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영화 온다 리뷰 및 분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그의 신작이 올해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소설 ‘보기왕이 온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온다>가 바로 그 주인공.
영화 온다 줄거리
작품은 결혼을 앞둔 히데키와 카나를 비춘다. 히데키는 제사로 많은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카나를 데려가 소개를 시켜주게 된다.
카나는 외가 식구가 모이는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히데키를 위해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눈치가 없던 건지 히데키는 카나에게 계속 잔심부름을 시킨다.
그러는 사이 히데키는 깜빡 잠이 들었고 오래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사건을 꿈에서 보게 된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소녀와 몰려드는 송충이 떼. 그리고 그 소녀가 하는 이야기.
'그것'에게 불리면 절대 도망칠 수 없어
그런 사건을 뒤로하고 결혼식까지 올리게 된 두 사람. 앞으로 이들에게는 행복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히데키는 결혼 후 더 큰 일에 휘말린다. 절친하게 지냈던 후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피투성이가 되었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던 일.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만났던 심령 전문가 세츠코의 조언을 무시했다 그녀의 팔이 날아간 일까지.
그가 꾸는 꿈과 심령 전문가들은 히데키를 노리고 있는 상대를 ‘그것’이라 지칭한다. 알 수 없는 그것의 정체지만 확실했던 건 단 하나, 히데키를 노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심령 전문가인 마코토를 찾아가 의논을 하고 ‘그것’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한다. 그럼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들은 무엇이었을까?
전설을 소재로 영화를 풀다
이 작품은 '보기왕이 온다'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여기서 보기왕은 어린아이를 달랠 때 쓰는 공포적 상징물이다.
자꾸 울고 보채는 어린아이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보기왕이라는 귀신이 내려와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가버린다는 전설이 있던 것. 우리나라의 '이 놈 아저씨'와 유사한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다소 흔하게 비칠 수 있는 전설이지만, 이는 단지 전설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전설 속 귀신이 ‘그것’이라는 이름으로 히데키와 그의 가족을 노리게 되기 때문에.
맨 처음 귀신이 노렸던 건 히데키의 후배였다. 누군가 히데키를 찾으러 왔다는 말에 로비에 내려가 보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난스럽게 후배를 구박하고 뒤돌아서는데, 그는 이유도 없이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
1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지만 상황이 좋아지지 않던 후배는 끝내 사망에 이른다.
영화는 그럼 전설 속 귀신이 실제로 나타나, 불특정 다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보기왕이라는 귀신. 혹은 그것이 히데키를 노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히데키를 노린 이유?
후배의 죽음을 목격한 히데키는, 자신의 눈 앞에 일어난 일이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에 친구였던 민속학 교수인 츠다를 찾아가게 되고, 그의 소개로 여러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노자키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심령 현상을 잘 알고 있는 마코토를 소개받는다.
그런 그녀의 입을 통해 ‘그것’이 히데키를 노린 이유가 등장한다. 히데키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정에 소홀했던 탓에 그것이 그와 그의 가족을 노리고 있던 것.
히데키가 억울해 할 수 있는 요소도 분명 있다. 그는 착실하게 육아 학원에 다니며 육아 방법을 익혔고, 아빠 모임에 빠짐없이 출석을 했으며, 육아 블로그도 운영하는 등 아내 카나와, 딸 치사에게 모두 자상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그게 모두 연극이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항상 말로는 아이 돌보기를 열심히 한다 했지만, 그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사진을 찍고, 그럴듯한 사건을 만들어 블로그에 자랑할 생각뿐.
이에 카나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그녀는 점점 치사를 방치하기 시작했고, 남편의 친구였던 츠다와 불륜까지 벌이게 된다.
그러자 치사는 홀로 남는다. 이제 치사를 보호해 줄 사람도, 함께 놀아줄 사람도 없다. 그런 치사의 선택은 ‘보기왕’이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치사는, 귀신에게서 나마 마음의 안식을 얻었던 것.
즉, 이 가족을 위협한 ‘그것’의 정체는 보기왕이라는 귀신이 맞다. 연달아 벌어진 불가사의한 일들이나 죽음을 맞게 된 상황들까지. 모두 보기왕의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가족 구성원인 히데키와 카나에게 있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가족을 챙기지 않았던 히데키. 그리고 히데키에게 쌓인 감정을 치사에게 풀어냈던 카나. 이 두 사람의 무관심이 귀신을 불러들였고, 대재앙을 맞이하게 했다.
이 두 사람 사이는 육아를 기점으로 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더 오래전부터 두 사람 사이는 삐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를 위해 히데키의 집을 찾았을 때, 히데키는 가만히 앉아서 카나에게 이것저것 잡일을 시킨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날 역시, 진정으로 카나를 위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더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카나 역시 이런 사건들을 통해 불편함을 드러낸다. 적극적인 저항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분명히 그는 지금 상황이 불편하다는 걸 히데키에게 이야기한다. 그저 히데키가 무시했기에 별 일 아닌 것처럼 넘어갔을 뿐이다.
