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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Feb 17. 2020

<아무도 모른다> 방치된 아이들에게도 희망은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리뷰 및 해석

이사를 왔다며 이웃집에 인사를 하고 있는 엄마와 아들 아키라.


두 식구가 전부라던 이들은 캐리어 가방을 조심조심 옮긴다. 그리고 가방을 여는 데, 그 속에서 튀어나온 건 셋째 시게루와 막내 유키.


캐리어에 몸을 숨길 수 없던 둘째 쿄코는 근처 지하철역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사가 마무리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아키라에 의해 구조될 때까지.


영화 아무도 모른다 줄거리


그 날 저녁 모두가 모인 식탁에서 엄마는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칙 몇 개를 설명한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모든 규칙은 집주인에게 사는 사람이 자신과 아키라 둘 뿐이라 했으니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다음 날, 엄마가 출근을 하자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건 온전히 아키라의 몫이 되어버린다. 장을 보는 것부터 요리를 하는 것까지.


한편 아키라는 학교에 갈 나이가 지났지만 학교조차 가지 못하고 집에서 옥편을 뒤지며 간신히 글자를 익히고 있다.


학교에 가고 싶어 했던 건 아키라뿐만이 아니다. 둘째 쿄코 역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아빠가 없어서 따돌림이나 당할 거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그 사이 엄마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 결혼을 하면 안정적으로 다시 가정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설레는 듯한 엄마.


그런데 다음 날, 엄마는 짧은 편지와 약간의 돈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그만큼 아키라가 해야 할 일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들른 편의점에서 좀도둑으로 몰리는 일까지 생기는 아키라.


다행히 CCTV를 돌려본 점원이 아키라의 무죄를 입증해주며 그는 입막음용 호빵 하나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들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다. 각자의 선물을 가져오고 손수 머리도 잘라주는 엄마.


선물을 받아서인지 간만에 돌아온 엄마 덕분인지 오랜만에 이들 형제는 비로소 웃음을 보인다.


그런데 머리를 잘라주자 마자 다시 짐을 싸기 시작하는 그녀. 그리고 남기는 한마디가,


크리스마스 때는 돌아올게

엄마의 짐을 옮겨주던 아키라는 저녁을 먹기 위해 엄마와 패스트푸드 점을 찾는다. 그리고 또다시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훌쩍 떠나버린 엄마.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이렇게 남게 된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 엄마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아키라는 동생들을 위해 케이크를 사고자 한다.


하지만 2,000엔이라는 케이크 가격이 비쌌는지 그는 가격이 1,000엔으로 떨어질 때까지 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약속했던 크리스마스까지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아키라는 엄마가 일했던 매장으로 전화를 거는데 돌아온 건 이미 엄마는 직장에서 퇴사했다는 소식.


시간이 더 흘러 설이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아키라는 도움을 받았던 편의점 직원한테 글씨 쓰는 걸 부탁한다.


마치 엄마가 이들의 세뱃돈을 챙겨준 것처럼.


이런 아키라의 노력에도 아이들은 엄마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된다오지도 않을 엄마를 매일 저녁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리기도 한다.


한편 아키라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다 친구가 몇 명 생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도둑질을 하는 아이들이었고, 아키라에게도 도둑질할 것을 강요한다.


이를 거부하자 친구들은 아키라를 멀리 한다. 아키라가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에도 이들은 완전히 거리감을 만들 뿐.


어느덧 엄마가 주고 간 돈도 떨어져 간다. 이에 아키라는 아르바이트라도 하고자 하지만 아직 14살인 아키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점점 상황이 악화된 이들은 수돗물까지 주변 공원에서 길어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심지어 전기까지 끊겨 버린 상황.


크리스마스에 돌아온다던 엄마는 몇 달이 지나도 소식도 없고, 이들을 도와줄 가족도 친척도 없는 상황.


과연 아키라와 그의 형제들은 이다음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을까?


다큐멘터리를 다루듯 절제된 영화


이 작품은 가족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이다.


