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조 래빗 리뷰 및 해석
인류사 최대의 재난이자 최악의 전쟁으로 기억되는 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과 연합국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이 참혹한 전투에 가담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건 당연히도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의 우두머리였던 나치 독일.
히틀러라는 강력한 독재자를 앞세워 나치 독일은 전 국민을 전쟁터로 몰아넣고, 전 세계를 위협해 나간다.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들은 수없이 많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는 유대인 박해. 즉 홀로코스트다.
게르만족이야말로 신의 피를 이어받은 신성한 인종이며, 유대인은 그런 게르만족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
그래서 계획적인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며, 인류사 최악의 재앙을 만들어버린다.
이에 관련한 영화들 역시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인생은 아름다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이 이 범주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올해 나치 독일을 그린 또 하나의 작품이 등장했다. 영화 <기생충>, <1917> 등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의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자, 나치즘에 푹 빠져 있는 10살 꼬마 조조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조조 래빗>이 그 주인공.
유대인이 아닌 나치 독일의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인 만큼, 영화의 내용은 아주 새롭다고 볼 수는 없었다.
길었던 전쟁 끝에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게 패배한다는 건, 영화를 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
그리고 이 잔인한 전쟁을 아이의 시선으로 관찰함으로써, 전쟁의 비극성을 더 부각하는 연출 역시 앞서 말씀드렸던 작품에서 다뤄왔던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 그 궤를 달리 한 건, 2차 세계 대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는 것.
보통의 나치즘을 그린 작품들은 유대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서는 유대인 아이와 나치 독일 아이의 이야기가 모두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와 또 달랐던 건 나치 독일의 혐오감을 갖고 있던 브루노와 달리, 조조는 나치즘을 신봉하는 전형적인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다는 점이다.
조조는 히틀러를 자신의 우상처럼 우러러본다. 아직 10살의 어린 나이지만 독일 소년단 활동을 하며 언젠가 자신도 전장에 뛰어들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가장 친했던 친구 요키마저 그에겐 2순위에 불과했다. 조조에게 있어 언제나 최우선 순위는 히틀러였기 때문에.
물론 어린 나이의 조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주말 군사 교육에 참여하는 거 말고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는데, 그 교육에서 역시 조조는 낙제점의 학생.
하루는 훈련 도중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던 토끼의 머리를 비틀어 죽이라던 교관의 말을 거부한다.
고민하던 조조는 차마 토끼를 죽일 수 없었고 ‘조조 래빗’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이 그에게 붙여진다.
이에 발끈해 뛰어든 수류탄 교육에서는 자신이 던진 수류탄에 큰 부상을 입어, 얼굴과 다리의 흉터를 남기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나치즘에 푹 빠져 있지만, 정작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한 조조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이는 조조를 단순히 조롱거리로 만들기 위함이 아닌,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시대의 광기에 휘말려 맹목적인 믿음을 가져버리게 되는 어린 소년을 비췄던 것이다.
그렇게 나치즘을 굳게 믿던 독일 소년은 부상이 발목을 잡을 때까지, 아니 발목을 잡히고서도 헤어 나오지 못했고, 더 비극적인 사건이 닥친 후에야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진리는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미쳐있던 독일 사회, 미쳐버린 독일 청년
조조가 나치즘을 이렇게까지 신봉하게 된 데에는 당시 독일 사회를 둘러싼 흉흉한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봐야겠다.
큰 전쟁을 벌이고 있던 나치 독일은 국민들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알리고 범국민적 협조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선전선동 활동 역시 전장에서 싸우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중 가장 활발했던 활동이자, 나치 독일의 큰 힘이 되어준 건 히틀러 유겐트. 10살의 어린 소년, 소녀부터 가입이 가능했던 이 조직은 사상교육과 기본 전투 기술 숙달, 그리고 구급 처치 방법 등을 교육함으로써 끊임없는 병력의 배출과 나치 사상을 갖춘 젊은 청년들의 유입을 만들어냈다.
