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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Sep 08. 2019

<위플래쉬> 플레쳐 교수는 정말 빌런이었을까?

영화 위플래쉬 리뷰 및 분석

데뷔와 동시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란 어떤 분야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영화감독은 이 어려운 일을 해냄과 동시에,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인 라라랜드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 6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 오늘 필자가 소개할 영화는 천재 영화감독으로 헐리웃에서 주목하고 있는 감독 데미언 셔젤의 데뷔작 <위플래쉬>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이 영화는 드럼 연주자 앤드류와 그를 지도하는 괴팍한 지휘자 플레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셰이퍼 음악학교에 들어온 앤드류.


그리고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키워내려 하는 플레처 교수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플레처는 굉장한 폭력을 그에게 가하게 된다. 단순히 그의 연주 실력을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욕설, 각종 패드립 심지어 인종차별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비난을 쏟아냄과 동시에 물리적인 폭력 역시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플레쳐 교수는 앤드류의 성장을 방해하는 빌런이었던 걸까?


플레쳐는 빌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 모두 존재할 것 같다. 먼저 그가 빌런이라 생각하는 쪽은, 그의 무례한 태도와 선을 넘는 폭력성을 지적할 거라 생각한다.


무대 밖에서는 따뜻한 척, 사람 좋은 척 혼자 다하더니, 연습만 들어가면 밴드원들을 무시하고 비난하기 바빴던 플레쳐.


심지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내쫓아 버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도 당연히 그의 원색적인 비난은 그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제자의 자살 사건과 엮여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잘리게 된 그는, 비난의 화살을 돌릴 곳을 찾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앤드류에게 화풀이하기로 한다.


자신과 가장 큰 갈등이 있었던 앤드류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을 거라 확신하며, 그에게 공개망신을 주는 동시에, 더 이상 드러머로서 살아갈 수 없게끔 계획을 세운 것.


자신의 폭주를 인정하고 앤드류에게 사과하는 스탠스를 보였던 모습과는 또 다르게, 플레쳐는 다시 한번 뒤통수를 때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즉, 플레쳐란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맡은 밴드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굴러가야 하며,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개성이나 감정을 존중하기보다, 그저 기계 부품 중 하나처럼 여길뿐.


고장 난 부품은 새로 갈아 끼우면 그만이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부품에게는 거친 채찍질을 가한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심지어 자살했던 제자의 죽음을, 사고사라고 이야기할 만큼,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회피하려는 성향을 보였으며, 자기 잘못은 단 1%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뻔뻔하게 행동했다.


이러니 그를 빌런이나 악당이라고 여기는 건 무리가 아닐 거라 본다.


플레쳐는 빌런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플레쳐는 자신의 알량한 공명심 만을 위해 부원들에게 채찍질을 가한 건 아니다.


그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기준만큼 제자들이 따라와 주기를 바랬다. 이를 반영하듯 플레쳐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그만하면 잘했어"였다.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해버리면, 그 이상을 뛰어넘는 천재가 나올 수 없다는 일념 하에, 그는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주려 했다.


새로운 드러머를 계속해서 뽑는 행동 역시 이를 보여주는 부분. 자리가 정해지고 나태해지는 걸 경계했던 플레쳐는, 새로운 경연 전, 항상 새로운 드러머를 데려오며, 기존 멤버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제자의 발전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 가능성을 계속해서 키워나가는 것 역시 스승의 몫이라면,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그 역할을 해 나가고 있었던 거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해서 그가 저지른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력 등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의 의도만큼은 꼭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플레쳐와 동화되어 가는 앤드류


이유야 어찌 되었든 플레쳐와 앤드류는 대척점에 서있던 인물이다.


꿈을 좇는다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플레쳐와, 이제 막 신입생으로 들어와 실력을 쌓아보려는 앤드류는 많은 부분이 달랐었다.


하지만 플레쳐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간 후부터, 앤드류는 조금씩 달라진다. 먼저 계속되는 경쟁 속, 앤드류의 순수했던 눈빛은 점차 광기를 띠기 시작한다.


앤드류가 처음 음악을 시작한 건, 당연히 음악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그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의 눈빛에서 순수함은 사라지고 독기와 광기만이 남는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경쟁 속, 물렁한 태도와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


그래서 어느 순간, 플레쳐의 호통 아래 눈물을 뚝뚝 흘려대던 순진한 앤드류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의 비난을 더 큰 목소리로 맞받아치는 독종의 모습만 남게 된다.

이런 앤드류의 변화는, 영화가 후반부에 치달을수록 도드라져 나타난다. 악보도 없는 곡을 시키는 바람에 제대로 망신을 당했던 앤드류는, 아버지 품에 안겨 슬픈 표정을 짓는다.


