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OO 논술 교실 맞죠? 상담 좀 받고 싶은데 오늘 2시에 가도 될까요? 아이가 영어 학원 가야 해서 그 시간밖에 안 되네요."
지금 시각 12시. 급작스럽지만 오래간만에 온 상담 전화에 방문을 허락한다. 3시부터 8시까지 내리 논술 수업이 있는 날. 조금 늦게 시작된다고 뭉그적거렸더니 타격감이 안타 수준이다. 하려다가 만 수업 준비를 마저 끝내야 하고 청소를 하고 내 점심도 먹어야 한다. 점심을 먹으면 집안에 냄새가 배어 드니 환기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전화 한 통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최근 3명이 연달아 퇴회하며 기운이 빠진 찰나, 싸한 분위기가 전화상 풍겼지만, 아이까지 데리고 온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모를 밥을 후다닥 해치우고 환기까지 완료!
"띵동."
여자아이를 앞세운 전화의 주인공이 집으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우리 친구는 여기에 앉을까?"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자꾸 두리번거린다.
"아. 안녕하세요? 거실에서 수업하나 봐요? 보통 방에서 수업하는데. 거실에 책이 별로 없네요?"
"아. 아. 책장은 방에 있어서 거실에는 책이 없어요. 거실에서 넓게 수업하면 좋잖아요? 하하."
사실 성별이 다른 아이가 둘이라 방 세 개짜리 집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수업은 거실에서 한다.
"수업 커리큘럼 좀 자세히 보여주실래요? 얘는 2학년이지만 6학년 언니도 있어서 전체적인 수업 내용이 다 궁금하네요."
'뭐지? 이 끌려가는 분위기. 싸한데.'
3시가 되기 20분 전. 아이들이 들이닥칠 시간이기에 상담은 종료되어야 한다.
"어머님, 제가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되어서 상담 마무리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신가요?"
"엄마, 빨리 가자. 엄마 수업해야 되잖아.'
새초롬히 앉아 있던 아이가 자기 엄마를 재촉한다.
"어머님도 수업을 하시나 봐요."
여자아이의 입에 봉쇄된 천근만근 짜리 자물쇠가 풀리며 내 귀를 의심하게 한 그 말.
"우리 엄마도 논술 수업해요. 아!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출처-지향드림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 아이까지 데리고 와서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뭐가 그리 궁금하다고. 오가며 마주칠 수 있는 한 동네 주민인데.
아이의 발설로 그녀의성공적인 염탐은 비극을 맞이했다. 공부방을 운영하다 보면 동종업계에 몸담은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하는 냄새를 팍팍 풍기는 전화를 종종받는다. 이런저런 정보를 캐내려는 사람들. 자기 아이를 앞세워 대면 상담까지 감행하는 대범함. 영세한 공부방끼리도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서로 응원은 해주지 못할지언정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길 바라는 건 나만의 희망 사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