이미 나이가 든 사람에게 새로운 사상 교육하는 건 어려운 일인 만큼, 어린 나이부터 나치 사상을 주입시켜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로 만들고자 했다.
이렇게 길러진 소년들은 자연스레 나치당 군대에 편입되었고, 연합국과의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병력으로 치환된다.
무엇이 옳은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나치 사상으로부터 주입받았던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히틀러의 유럽 통일을 완수하는 것만이 그들 삶의 목적 전부가 되어버린 거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났던 건, 전장으로 투입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랑하며 떠나던 한 청년의 모습.
전장의 투입되는 병사가 사기충천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전쟁을 펼치는 국가 입장에선 굉장히 달가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받는 2차 세계 대전 한가운데로 들어간다는 건, 결국 목숨을 내려놔야 한다는 의미. 게다가 전세는 이미 연합국 쪽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했던 만큼, 죽을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신나게 웃으며, 전장으로 가지 못하는 조조를 비웃던 독일 청년은, 이 당시 나치 독일 사회가 얼마나 광기에 휘말렸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그 광기에 동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의견은 무시하고, 소수의 희생은 당연시한다는 전체주의 사상.
그리고 이를 신봉하는 나치 독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의 비극성을 더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히틀러의 환상이 의미하는 것
영화의 시작부터 어린 조조는 히틀러의 환상을 본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주로 하는 이 인물은 조조에게 나치즘을 주입하는 당시 독일 사회의 투영체쯤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히틀러를 향한 경례부터, 주말 교육에 낙오된 조조의 사기를 북돋는 일 등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역할은 조조를 충직한 히틀러의 부하로 길러내는 것과 동시에, 유대인 혐오를 조장하는 일. 즉, 다른 인종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우생학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조조가 벽장에 숨어 살던 유대인 엘사와 가까워지자 그녀를 경계하도록 했으며, 엘사가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그녀가 조조와 그의 어머니 로지를 위협할 거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머리에도 우생학이란 학문을 주입함으로써, 나치즘 사상 속 가장 위험한 인종인 유대인을 배척하도록 했으며, 히틀러가 이야기하던 사상이 가장 낮은 곳까지 전달되기를 바랐던 것.
즉, 상상 속 히틀러의 환영은 조조의 롤모델이자, 그를 충직한 나치 당원으로 키워낼 하나의 멘토였다.
조조 역시 기꺼이 그를 믿고, 그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외치고, 부상을 당한 후에도 나치즘 포스터를 붙였던 조조의 행동 뒤에는, 그를 조종했던 히틀러가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통제하던 불리한 전장 상황이 대중들에게 노출되고, 그의 죽음까지 알려지며 히틀러의 환상도 그 모습을 달리 한다.
권총 자살을 했다는 그의 관자놀이에는 피가 묻어 있으며, 우왕좌왕한 채 어떤 결론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지휘자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조조가 옳다고 믿어왔던 것은 결국 히틀러의 모습처럼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았고, 무능에 무능을 거듭하다 독일 사회를 파탄의 지경으로까지 이끈 독재자의 최후를 비꼬고 있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히틀러를 걷어차 버리는 장면은 조조에게 주입되었던 나치즘에서의 탈피. 그리고 그제서야 어떤 게 옳은 것인지를 명확히 보게 되는 그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즉, 히틀러가 당시 나치 독일 사회에 만연했던 전체주의의 대한 맹목적인 신봉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면, 조조는 그에 선동되어 어떤 게 진실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된 나치 독일의 무지한 시민을 보여주는 캐릭터라 볼 수 있겠다.
전쟁 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닌, 독재자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 등을 보여주며, 독일이 어떻게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영화는 보여주었다.
전체주의의 광기를 저격하다!
전체주의의 무서움을 다룬 영화로는 <디 벨레>라는 독일 영화도 있다. 단순히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만 독재자가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도 조조 래빗과 닮아 있었지만, 전체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결집시키는지,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을 때 그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사람에겐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 같다.
시대의 광기가 비정상을 정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나치 독일.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맹목적인 추종만을 했던 어린 나치 소년의 이야기를 다뤘던 영화 <조조 래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