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이게 누구야?S야, H야.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선생님 수업 거의 다 끝나가는데 들어와서 조금만 기다릴래? 수업 끝나고 같이 밥 먹자."
그해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1년 전 논술 수업을 그만둔 S와 H가 찾아왔다.느닷없는 방문에 당혹스러웠지만 반가운 마음이 먼저 마중 나갔다.왈가닥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요조숙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S와 H가약간 생경했지만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마라탕집으로 향했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잘 지냈어?"
"선생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다짜고짜 뭐가 죄송해? 너 하던 대로 해라. 적응 안 된다."
"선생님, 흑흑... 제가 그땐 철이 없어서 선생님 말씀을 정말 안 듣고힘들게 했는데... 흑흑."
"선생님이 마라탕 살 테니까 이러지 말자. 부담스럽다. 야."
S와 H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사춘기가 조금 일찍 왔던 S는 이제야 자신이 철이 들어선생님한테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버릇이 없었던 건지 깨닫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고.
영어, 수학으로 일주일의 시간표가 꽉 찬 아이들. 비어 있는 시간에 엄마가 논술까지 집어넣었으니 논술 수업을 좋아할 리가 없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고, 더 이상 머릿속에 집어넣기 싫은데 거기에다 제일 싫은 글쓰기까지 하라니. 아이들의 이러한 마음을 알기에 나는 유쾌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 수업만큼은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이 되길 원했다. 그 마음을 S와 H가 알아준 거 같아 괜스레 흐뭇해졌다.
"아니야. 선생님은 S와 H 덕에 행복했어. 음... 뭐랄까. 너희가 있어 수업이 다채로워졌다고나 할까? 고마운 마음만 받을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약속 하나만 해줘. 중학교 가서도 지금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겠다고. 멋진 청년들로 자라나길 선생님이 기도할게."
마라탕집을 나와, 훌쩍이는 아이들과포옹을 하고아쉬운 작별을 했다. 분명 온 땅이 얼어붙은 추운 날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난로가 들어앉은 듯 가슴이 훈훈해지고 눈두덩이는 붉어졌다.
"어머님, 제가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 A와 U 지금까지 믿고 맡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다음 달까지 수업을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
"어머님?..."
수화기 너머 조용히 흐느끼는 A와 U 엄마의 작은 숨소리만 들려왔다.
"부족한 A와 U를 사랑으로 가르쳐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사 가서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가는 A와 U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이별을 맞닥뜨리면 어찌할 줄 모른다.그 감정이 무엇일까? 슬픔? 미안함?당혹스러움? 아쉬움? 후련함? 한두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별이란 감정은 뭐 하나 쉬운 게 없다.할 수만 있다면 이별을 피해 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김광석의 노래가사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그 무엇과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사람과의 관계, 부와 명예, 건강, 욕심...
그러니 이왕이면 이별이 아름답길 바란다. 이별을준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길 바란다. 이별이 슬퍼서 우는 것만은 아니듯이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는 것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추억의 한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별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 서른 즈음에
- 이 글을 쓰며 이별했던 아이들의 얼굴이 한 명 한 명 떠올라 마음이 시려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이별이 있음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아름다운 이별을 가르치는 어른으로 살 것입니다.