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설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키운다고 해도 한 생명에 따라오는 책임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거다. 남편은 감정보다 논리가앞서는 사람이다.
"고양이는 손이 많이 안 간대. 생각보다 털도 그렇게 안 빠진대. 소원이야. 내가 책임질게!!"
어릴 적 작은 강아지를 일주일 정도 키운 적이 있다.앙증맞은 강아지가 귀여워 계속 안고만 있었다.어린 강아지는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뒤처리는 늘 엄마의 몫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작은 강아지는 화장실에서 숨죽이고 있었고 엄마는 씩씩거리고 있었다. 강아지가 하필 피아노가 놓인 구석 자리에용변을 본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같았으면 너그러이 넘어갈 문제였지만 엄마랑 상의도 없이 아빠가 데리고 온 작은 강아지는 엄마의 차가운 결심에 결국 다른 집에 보내졌다. 이 일은 내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또렷한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어른이 되면 강아지를 꼭 키워야지. 말 못 하는 생명이라고 엄마처럼 저렇게 대하지 않을 거야.'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마음을 슬며시 꺼낸 건 4년 전이다. 사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이성적인 남편을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좀 더 독립적이고 손도 덜 간다는 고양이를 내세웠던 건 남편과의 타협점을 찾고 싶어서였다. 남편은 결국 내 손을 들어주었고 나는 두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구름보다 부드러운 털, 쫑긋 솟은 세모난 귀, 우주의신비로운 이야기가 담긴 눈망울은 내가 고양이에게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집에 온 첫날 아기 고양이는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집 안 곳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블루베리 색상의 털을 가졌다며 딸아이는 아기 고양이에게 베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일주일 뒤에 소심쟁이 루이까지 합류하여 두 고양이와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루이, 베리와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에 관심이 갔다. 특히 고양이와 얽힌 사연이 방영될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하필 그때 다뤄진 내용이 고양이 불법 번식 농장, 일명 '고양이 공장'이었다.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철장 안에 수백 마리의 고양이들이 갇혀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새까맣게 타는 느낌이었다. 언제 갈았는지도 모르는 누렇게 변해버린 물, 임신과 출산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반항할 힘조차 사라져 버린 텅 빈 눈, 동료의 사체를 옆에 두고도 썩은 사료 부스러기를 입으로 가져가는 공허한 묘생. 그곳은 지옥이었다.
끔찍한 광경 속에 화가 치밀다 못해 분노가 들끓었다.
"루이야, 베리야, 너는 어디에서 왔니? 너희 엄마는 누구니?"
루이, 베리를 데리고 온 곳은 동물 병원에서 하는 작은 펫샵이었다. 병원에서운영하는 거니 믿고 데려온 것인데... 루이 베리 엄마가 저 철장 속에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쓰렸다.
"루이, 베리야, 어느 별에서 온 거니? 미안해. 내가 무지했어."
그날 후로 나는 루이, 베리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이 아이들의 묘생이 끝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