이렇게 쌓여가는 카나의 불만은 두 사람 사이가 해피엔딩으로 맺어질 수 없다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불행의 씨앗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성격 차이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이 만들어낸 거리감은 점점 커져만 갔고, 카나가 악마를 불러들이는 부적까지 들이게 되며 이 두 사람은 파멸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핵심 소재가 되는 거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재는 바로 ‘거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기왕을 쫓아내는 굿을 할 때, 보기왕이 싫어한다는 거울을 이용하기 때문.
그리고 자유롭게 목소리를 바꿔 내어 사람을 현혹시키는 보기왕이, 히데키를 함정으로 내몰 때 역시 거울이라는 소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울이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거울의 본질과 속성에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거울의 역할은 물체를 비춰보는 것. 그러면 거울은 그 물체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거울의 비친 모습이 진실은 아니라는 거다. 거울은 좌우가 반전되어 상을 맺는 특징이 있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르게 상을 맺게 되니 말이다.
이 약간의 차이, 약간의 틀어짐이 바로 핵심이 된다. 행복한 듯 보이지만 약간은 뒤틀렸던 히데키 부부의 사이가 ‘그것’을 불러들였고, ‘그것’은 집요하게 이 뒤틀림을 파고 들어간다.
거울에는 항상 행복한 모습의 상이 맺혔지만, 실상은 불행과 반목이 일상화된 히데키 가족. 너무 거울에 몰두한 나머지, 이들은 더 중요한 본질을 잊은 듯했다.
또 하나 거울의 의미는 상반된 사람의 속성이다. 작품에서는 거울에 반사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굉장히 자주 나온다.
겉으로는 상대를 위하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깔보기도 하고, 겉으로는 가족에게 충실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다른 불륜 상대를 찾기도 하는 등장인물들.
거울은 완전히 같은 것 같지만 약간은 다른 상을 맺는 만큼, 한 사람의 행동 뒤에 숨은 진짜 의도, 그리고 그 사람의 숨은 본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연출로 작용하고 있었다.
감독과 인연 있는 배우들
작품에서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과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등장했다.
먼저 히데키로 열연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영화 <갈증>에서 아사이 형사로 출연했다.
마코토 역으로 나온 고마츠 나나 역시, <갈증>에서 주연 카나코로 등장하며 스크린 데뷔를 한 바 있다.
또한 마코토의 언니이자 뜨내기인 그녀와 달리, 유명한 퇴마 무녀 코토코로 열연한 마츠 다카코 역시, 감독의 전작이었던 영화 <고백>에서 주인공인 교사 유코 역을 맡았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나카시마 감독은 배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걸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나카시마 감독과 여러 차례 같이 작업을 한다는 건 그만큼 그의 작품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반대로 그 까다로운 나카시마 감독이 다시 작업을 했다는 건, 출연했던 배우의 연기력의 만족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등장인물 중에 연기력의 구멍을 보이는 배우는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배우들이 오랜 경력을 가진 배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비교적 짧은 연기 경력을 가진 고마츠 나나의 연기 역시 훌륭했다.
모델을 시작으로 연기에 뛰어든 그녀는 다소 기복 있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몇몇 영화에서는 배역에 딱 맞는 찰떡 연기를 보여주는가 하면, 몇몇 영화에서는 연기 내공의 부족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나카시마 감독의 세심한 디렉팅 덕분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성장 덕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연기는 빈틈이 없었다.
이전의 나카시마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갈증>에서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낸 걸 보면, 나카시마 감독과 고마츠 나나는 좋은 케미를 보장하는 조합 인지도 모르겠다.
호러 엔터테이닝의 정점 혹은 정신없던 영화
이전의 보여준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만큼,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꽤 긴 러닝타임임에도 영화는 긴장감을 꾸준히 이어가며, 감각적인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연출 역시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에.
예고편에서도 나오지만 나카시마 감독이 만들어낸 호러 엔터테이닝의 정점을 찍은 작품처럼 느껴졌다. 잦은 시점의 변경에도 영화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텐션을 더 바짝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그것'의 정체를 쫓기 위한 사투였지만, 중반 이후에는 그저 '그것'의 위협에서 누가 살아남을까 기도하는 심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만큼 흡입력 있는 스토리였고 화려한 나카시마 감독 특유의 연출 또한 과하지 않은 선에서 충분히 발휘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작품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것이다. 일본 공포 영화 특유의 피로 범벅이 되는 장면들과 전작이었던 <갈증>에 비해서는 차분해졌지만, 여전히 스타일리시한 나카시마 감독 연출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저 산만한 화면 구성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빠른 템포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약점이다. '그것'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주 명쾌하게 초반부터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는 빠른 템포와 스낵 컬처의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조금 늘어진다는 기분을 줄 수 있는 연출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엔딩 장면쯤에 나온 '오므라이스' 이야기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지 않았다면 정말 너무도 뜬금없는 장면처럼 다가왔을 거다. 아주 친절한 스타일의 영화감독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감독 스스로가 새로운 관객의 유입을 막는 진입장벽을 치는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현대 사회 문제를 아주 직설적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거북하고 피하고 싶은 주제일 수 있지만, 아주 당당하게 이런 사회 문제를 마주하고 있었다.
다소 자극적이고 불친절한 데는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철학과 메시지가 있다. 잔인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창작물을 소비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그 현실을 눈 앞에 가져오는 게, 그리고 현실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더 큰 쾌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