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 줄거리 및 리뷰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발레롱가. 그는 매서운 주먹을 앞세워 클럽에서 벌어지는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한다.
그런데 클럽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며 두 달간 강제 휴무를 받게 된다.
며칠 뒤 집수리를 위해 정비공이 그의 집을 찾는다. 그런데 정비공이 썼던 유리컵을 곧바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발레롱가.
영화 그린 북 줄거리
그렇다. 그는 그의 친척들과 주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종차별자였던 것.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박사의 운전수 직에 지원을 하게 되는 발레롱가. 그런데 그 박사의 정체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가 흑인일 걸 알게 되자 발레롱가의 면접 태도도 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뜻 밖에도 면접에서 합격 소식을 듣게 된 발레롱가.
언제 어디서나 품격을 잃지 않는 셜리, 그에 반해 언제 어디서나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발레롱가. 셜리 박사와 발레롱가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한다.
발레롱가는 흑인 박사를 모셔야 하는 게 못마땅하다. 심지어 셜리에게 경박한 말투를 쓴다고 어휘 교정을 요구받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셜리는 수많은 관객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연주를 본 발레롱가는 드디어 그를 인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취향이 다르다. 최신 유행 팝을 흥얼거리는 발레롱가와는 달리 어떤 팝을 틀어도 셜리는 모든 게 새로운 것.
그리고 켄터키 주에 들어가자마자 후라이드 치킨을 손에 집어 든 발레롱가와 음식을 어떻게 손에 들고 먹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셜리 박사.
하지만 끈질긴 발레롱가의 설득에 치킨을 손에 집어 드는 데, 그는 발레롱가 덕분에 치킨의 참맛을 알아버리게 된다.
다른 주(州)로 이동 중 간이 휴게소에 들른 이들. 발레롱가는 땅에 떨어진 돌 하나를 주머니에 슬쩍한다.
무사히 넘어가나 했지만 역시나 박사에게 딱 걸려버린 발레롱가.
삐걱거리기는 해도 무사히 연주 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 그런데 피아노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박사가 연주하기로 계약한 스타인웨이 피아노도 아니고,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찬 피아노.
이에 대해 따지자 홀 관리인은 뻔뻔하게 대응한다. 그러자 발레롱가는 다시 한번 매서운 주먹을 꺼내 들었고 무사히 스타인웨이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공연을 끝내고 숙소로 이동한 셜리와 발레롱가. 하지만 숙소는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유색인종 전용이라 발레롱가는 주변의 다른 숙박 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주변의 한 바에서 술을 마시던 박사에게 일이 생긴다. 이에 출동한 우리의 발레롱가.
뒷주머니의 손을 넣고 총을 쏘겠다며 위협하는 발레롱가는 셜리 박사가 풀려나자 별다른 소동 없이 그를 숙소로 데려다준다.
총이 있냐는 박사의 질문에는 그저 거짓말이었다고 둘러대는 발레롱가.
그리고 또 다른 공연 장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셜리. 그런데 화장실을 찾는 박사에게 집주인은 재래식 화장실 이용을 권한다.
연주가 끝나고도 이러한 처우에 크게 분개하는 발레롱가와는 달리 셜리는 익숙한 듯 웃으며 악수를 나눌 뿐.
하지만 이 사건은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양복점에서 피팅을 거절당하기도 하고, 흑인 통금이 있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끌려가기도 하는 셜리.
무사히 위기들을 넘기고 8주간의 투어는 막바지로 향한다.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앞두고 호텔을 방문한 이들. 그런데 대기실이라며 내 준 방은 창고와 다를 게 없다.
심지어 박사의 호텔 식당 출입까지 거부하는 호텔 직원들.
이제 이 공연만 마치면 거액의 보수를 손에 쥐게 되는 발레롱가와 셜리. 하지만 셜리는 불합리한 이유로 식당 출입을 거절당한다.
과연 이 두 사람은 무사히 이 공연을 끝마칠 수 있었을까?
흑인과 백인의 우정을 그리다
이 작품은 흑인 연주자 셜리 박사와 백인 운전수 발레롱가의 우정을 그려낸 작품이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먼저 발레롱가는 이탈리아 이주민 출신으로 인종차별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장인물.