그리고 그의 많은 영화 중에서도 가장 정적이고, 가장 느릿하게 흘러가는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느린 전개와는 달리 영화의 소재 자체는 꽤나 자극적이었다. 1988년에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사실 이 실제 사건은 더 막장이다. 지저분한 환경과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영양실조로 죽음을 맞이했던 영화와는 달리, 실제 사건은 장남과 그의 친구들이 시끄럽다며 셋째를 때려죽였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자극적인 요소는 잘려나가고 오히려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장남 아키라의 모습이 도드라져 보인다.


사건의 비극성과 잔혹함에 집중하기보다 네 명의 남매가 가진 생명력과 가능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연출일 것이다.


이들을 돌볼 보호자가 없는 상황 속 여전히 어린 나이의 장남 아키라는 동생 셋을 돌봐야만 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아키라 역시 여전히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의 소년에 불과했고, 어머니가 남겨 놓은 돈마저 바닥나며 이들은 점점 극한의 상황에 몰려간다.


영화는 이들이 벌이는 삶의 투쟁을 조용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담는다.


어떤 인물에게 과도한 감정 이입을 하거나, 쓸데없는 서사를 만드는 장면은 없고, 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하루하루를 가감 없이 화면으로 옮겨낼 뿐이었다.


이는 영화감독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도 활약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작풍이 담긴 연출이자, 관객들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열어 둔 방법이었다.


최대한 슬픔과 감정을 절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가 만들어낸 슬픈 분위기에 능동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영화는 차분하고 느리게 영상을 담아냈지만, 관객들에겐 모든 장면과 대사들이 거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듯했다.


방치된 아이들의 비참한 삶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작품마다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었던 <어느 가족>에서는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피를 나눈 가족보다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있던 유사 가족의 이야기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아이가 바뀐 뒤, 피를 나눈 관계와 시간을 함께 보낸 관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의문을 던지는 가족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아이들을 방치한 엄마와 버려진 아이 넷의 이야기를 한다.


방치된 아이들의 삶이 정상적으로 흐를 수는 없다. 장남 아키라가 어른스럽고 생활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성인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는 나이.


그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부분이 드러날 때마다 아이들의 삶은 더 크게 요동치게 된다.


엄마가 사라진 식탁에는 매번 냉동음식, 또는 인스턴트식품이 올라올 뿐이었고, 엄마의 울타리가 사라진 아키라에겐 여러 범죄의 유혹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유혹을 뿌리치자 친구들은 아키라에게 등을 돌렸고, 또 다른 문제들이 이들을 집어삼키며 결코 이들이 행복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엄마가 있던 시절의 이들의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했던 것도 아니다.


식구 수를 속이기 위해 캐리어 속에 들어간 채 이사를 해야 했고,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기 때문.


결국 모든 문제는 아이를 제대로 돌 볼 생각이 없던 부모로부터 기인했다.


아무런 능력도 어떤 애정도 가지지 못했던 부모는 이들의 삶이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질 때까지 어떤 안전장치도 되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불행은 우연이나 충동적인 사고라기보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예고된 재난에 가까웠다.


그 불행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꿈틀대던 아이들의 투쟁이야 말로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그래서 더 애처로웠던 장면이었다.


이렇게 우울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결국 더 큰 사건과 마주해야 했고, 충격적인 마무리로 그 막을 내려야만 했다.


작은 행복 뒤 폭풍처럼 몰려온 불행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었다.


등장인물의 간접적인 심리묘사에서부터 각자가 꿈꾸는 이상향을 상징하는 소재의 등장. 그리고 가장 큰 비극을 앞두고 맞이한 작은 행복까지.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작풍을 아는 사람에겐 낯설지 않은 전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도 서늘한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가족애를 잃어가던 구성원이 마음을 고쳐먹는 장면이나,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힘으로 다시 뭉치게 되는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들의 엄마는 끝끝내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새로운 사랑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선행돼야 할 자신의 아이 돌보기를 등한시한 만큼, 더 이상 그녀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즉, 불행의 원인은 그대로 보여주지만, 해결 과정은 생략함으로써 보는 관객들에게 ‘의도적인 불편함’, 그리고 영화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아키라와 쿄코의 모습.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던 시게루, 유키의 모습만이 이 영화에서 빛날 뿐이었다.


https://youtu.be/JBqHBB2R8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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