적 승리에서 오는 쾌감. 모두 조금씩 못 미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추후에 또 어떤 역사적 사건이 영화화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스러운 연출을 구겨 넣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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