흑인이 썼던 식기는 바로 쓰레기통에 넣으며,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셜리 박사와 동행하며 그의 행동은 변하기 시작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은, 그저 색안경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되고, 진심으로 셜리와 교감하며 친구 사이가 되어 간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던 음악, 음식, 생활습관. 그리고 말투까지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가까이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게 되고, 어딘가 닮아가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서로 경계하며 말싸움을 하던 모습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과 배려만이 남게 된다.
비록 발레롱가는 여전히 거친 언행을 일삼기는 하지만 셜리를 존중해주고, 셜리 역시 발레롱가와의 다름을 인정하며 그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백인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나기까지
셜리 박사는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 연주에 두각을 드러냈던 인물. 당연히 부와 명성이 그를 따라왔고, 그는 그 시대의 다른 흑인들과 달리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그는, 기존의 흑인들이 백인보다 못한 삶을 살아갔던 것과 달리 백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대다수 백인보다도 더 큰 부를 쌓았음에도, 승리자는 아니었다.
분명 셜리는 카네기 홀 꼭대기에서 거주하고 있고, 발레롱가가 원하는 높은 주급까지 기꺼이 맞춰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이 주체적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그는 원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인물.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흑인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절이라, 음반회사의 권유로 상업음악의 길에 올라야만 했다.
원래 좋아하던, 원래 전공이었던 음악은 뒤편으로 밀린 채, 백인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만을 연주해야 하는 그의 신세를 과연 주도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그를 대하는 백인들의 태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연주를 할 때는 그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인물로 대하는 듯하던 백인들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돌변한다.
화장실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는 것 역시 거부당하게 되니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꼭두각시처럼 시키는 것만을 하는 무대 위 피아니스트 셜리였지,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셜리는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셜리가 같은 흑인들에게 환대를 받았던 것 역시 아니다. 그는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인물이자, 백인보다 더 백인스럽게 길러진 사람.
그래서 격이 떨어지는 언행을 하지 않았으며,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 역시 그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즉, 피부색은 흑인과 같을지 몰라도 속은 그 시대 백인 엘리트처럼 길러진 것이 바로 셜리 박사였던 것.
그래서 그는 흑인들에게도 배척당한다.
말굽 던지기 놀이를 거부하자 비난을 받았던 일이나, 밭을 갈고 있던 흑인들의 눈총을 받은 것 역시,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한 셜리에 대한 혐오감의 표출이었다.
그럼에도 셜리 박사는 인종간 벌어지는 혐오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인물이다.
기존에 했던 것처럼 북부 대도시 투어를 하면 훨씬 더 많은 돈과 좋은 환경에서 연주가 가능했음에도,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부 투어를 계획한다.
어느 정도 인종 갈등이 잦아든 북부 지방처럼, 자신이 매개체가 되어 남부 지방의 인종 갈등 역시 줄여보고자 했던 것.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고, 오히려 셜리는 흑인들에게도 손가락질받는 신세에 놓이기까지 한다.
넘어서고 싶어도 넘어설 수 없는 인종 간의 갈등은 그렇게 패배만을 남기는 듯했다.
하지만 셜리의 시도가 꼭 패배로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비록 모든 대중들의 벽을 허물 수는 없었어도, 같이 붙어 다니던 발레롱가와의 벽은 허물어졌기 때문에.
이 작은 변화와 움직임이 결국 인종 갈등의 종식을 불러올 것임을 영화는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린 북의 진정한 의미
이 작품은 처음부터 로드무비의 형태를 띠며 흘러간다. 굵직한 문제를 토해놓고 이에 고통받지만, 결국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해결이 완전한 해결이나 갈등의 종지부를 의미하지 않음에도, 불완전한 봉합 역시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으며, 완전한 해결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충분했다.
지금도 인종 갈등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다른 인종 간의 화합은 더 극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일 것이다.
하물며 인종 갈등이 표면화되어 있던 시대를 살아내던 두 사람의 우정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종 간의 벽을 넘어 진정한 우정으로 서로를 지켜주던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그린 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