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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Nov 21. 2024

아름다운 이별이 있기는 한가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1

 논술 교실을 수년째 운영하며 많은 아이 만나고 헤어졌다. 어림잡아보아도 수백 명 이상은 되는 듯하다. 이쯤 되면 헤어짐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이별은 여전히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언제는 일렁이는 파도로. 언제는 온순한 바람으로. 언제는 차디찬 얼음 조각으로.


 K와 J 자매를 처음 만난 건 방학 특강에서다.  당시 NIE(Newspaper in Education) 수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관련 자격증을 취득 후 운 내용을 수업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 평소 다루고 싶었던 아동 심리와 신문 수업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특강 프로그램은 학부모들의 높은 관심과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끌어냈다. 공적으로 방학 특강이 끝나고 정규 수업으로 유입된 아이들이 꽤 있었는데 K와 J 자매도 그중 하나였다. 자매는 누구보다도 밝고 공부도 잘했다. 두어 달 다닐 때쯤 엄마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K는 이번 달까지만 다닐게요. K가 논술 수업을 참 좋아하는데 수학 학원 시간이 변경되어 아쉽게도 겹치네요. J는 계속 다닐 거고요'


 '아, 어머님,  K 학년과 같은 수업이 다른 요일에도 있어요. 일 변경 가능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야속하게도 K는 다른 타 과목 학원으로 스케줄이 꽉 채워져 있어 아쉽며 K의 엄마는 메시지를 냈다. 서운한지 K는 마지막 수업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수업 후 울먹거리는 아이를 뜨겁게 안아주다. 현관문을 나서는 K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니 음이 먹먹해져 문이 닫힌 후에도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 K의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은 건 동생 J로부터였다.


 "엄마가 오늘 가지고 있는 달란트 다 쓰고 오랬어요. 저 다음 달에 논술 을 거래요. 그리고 OO 논술 학원 다닐 거래요."


 평소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과제를 잘한 아이에게 달란트를 주었다. 그날은 여태껏 모은 달란트로 본인들이 원하는 상품을 직접 골라 살 수 있는 이벤트 날이었다.



 "언니가 OO 논술 학원 다니는데 그 학원 숙제도 많고 수업도 재미없대요. 저 거기 다니기 싫어요. 휴우."

 

 아직 어리다면 어린 J의 입에서 짙은 한 나오자 잔잔했던 바다 삽시간에 파도로 덮친 듯 마음이 일렁거렸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학부모의 니즈에 부합한 OO 논술 학원은 인기가 단연 최고여서 그곳에 등록하기까지 1년 내지 2년은 족히 대기를 해야 한다는 글을 맘카페에서 보았다.


 J도 결국 언니를 따라 OO 논술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자매의 엄마는 마지막 수업 날 J의 타 과목 시간 변경으로 더 이상 못 다니게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어쩌다 J가 발설한 덕에 아이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조촐하지만 마지막 수업에 작은 파티를 열어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J와의 추억을 곱씹어 보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이를 더 이상 학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학부모들은 보통 마지막 날에 그 사실을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 미리 그만둔다고 말하면 자기 아이에게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매달 돈으로 계약 관계를 맺은 사이라 할지라도 선생과 제자, 사람과 사람이 빚어나간 시간과 이 돈의 논리로 한순간에 되는 현실 앞에 마음에 작은 구멍이 휑하니 뚫린다.


 

 P를 수업에 등록시킨 건 그의 할머니였다. P를 어릴 적부터 키워 온 할머니는 아이의 교육에도 열정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런 P가 어느 날 수업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우리 P 오늘부터 태권도 갔어요. 이제부터 논술은 안 갑니다."


 최소한 마지막 수업 후에는 수업 종료 의사를 밝혀야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한 교사의 수고로움 덜 수 있고 이별에 대한 마음 준비도 할 수 있을 텐데 할머니는 뭘 그런 걸 새삼스럽게 전화해서 묻냐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화가 끝난 후 마음이 씁쓸하다 못해 차가운 얼음 조각이 마구 날아수업에 다시 집중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비록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관계이지만 여러 시간 동안 나와 아이들은 많은 생각과 감정을 교류했기에 적어도 이별만큼은 미리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다. 지난 시간까지 내밀한 감정을 공유했던 친구와 선생님이 루아침에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

 

 설레는 첫 만남보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이별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이별을 가르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다음 화에

아름다운 이별 2편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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