원래의 모습이었다면 펑펑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을 앤드류.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다시 무대로 향한다. 독기로 재무장하고 돌아온 앤드류는 마음대로 드럼을 두드리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런데 무아지경에 빠져 드럼 연주를 하던 아들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점차 표정이 굳어간다. 기존에 그가 알고 있던 아들은 더 이상 없으며, 경쟁심과 독기만 남은 플레쳐의 분신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다정했던 아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어두운 표정을 감출 수 없던 게 아닐까?


메트로놈의 환생 플레쳐


영화 속 플레쳐는 말 그대로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 앤드류가 스튜디오 밴드 합주에 처음 가게 된 날, 그는 약속 시간 정각에 딱 맞춰 나타난다.


항상 일정한 박자를 맞춰주는 메트로놈처럼, 그는 기계적으로 딱딱 맞춰 사는 사람이란 걸, 가장 처음으로 드러낸 장면이자,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암시가 바로 그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해 보이던 그가 놓치고 있던 것 역시, 그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부분이 원인이었다.


감정이 결여되고, 의사결정 기능만 남아있는 기계처럼, 그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만을 한다.


그 안에서, 구성원들의 감정, 그들과 함께했던 정과 시간 등은 무의미해지고, 그저 순간순간 최선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사람만이 그의 기준에 부합할 뿐이었다.


언제나 감정이라는 부분은 도려낸 채, 일정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였던 플레쳐라는 메트로놈은, 결국 그 감정이라는 것 때문에, 배터리를 잃고 동작을 멈춰야만 했다.


앤드류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


그럼 앤드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그는 순수한 열정이 있던 청년이었다.


다소 어수룩하기는 해도, 드러머라는 꿈이 있었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귀여운 고백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플레쳐와 만나며, 앤드류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사고관까지 싹 다 바뀌게 된다. 물론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열망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앤드류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야망이었다.


최고가 되고 싶어 최고의 음악 대학인 셰이퍼를 선택했고, 오래전 촬영된 홈 비디오에서도, 그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항상 경쟁에만 몰두하게 된 건, 플레쳐를 만난 이후였다. 적당히가 아닌 죽을 때까지, 재미가 아닌 전투가 되어버린 연주 속에서, 그는 인간다움을 잃어갔다.


짧은 생을 살았던 찰리 파커처럼, 오래 살지는 못해도 현대 음악사의 굵직한 족적을 남기는 것. 그것만이 앤드류 인생의 목표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하찮은 것들로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앤드류 역시, 인간성을 잃은 플레쳐처럼 기계적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라진 악보의 행방


재밌는 부분인데, 앤드류가 메인 드러머를 꿰차게 된 건, 원래 자리의 주인인 태너가 악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악보를 관리하지 못한 태너의 책임도 크지만, 잃어버린 장본인은 앤드류인 만큼, 그는 꽤 억울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이 악보는 누가 가져갔을까? 앤드류는 누가 가져간지 모르지만 청소부가 치워버렸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밴드부원들이 주변에 있는 상황에서, 악보를 발견했다면 가장 먼저 그들에게 주인이 있는지 물어왔을 텐데, 그런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가정은 틀릴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가장 유력한 범인은 당연히 플레쳐. 연주 전, 악보를 흘리고 다닌 베이스 담당 학생에게 걸쭉한 욕설과 함께 내쫓았던 플레쳐라면, 두 번이나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


그래서 악보를 숨긴 다음, 천연덕스럽게 태너와 앤드류를 비난했다. 완벽주의자인 플레쳐에게 조그만 실수도 용납될 수 없으며, 누구나 눈 밖에 나면, 언제든 다른 멤버로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포함된, 하나의 기강 잡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표현 방법이 플레쳐의 평소 모습처럼 괴팍하고 불친절했던 게 문제였다면 문제였지 않았나 싶다.


"인생 영화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필자는 항상 이 영화를 꼽는다. 스토리 라인이 약간 부족해 보일지는 몰라도 기존 음악 영화에선 보지 못한 긴박감, 주조연의 완벽 연기, 그리고 마지막 전율의 10분짜리 시퀀스까지.


러닝타임 동안 잠시도 한 눈 팔지 못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매력에 볼 때마다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뷰를 위해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언 셔젤의 후속작들인 '라라랜드', '퍼스트 맨' 도 재밌게 봤고,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도 기대되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 영화가 꽤 오랜 시간, 인생 영화를 묻는 질문에 대답이 될 것만 같다.


https://youtu.be/Zun65_NAv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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