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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Dec 27. 2019

<케빈에 대하여> 사랑받지 못한 아들이 이끄는 파멸

영화 '케빈에 대하여' 리뷰 및 분석

잠에서 깨어나 집 밖으로 나온 에바. 그런데 그녀의 집 외관은 엉망진창.


익숙한 일인 듯 신문지로 페인트를 대충 닦아내고 어딘가로 향하는 에바. 그녀의 목적지는 동네의 조그만 여행사.

영화 '케빈에 대하여' 줄거리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에바는 다행히도 이 면접에서 합격 통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비슷한 나이대의 한 여인에게 뺨을 맞는데...


그녀가 미움을 사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남편 프랭클린과의 사이에서 첫째 케빈을 낳게 된 에바.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는 만족감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양.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케빈은 그녀의 말에 무신경한 반응을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에바의 말에 항상 반대로 대답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돌발행동도 서슴지 않는 케빈. 이에 에바 역시 짜증스러운 태도를 내비친다.


한편, 케빈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선호하던 뉴욕을 떠나 이사까지 가게 된 에바와 그녀의 가족들.


하지만 이사 간 그곳에서도 케빈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리고 잠시 에바가 집을 비운 사이 케빈은 에바의 방 벽지에 잉크로 범벅을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간단한 숫자놀이에도, 일부로 케빈은 이상한 대답만을 골라한다. 게다가 기저귀를 갈아주자 마자, 보란 듯이 다시 볼 일을 보는 케빈.


이에 분노한 에바는 케빈을 집어던지다시피 해 팔을 부러뜨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하루는 케빈이 아파서 거실에 쓰러져 있다.


이에 지극 정성으로 케빈을 간호하는 에바. 그리고 그에게 로빈 후드 이야기를 읽어준다. 이 일을 계기로 꽤 가까워진 듯한 모자 사이.


하지만 가벼운 열감기가 다 낫자마자 케빈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로빈 후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활을 가지고 놀고 있는 케빈.


몇 년이 지나 15살이 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활을 가지고 노는 걸 즐긴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말에 반대로 하는 것 역시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케빈의 동생 실리아가 키우던 기니피그가 사라진다. 자신이 잘 돌보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딸을 달래는 에바.


온 집을 이 잡듯 뒤져도 기니피그가 보이지 않자. 에바는 실리아를 다시 한번 위로한다. 그런데 꽉 막힌 배수구 밑에서 발견되는 기니피그의 시체.


심지어 얼마 뒤, 실수인지 아닌지 동생의 눈까지 멀게 하는 케빈.


이에 삐걱거리던 에바와 프랭클린 사이도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이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된 케빈은 택배로 자물쇠 여러 개를 주문한다.


자전거도 없으면서 자물쇠를 대량 구매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이들 부부. 


과연 이들을 기다리는 결말은 어떤 쪽이었을까? 그리고 케빈은 왜 이런 행동을 했던 걸까?


시선의 차단이 주는 공포


이 작품은 스릴러 영화로 구분되는 영화이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잔인한 살해 장면, 혹은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


그럼에도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를 받은 데에는 암시가 주는 공포가 있겠다.


영화는 케빈의 이상 행동을 담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가 벌이는 기행 수준의 행동들은 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기행을 벌인 후에 순간을 보여주며, 손쓰기도 전에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관객들은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동생이 키우던 기니피그를 죽이는 장면은 없지만, 배수구에 물이 차오르고, 솔을 이용해 붉은 얼룩을 닦아내는 에바의 모습에서, 보여주지 않아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


이에 정점을 찍은 건 리치를 먹는 케빈의 모습이었다. 동생의 눈을 멀게 한 후, 그는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리치를 괴기스럽게 먹는다.


이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자,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기행을 자랑거리라도 되는 마냥 뽐내는 케빈의 비정상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그의 폭주에서 역시, 화면은 사건이 벌어지는 처참한 현장을 담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게끔, 판을 깔아 둘 뿐이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모성애에 대하여


주인공 에바는 유명한 여행가였다. 이에 책을 쓰기도 하는 등 나름 잘 나가는 인물.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삶이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삶이 망가진 건 프랭클린과의 결혼. 아니 더 정확히는 케빈을 임신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원하지 않던 타이밍에 임신을 한다. 그리고 출산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 모든 노력이 가치 없는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애를 낳고 난 뒤, 그녀의 표정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산모들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그녀는 허무함에 빠져든 모습이었다.


육아를 하는 과정도 그랬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걸 귀찮아했고, 아이 울음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공사장 한복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녀에게 육아란 거추장스러운 일일 뿐이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옭아매는 족쇄에 불과했던 것.


그리고 여기서 생겨난 불만의 화살은 케빈을 향한다. 케빈이 이상한 행동을 해도, 자신의 말을 거스르려 해도 그녀는 케빈을 달래거나,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미움보다 한 단계 더 증오하는 과정. 즉 무관심을 자신의 아이에게 보내고 있던 것.


다소 삐뚤어진 행동이긴 해도, 케빈의 모습은 관심을 바라는 어린아이의 전형이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당연히 더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졌을 행동.


하지만 자신의 앞 길을 가로막았다는 분노의 표현이었던 건지, 그녀는 끝끝내 아들을 돌아봐 주지 않는다. 


이렇게 벌어졌던 엄마와 아들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고, 결국 충격적인 결말을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대사와 장면이 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너도 알지?

붉은색이 의미하는 것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붉은색을 강조한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시퀀스의 토마토 축제 장면에서부터, 붉은 페인트로 덮인 에바의 집과 차. 그리고 케빈이 벌이는 기행까지. 많은 장면에서 붉은 색깔과 접점을 두고 있다.


붉은색은 강렬한 색감 탓인지 생명, 정열, 사랑 등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첫 시퀀스에서 토마토 축제에 푹 빠져 있던 에바의 모습은, 여행가로서 자기 일을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붉은 조명 아래 사랑을 나누던 이들 부부의 모습 역시 정열 이란 단어와 닮아 있다.


하지만 케빈의 기행이 시작된 이후, 붉은색은 좀 더 자극적인 의미를 뜻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붉은 딸기 잼을 바른 뒤 일부로 떨어뜨리는 행동이나 물감으로 엄마의 방을 엉망으로 만든 행동, 그리고 실리아의 기니피그를 처리한 뒤 붉게 물든 에바의 손까지.


이제 붉은색은 정열을 넘어 광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행동들도 결국 붉은색의 속성과 일치했다. 케빈이 벌인 이상한 행동들은 엄마 에바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 즉,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일탈이었기 때문.


다만 조금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된 사랑이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마지막 케빈의 폭주 장면에서 그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그의 셔츠는 붉은 사이렌 때문인지 빨갛게 물든다.


이는 케빈이 마지막까지 에바의 사랑을 갈구했다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위기의 순간에서 마저, 아이를 외면하는 에바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차분하지만 서늘한 영화 케빈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이야기 외에도 푸른색 옷을 입고 혹독한 환경의 아이를 노출시키는 에바의 모습.


동생 실리아에게 못되게 구는 케빈의 모습 등에서 영화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아이에게 무관심한 부모.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삐뚤어져 버린 아이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여러 암시를 통해 무서운 장면 없이도 공포심을 자극했고, 마지막까지 불안한 상황에서 영화를 지켜보게끔 했다.


잔인한 장면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상상력을 자극해 공포심을 심어준 영화.


그리고 삐뚤어진 어머니 밑에서 삐뚤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케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Jdt_d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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